※ 편집자 주
이그노벨상.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다시 할 수도 없고 다시 해서도 안되는 업적”에 수여되는 상으로 불립니다. 매년 듣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연구 약 10개에 수여되고 있죠. 하지만 웃음 너머로 과학의 본성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연구들을 조명하는 상이기도 합니다.
매년 단신으로 지나갔던 이그노벨상 연구를 모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대도시의 철도는 눈이 휭휭 돌아가도록 복잡하다.
한 일본 연구팀은 노선 설계를 단세포생물인 점균에게 맡겨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농담이냐고? 이들의 연구는 ‘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에 혁명을 일으켰다.
축축한 숲속을 거닐다 보면, 가끔 썩은 나무 둥치에서 샛노란 자국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 혹은 ‘황색망사먼지’라 불리는 생명체다. 숲 바닥에서는 썩어가는 나뭇잎에 자란 흰곰팡이를 먹으며, 실험실에서는 연구자가 주는 귀리 조각을 먹으며 자란다. 이 생물은 아마 여러분이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생명체일 것이다. 여기엔 적어도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이유 1 : 우선 모습이 이상하다. 이들은 먹이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듯 자기 몸을 확장한다. 이렇게 확장된 부분을 튜브라 부르는데 내부로 세포액이 흐르며 영양분을 전달한다. 정해진 형태는 없지만 최대 시속 4cm의 속도로 움직인다. 게다가 이들은 단세포생물이면서 영양분만 충분하면 지름 수 m까지 성장할 수 있다.
이유 2 : 그래서 이들의 분류가 이상하다. 황색망사점균은 수십 년간 생물학자들의 골칫거리였다. 겉모습과 포자를 만들어 번식하는 점이 곰팡이 같아 한때 균류로 분류됐지만, 식균작용을 하며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아메바와 닮았기 때문이다. 게놈 분석이 완료된 지금은 아메바 계에 속하는 단세포 진핵생물인 ‘점균류(변형균류)’로 분류된다.
이유 3 : 섹스가 이상하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황색망사점균은 서로 다른 생식 세포가 만나 번식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두 세포가 가진 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형이 같아야 한다. 문제는 matA, matB, matC라는 생식 관여 유전자 세 종류의 조합이 500가지가 넘는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성이 500가지가 넘는다고 표현한다. 적어도 데이트앱에서 애인을 만나기에 적합한 특징은 아니다.
이유 4 : 가장 이상한 점은, 단세포생물인 이들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황색망사점균의 지능을 연구한 선구자는 나카가키 토시유키 일본 홋카이도대 생명학과 교수다. 2000년, 나카가키 교수팀은 황색망사점균에게 미로에서 길을 찾는 문제를 내보기로 했다. 연구팀은 널찍한 한천 판 위에 미로를 만들고, 한쪽 구석에는 황색망사점균을, 다른 구석에는 먹이인 귀리 조각을 두었다. 그러자 황색망사점균은 미로를 따라 자라나다, 귀리를 만나자 귀리와 연결된 튜브만 남기고 다른 부분을 거둬들였다. 황색망사점균의 모체와 먹이가 길쭉한 튜브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연구팀은 점균이 먹이로 튜브를 뻗칠 때, 길고 짧은 두 가지의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미로를 만들었다. 이때마다 황색망사점균은 짧은 길을 선택했다. 황색망사점균이 뻗은 튜브를 유지하는 데는 영양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즉 황색망사점균은 미로에서 영양분을 덜 소모하는 최적의 경로를 찾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황색망사점균으로 철도 노선 그리기
최적의 경로를 찾는 일은 황색망사점균은 물론, 인간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인간 세계에도 점균이 만든 튜브와 비슷한 시스템이 있으니, 바로 교통 시설이다. 인간이 만든 철도 노선이나 점균이 만든 튜브 모두 목적지(철도역 혹은 귀리 조각)로 향하는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 점균 연구 이후 10년이 지난 2010년, 나카가키 교수는 황색망사점균의 능력을 교통학에 응용해보기로 했다. 황색망사점균에게 일본의 수도인 도쿄 주변의 철도 노선을 짓도록 맡기고, 그 효율성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연구팀은 우선 도쿄 일대의 지도를 작게 만든 후, 황색망사점균이 튜브를 뻗칠 수 있도록 도쿄 주변 36개 도시의 위치에 귀리 조각을 얹었다. 산이나 호수 등 철도가 지날 수 없는 지형은 황색망사점균도 지날 수 없도록 점균이 싫어하는 빛을 비춰주었다. 이후 도쿄에 황색망사점균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점균이 도쿄 주변으로 노란 튜브를 천천히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B급 호러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색망사점균의 튜브가 뻗어나간 형태는 실제 도쿄 철도 노선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연구팀이 실제 노선과 점균이 만든 노선의 효율성을 계산해 비교해보니, 두 노선의 효율이 비슷했다. 특정한 부분에서는 점균이 만든 노선의 효율성이 더 높기도 했다. 신경계가 없는 단세포생물이 JR(일본 철도) 그룹의 공학자들만큼이나 철도 노선을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황색망사점균이 뻗어나간 순서에서 영감을 얻어 네트워크를 계획하는 수학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점균이 던지는 질문, 지능이란 무엇일까
이런 엉뚱하고 획기적인 결과에 가만있을 이그노벨상 위원회가 아니다. 나카가키 교수가 참여한 두 연구는 각각 2008년과 2010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놀라운 일은 이그노벨상 수상을 시작으로, 황색망사점균 연구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황색망사점균은 이미 1980년대 생물학 연구실에서 모델 생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적 있다. 키우기 쉬운 거대한 단세포생물이라 세포생물학 연구자들이 세포의 주기와 분화, 이동하는 능력을 연구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동물 세포 배양 기술이 발전하면서 동물 세포에 가려 잊혀가던 황색망사점균은 이그노벨상을 기점으로 과학자들에게 재발견됐다. 이번에 점균을 연구하러 돌아온 사람들은 생물의 지능을 이해하고 응용하기 위한 비전통적 생물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2015년, 오드리 두슈투어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은 황색망사점균에게 학습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독성은 없지만 황색망사점균이 싫어하는 물질인 카페인과 퀴닌을 점균과 먹이 사이에 두었다. 그리고 6일이 지나자 황색망사점균은 카페인과 퀴닌이 있는 경로를 가로질러 튜브를 뻗쳤다. 두 물질에 독성이 없음을 학습한 것이다. 2021년에는 황색망사점균이 먹이의 위치를 기억하는 메커니즘도 발견됐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학자들은 점균이 먹이를 만났을 때, 먹이에서 튜브의 벽을 부드럽게 만드는 물질이 분비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 물질은 튜브의 직경을 더 두껍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자연스럽게 먹이와 연결된 튜브가 다른 곳의 튜브보다 더 두꺼워지면서 먹이가 있는 위치가 몸에 새겨지는 원리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황색망사점균의 능력을 컴퓨터 알고리즘이나 작곡에 응용하려는 좀 더 특이한 시도들도 진행 중이다.
황색망사점균이 귀리 조각을 찾으러 가며 보여준 능력은 우리에게 ‘지능’이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보게 만든다. 국어사전은 지능을 “새로운 대상이나 상황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알아내는 지적 활동의 능력”이라 정의한다. 보통 우리는 이 표현을 사람, 혹은 침팬지나 까마귀 같은 고등 동물에게 사용하며, 큰 뇌를 가지고 있는 동물에게서 발현되는 능력이라 기대하고는 한다. 하지만 황색망사점균이 미로를 찾고 최단 거리의 길을 가로지르며 카페인에 독성이 없다는 것을 학습하는 능력을 지능이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상황에서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찾는 모습 아닌가.
이 노랗고 끈적거리는 생명체가, 지능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고 있다.
*용어 정리
모델 생물(model organism) : 초파리나 대장균, 예쁜꼬마선충처럼 생물학 연구를 위해 특별히 쓰이는 생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