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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최애 은하'] 우주를 헤엄치는 해파리의 정체

*아이돌 세계에만 ‘최애’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은하 연구자에겐 은하 각각이 사랑스럽고 자랑하고픈 존재거든요. 6개월간 여러분의 최애 은하를 찾아보세요.

 

독일의 뉘른베르크와 라이프치히 사이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는 ‘해파리 빌라(Villa Medusa)’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다. ‘독일의 찰스 다윈’이라 불렸던 생물학자이자 의사 에른스트 헤켈이 한동안 머물렀던 집이다. 그는 수천 종에 달하는 생물 종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양한 생물 종의 외형과 특징을 분류해 이들의 진화 과정을 연구했다.

 

그중 특히 헤켈을 사로잡았던 건 해파리였다. 해파리는 눈, 코, 귀 심지어 뇌도 심장도 없는 원시적인 생명체다. 마치 물속을 떠다니는 비닐봉지처럼 그저 물에 몸을 맡긴 채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헤켈은 해파리야말로 지구 생명체의 기원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양한 해파리 종을 수집했고 그 모습을 세밀한 삽화로 담았다.

은하단은 가스 물질로 가득 찬 바다

 

해파리의 매력은 이제 독일에 살았던 찰스 다윈의 후계자뿐만 아니라, 밤하늘을 바라보는 천문학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은하가 우주 속을 헤엄치며 그 뒤로 자신의 물질을 길게 흘려보내는 모습이 마치 해파리의 촉수가 흐물거리는 듯한 ‘우주 해파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런 모양의 은하들을 ‘해파리 은하(Jellyfish galaxy)’라고 부른다.

 

바닷속을 보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마찬가지로 은하들도 혼자 살지 않는다. 서로의 중력으로 한데 모여있다. 이런 곳을 ‘은하단(Galaxy Cluster)’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은하단에는 단순히 별들의 무리인 은하만 모여있지 않다. 은하와 은하 사이 빈 공간은 뜨거운 가스 구름들이 가득 채워져있다. 별과 별 사이 공간에 퍼져있는 물질을 성간 물질이라고 하는 것처럼, 은하단 규모에서 은하와 은하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스 물질을 ‘은하단 내 물질(ICM嘌ntra-Cluster Medium)’이라고 한다. 은하단은 중심으로 갈수록 더 많은 은하가 모여있다. 중력도 더 강해진다. 그래서 은하단 외곽에는 ICM이 낮은 밀도로 퍼져있지만 은하단 중심부로 가면 훨씬 높은 밀도로 ICM이 가득 채워져있다.

은하, 가스 물질 흘려 보내며 시들어가

 

은하단의 중력에 붙잡힌 은하단 내부의 은하들은 빠르게 은하단 공간 속을 맴돈다. 그런데 높은 밀도의 ICM이 은하단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 은하들은 텅 빈 진공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높은 밀도의 ICM 속을 부유하는 꼴이 된다. 가스 물질, 즉 유체로 채워진 우주 공간의 바닷속을 헤엄치는 셈이다. 어떤 물체가 유체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그 앞쪽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받는다.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열고 손을 뻗었을 때 손바닥이 바람에 밀리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러한 유체의 압력을 ‘램 압력(Ram pressure)’이라고 한다. 물속을 헤엄치는 해파리도, 그리고 우주 공간의 가스 물질 바닷속을 헤엄치는 은하들도 모두 이 램 압력을 받는다.

 

고여있는 물속에 손을 넣고 천천히 움직이기만 해도 손에 묻은 먼지가 씻겨 나간다. 이러한 일은 ICM의 바닷속을 헤엄치는 은하에서도 벌어진다. 손에 묻은 먼지가 씻겨나가듯이 은하가 품고 있던 가스 물질도 움직이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서서히 밀려나간다. 은하 바깥으로 밀려나간 가스 물질은 긴 꼬리처럼 뒤로 그려진다. 이렇게 은하가 램 압력을 받으면서 자신이 품고 있던 물질을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과정을 ‘램 압력 스트리핑(Ram pressure stripping)’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은하단을 떠도는 대부분의 은하들에서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램 압력 스트리핑을 겪는 은하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은하단 내 공간에서 헤엄치는 방향의 뒤쪽으로 밀려나간 물질이 길게 늘어져 있다. 마치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빵가루의 흔적처럼 보인다. 이 과정은 바로 은하들이 생명력을 잃고 죽는 가장 첫 번째 과정이다. 은하단 속을 헤엄치며 램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는 은하들은 결국 가스 물질을 모두 밖으로 흘려보내버린다.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은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아기 별들이 탄생하기 위한 재료다. 이를 흘려버리고 나면 은하는 더 이상 새로운 별을 만들 수 없다.

 

거대한 별 원반을 휘는 힘

 

최근 나는 연구를 통해, 은하에 가해지는 램 압력이 단순히 은하 속 가스 물질뿐만 아니라 은하의 별 원반 자체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가스 물질의 압력은 오직 가스 물질에만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8000개에 달하는 은하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니 대부분의 해파리 은하들이 ‘U’ 모양으로 휘어진 별 원반을 갖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별 원반은 가스 꼬리가 길게 늘어진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별 꼬리와 가스 물질 꼬리가 반대 방향을 향하는 셈이다. 이것은 램 압력이 별과 가스 물질에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은하 속의 가스 물질은 단순히 램 압력에 밀려 그 뒤로 흘러나간다. 그런데 이때 밀려나간 가스 물질의 중력은 은하가 품고 있던 암흑물질도 함께 끌고 나간다. 그래서 램 압력을 이제 막 받기 시작한 은하의 암흑물질은 가스 물질과 마찬가지로 별 원반에 살짝 어긋난 방향으로 이동한다. 어긋난 암흑물질은 가지고 있는 중력을 이용해 별 원반의 중심부를 끌어당긴다. 그 결과 은하의 별 원반은 가장자리는 그대로 있고 중심부만 살짝 움푹하게 끌려 들어간 바가지 같은 모양으로 휘어진다.  옆에서 보면 알파벳 ‘U’ 모양으로 휘어진 것처럼 관측된다.

 

별 원반이 휘어지는 현상은 그동안 단순히 주변 은하의 중력의 영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바가지 모양으로 움푹하게 휘는 은하 별 원반의 뒤틀림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연구는 그 공백을 채워준다. 그간 알려진 사실과 달리 놀랍게도 은하에게 가해지는 램 압력은 은하의 가스 물질 뿐만 아니라 별 원반 자체에도 큰 뒤틀림을 가할 수 있다. 은하단 속을 부유하는 은하들의 여행은 새로운 별을 만들어낼 기회를 잃는, 그리고 자신의 형태가 해체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하는 가혹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주의 진리라는 거대한 바다의 중심을 향해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은 은하들이 오직 다른 은하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통해서만 자신이 갖고 있던 가스 물질을 빼앗기고 생명력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밀도가 낮은 은하단 외곽을 홀로 떠도는 은하들은 별다른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주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 물질로 채워진 바다였기 때문에 은하는 은하단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유체의 역할은 최근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가시광선 관측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스 물질의 존재를 다양한 파장대의 관측을 통해 직접 확인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물의 역할을 배제하고 물고기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 우주 속 은하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제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바다를 알아야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우리 우주가 어쩌면 수많은 은하들이 섬처럼 떠있는 거대한 바다와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우주를 일명 ‘섬 우주(Island Universe)’라 불렀다. 그의 통찰이 어쩌면 오늘날의 해파리 은하 연구로 이어지는 첫 단추였을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지웅배.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은하들이 사랑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연구한다. 우주를 가이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은하철도 999 차장을 꿈꾼다.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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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지웅배 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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