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평원 위에 덩그러니 놓인 바윗덩어리라… 저게 뜻하는 게 뭘까? 얼음의 두께는 평균 2km니까 저 바위가 땅에서 솟아났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뜻인데… 누군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 커다란 바위를 던질 가능성도 없다. 그것도 차갑디 차가운 남극 상공에서 말이다. 고대인이 이 얼음판 위에 고인돌을 세웠을 것 같지도않다.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면 남는 결론은 단 한 가지다. 저 바윗덩어리는 우주에서 온 운석이다.
같이 온 팀원 김성식은 눈보라 속에서 대기 측정 장치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멀리 보이는 바위에 다가가기 위해 걸음을 뗐다. 바람은 살짝 드러난 피부도 찾아내 냉기를 찔러넣었고, 속눈썹에는 이미 얼음이 맺혔다. 방한 마스크도 얼어서 철판처럼 딱딱했다. 방한복 안은 땀으로 흥건해서 움직임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구물리학 박사로 만들고, 남극까지 오게 한 ENFP(활동가) 성향은 내 무릎을 계속해서 들어 올렸다.
검은 바윗덩어리에 다가가 두꺼운 장갑으로 쌓인 눈을 치웠다. 금속으로 된 운석은 아니고 제주도 해변에 2백만 개는 있을 것 같은 까만 석질운석이었다. 정말로 제주도에 있었다면 마을 이름을 새긴 작은 비(碑)나 투박한 돌담의 재료가 됐을 것이다.
“어디 가? 뭐 발견했어?” 김성식이 무전으로 말했다.
“운석이 있어. 석질운석이고, 200kg는 넘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이윽고 김성식이 도착해 운석을 살폈다.
“크다. 경매에 나오면 10억은 넘겠는데? 아깝네… 개인 자격으로 왔으면 우리 건데. 몰래 숨겨다가 나중에 팔
까?” 김성식은 진심으로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원을 요청하는 무전을 쳤고, 얼마 뒤 탱크처럼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설상차가 도착해 운석을 연구소 안으로 옮겼다. 지질학을 담당하는 하문형 박사가 운석을 분석하기로 했다. 그는 커다란 원형 톱날로 운석을 반으로 가른 뒤, 얇은 샘플 조각을 떼어내 현미경에 놓고 분석을 시작했다.
“콘드라이트인가요?” 내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 근데 다양한 구조가 섞여 있어서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워.” 하문형 박사는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는 손으로 샘플 위치를 조정해가며 현미경에 두 안구를 계속 접촉시켰다.
“이거 세포 같은데? 아닌가? 그냥 무늬인가…” 하문형 박사가 말했다.
“세포요? 세포라고 하셨어요?”
“그 옆에는 유기물층이 있는 것 같은데? 마치 고대 세포들이 남긴 스트로마톨라이트 같아.”
“저도 한번 봐도 돼요?”
나도 세포라고 추정되는 그 구조체를 보았다. 막으로 둘러싸인 구조체가 여럿 있었는데, 각 구조체 안에는 핵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나는 배율을 확인해 보았다. 일반적인 세포 관찰 배율인 400배였다.
“혹시 가져오는 동안 오염될 일이 있었나? 잠깐만… 오염되었다고 해도 운석의 중심부가 오염될 리는 없는데. 이건 내가 방금 자른 중심부의 단면이잖아.”
하문형 박사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 이 연구실 차폐한 다음에 소장님께 연락할까요?” 내가 물었다.
“그래, 그러자. 그리고 이 방 나가자마자 바로 전신 소독해야 할 것 같아. 지금 입은 옷들은 태워버리고. 잠깐만… 근데 대기권 통과하면서 운석 안쪽도 엄청나게 뜨거워지는 거 아니야? 세포들이 있어도 다 죽을 만큼.” 하문형 박사가 물었다.
“운석이 크고 돌로 되어 있으면, 안쪽은 그렇게 뜨겁지 않아요.” 내가 답했다.
외계 세포를 발견했다고 생각되던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1984년에 남극 앨런 힐스(Allan Hills) 근처에서 발견된 ALH 84001 운석에는 아주 작은 세포처럼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그 운석은 화성에서 왔기에 몇몇 과학자는 그것이 외계 생명체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구조는 역시나 화성에서 온 나클라(Nakhla) 운석과 야마토(Yamato) 000593 운석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그 운석들만 가지고 외계 생명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다. 아폴로 눈병은 유행 시기가 아폴로 11호가 달에 다녀온 시점과 겹쳤다. 때문에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샘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는 낭설이 돌아 아폴로 눈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도 그런 과거 사례처럼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상급 기관인 극지연구소에 연락해 조치를 기다렸다.
며칠 뒤, 한국에서 긴급 분석팀이 도착했고, 그들은 우리가 발견한 운석에서 활성화된 외계 세포를 확인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외계 생명체를 발견한 거다. 그것도 인류 최초로 말이다. 그 순간 나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내가 운석과 접촉하고 나서 소독을 철저히 했는지 여부이다. 운석은 밀폐되기까지 꽤 많은 사람과 접촉했기에 외계 세포의 외부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내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 받는다면 몇 분의 몇을 받을지 여부였다. 내가 운석의 최초발견자이기에 이 일로 노벨상을 준다면 나는 받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어디까지 주는지이다. 하문형 박사나 한국에서 온 분석팀 대장에게도 준다면, 내 상금은 줄어들 것이다. 공동 수상의 경우, 상금을 1/2, 1/4씩 나눠 주기 때문이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외계 세포가 확인된 직후, 우리 기지는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됐다.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았다. 이런 엄청난 소식을 통제하기 위해서인 것은 이해하지만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초조하게 며칠을 보냈고, 결국 우리나라 대통령은 유엔(UN)과의 협의를 통해 해당 소식을 전 세계에 발표했다. 생물학과 천문학의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우리는 경찰 경호를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이 발견에 대한 논문을 썼고, 당연하게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곧바로 실렸다. 우리는 이 신종에 Alienigena atra라는 학명을 붙였다. Alienigena는 라틴어로 외계에서 왔다는 뜻이고 atra는 어둡다는 뜻이다. 세포가 전반적으로 어두웠고, 또 특징을 잘 모른다는 중의적 의미에서 atra란 이름을 붙였다. 운석 안의 세포는 총 3종류였는데, 뚱뚱한 세포에 Opima cell, 뾰족한 세포에 Acuta cell, 평평한 세포에 Plana cel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이 외계 세포를 편의상 A 세포라 불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차에 새로운 뉴스가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적도 부근의 남태평양 해상에서 검고 커다란 부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처음 발견한 뱃사람들은 바다 위에 원유가 떠다니는 줄 알고 유조선이 침몰했다고 추측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 부유물은 석유가 아니라 검은 젤리 같은 물질이었다. 이 부유물에는 블랙 파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곧 저해상도 인공위성 사진으로도 식별할 수 있게 커졌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블랙 파이에 다가가 시료를 채취했고, 블랙 파이가 A 세포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곧바로 UN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미국국립보건원(NIH), 미국질병통제센터(CDC)가 주도하는 연구팀이 꾸려졌고, 일단 블랙 파이에서 별다른 유독물질이나 방사선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유독하지는 않지만, 블랙 파이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적도 근처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했다. 지구의 식물이 파란빛과 빨간빛만 흡수하고 초록빛을 반사하는 반면(그래서 식물은 초록으로 보인다), 블랙 파이는 적외선과 자외선을 포함한 모든 파장의 빛을 광합성에 활용해 아무런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검게 보이는 것이다(검은색은 색이 아니라, 우리 눈에 도달하는 빛이 없는 상태이다). 무한에 가까운 물과 강렬한 햇빛이라는 최적의 조건에서 블랙 파이의 외계 세포들은 증식을 거듭했다. 외계 세포의 최초 발견자인 우리 역시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게 점점 더 커지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하문형 박사에게 물었다.
“이런 애들이 햇빛을 막으면, 플랑크톤이 살지 못해. 플랑크톤이 사라지면 물고기도 사라지고, 우리가 먹을 것도 없어지고… 게다가 블랙 파이는 점점 더 빠르게 커질 거야.”
“더 빠르게 커진다고요?”
“다른 미생물을 키워봐도 비슷하지만, 보통 군집의 변두리 부분에서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서 군체가 커지거든. 근데 크기가 커지면 변두리도 더 길어지잖아. 그러니까 크기가 커질수록 크기가 커지는 속도도 더 빨라지는 거지. 기하급수적으로.”
실제로 블랙 파이의 면적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어느새 블랙 파이의 지름은 10km를 넘어섰다. UN은 결국 블랙 파이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외계 세포는 일반적인 소독제에 죽지 않는다. 락스나 염산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세포막을 파괴할 수 있었다. 블랙 파이는 바다에 떠 있어서 대량의 화학물질을 사용할 경우 해양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었다. 때문에 화학적인 방법보다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블랙 파이를 제거하는 방법이 고려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블랙 파이에 대한 폭격이었다. 대양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항공모함에서 폭격기가 이륙해 폭탄을 떨어뜨려야 했다. 북태평양과 호주에 있던 미국 항공모함들이 폭탄을 가득 실어 블랙 파이까지 다가오는 데 일주일이 걸렸고, 이들은 며칠 동안 신나게 블랙 파이 위에 네이팜탄과 백린탄을 떨어뜨렸다(이들은 넓은 범위에 고온의 불길로 피해를 주는 폭탄이다). 과학자들은 폭탄에 의해 블랙 파이가 파괴되는 속도와 블랙 파이가 커지는 속도를 비교했는데, 폭탄 투하로 이들을 궤멸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뉴욕타임스 헤드라인은 “지구는 타이타닉인가?”였다. 타이타닉이 빙산과 부딪힌 직후, 배를 설계한 토마스 앤드루스는 타이타닉이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머지않아 침몰한다는 걸 계산했다. 과학자들도 블랙 파이의 증가속도와 이들이 생산하는 산소량을 계산해서 블랙 파이가 지구 생태계를 붕괴시키기까지 20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블랙 파이는 점점 커졌고, 지름이 400km에 이르렀다. 지구에 남한만 한 검은 반점이 생긴 것이다.
생존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각국 정부와 구글은 블랙 파이를 없애는 해법을 내는 사람에게 10억 달러를 주겠다고 공표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모든 연구자에게 블랙 파이를 없앨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외래종, 아니 외계 종에게는 천적도 없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바이러스도 A 세포를 감염시킬 수 없었는데, 애당초 바이러스가 필요로 하는 리보솜 같은 세포소기관이 이 외계 세포 안에는 없었다. 그것은 바이러스가 와인잔을 감염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블랙 파이는 접근 금지 구역으로 설정됐다. 블랙 파이를 잘못 건드리다가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면 다른 곳에도 블랙 파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유튜버가 배를 타고 가서 블랙 파이를 맛보았다. 그는 썩은 낙엽으로 만든 젤리 같다고 평했다. 얼마 뒤 그 유튜버는 위장에 구멍이 뚫려 긴급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후에는 금지 구역에 접근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맛과 위험성 때문인지 동물들도 블랙 파이를 먹지 않았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블랙 파이를 발견하고 몇 년이 지났다. 블랙 파이에 의한 지구 생태계 붕괴는 점진적인 과정이었기에, 그 효과 역시 천천히 나타났다. 우선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낮아지면서 여러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블랙 파이는 거의 100% 효율로 광합성을 일으켰기에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변환시키는 속도도 빨랐다. 햇빛이 약한 화성에서 생존하려다 보니 높은 광합성 효율을 진화시킨 것 같았다. 현대 지구의 골칫거리인 이산화탄소가 이 외계 반점 때문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너무 많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북반구의 겨울은 혹독하게 찾아왔다. 흉흉해진 민심으로 물가까지 올라서 사람들은 난방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광합성으로 산소 농도가 높아지니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했다. 원래 건조했던 아프리카나 호주, 미국 서부에서는 대형 화재가 잡히지 않았다. 물을 뿌려대도 조그마한 불씨는 다시금 고농도의 산소를 먹고 타올랐다. 이산화탄소가 적어지니 그것을 먹고 사는 식물들의 성장도 둔화하여 곡물 수확량도 감소했다. 블랙 파이가 만들어낸 포도당으로 인해 블랙 파이 근처에서는 부영양화, 즉 적조 현상이 발생했다. 태평양의 어획량도 전반적으로 감소해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 각국은 고육지책으로 석탄 발전소와 LNG 발전소를 가동해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공급했다.
그러는 사이 각국의 연구실은 A 세포의 초보적인 생물학적 특성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먼저 블랙 파이의 A 세포들은 서로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평평한 세포는 광합성을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뚱뚱한 세포는 그 과정에서 나온 영양분을 저장한다. 긴 모양의 세포는 분열에 집중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인간의 뇌세포와 위장 세포가 다른 것만큼 A 세포들이 다른 건 아니었는데, A 세포들은 서로 모양과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것 같았다. 양분을 저장하는 세포가 경우에 따라 분열하는 세포로 역할을 바꾸는 식이다. 신기하게도 A 세포 역시 지구의 생명체처럼 DNA에 유전정보를 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A 세포와 지구의 세포가 공통 조상을 가지는지 궁금해했지만, 학문적 호기심보다는 A 세포의 박멸이 우선이었다.
외계 생명체에 의한 지구 멸망은 나도 자주 상상해보고는 했다. SF 영화처럼 뛰어난 지성을 가진 외계인이 UFO를 타고 올 줄 알았지, 이처럼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지구를 멸망시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UN은 그해 5월 31일까지 블랙 파이를 제거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경우, 수소폭탄과 원자폭탄을 대량으로 투하하겠다고 발표했다. 필요한 원자폭탄은 1만 발이 넘었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핵보유국들은 자신들이 가진 핵폭탄을 모두 내놓겠다고 밝혔다. 물론 1만 발이 넘는 핵폭탄을 쓰면 방사성 낙진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 원자 폭탄보다 위력은 더 크고 방사성 오염이 발생하지 않는 수소 폭탄을 써도 되지만, 이 폭탄은 너무 센 폭탄이라 그 수량이 많지 않았다. 개발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여러 발을 쏠 상황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블랙 파이는 대부분 원자 폭탄으로 파괴될 예정이었다. 블랙 파이를 지구의 암이라고 한다면, 암을 치료하기 위해 부작용이 큰 방사선 항암치료를 시행하는 셈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블랙 파이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어 방사성 물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나마 적고, 바다에 희석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태평양산 물고기를 먹는 건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암에 걸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 도의적 책임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외계 세포 발견 이후 나는 남극기지에서 복귀해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로 출근하고 있었다. 나는 지구물리학자로서 해류를 따라 움직이는 블랙 파이의 구조적 안정성을 연구하고 있었다. 극지연구소의 다른 연구자들도 A 세포를 분석했는데, 딱히 주목할만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날도 나는 연구실에서 코드를 짜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장님이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전화를 걸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명인대학교 생명과학부의 오재식 교수라고 합니다.”
소장의 방에 들어가자 진화생물학자 오재식 교수가 인사를 건넸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이론 진화생물학자라고 해서 이름은 몇 번 들어보았는데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명인대 오재식 교수님이 블랙 파이 제거 방법을 찾았다고 해서 불렀어요. 최초 발견자인 유지혜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듣고 싶어서요.” 소장이 말했다. 나는 바로 아이디어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박사님, 혹시 ‘암세포가 암에 걸려 암이 나았습니다’라는 인터넷 유머를 들어보셨나요?” 오재식 교수가 물었다.
“네, 들어는 봤어요. 답답한 상황에서 보통 암 걸릴 것 같다고 표현하는데, 답답한 상황이 연속으로 일어날 때 쓰는 말이죠.” 내가 답했다.
“만약 블랙 파이를 지구의 암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 암세포가 암에 걸리게 할 겁니다.”
“암의 암세포라… 그런 세포는 어떻게 만들죠?”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만들죠.”
“세렌디피티? 우연이라는 뜻인가요?”
“다르게 말하면 지루한 단순 반복이라는 뜻입니다. A 세포에 강력한 자외선과 방사선을 쏜다면 대부분의 세포는 죽겠지만, 어떤 세포에는 변이가 일어날 겁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이기적인 게으름뱅이를 찾아내야 해요. 그걸 블랙 파이에 뿌리는 겁니다. 그러면 블랙 파이는 게으름뱅이들로 가득 차서 멸망하겠죠. 그 이기적인 게으름뱅이가 바로 암세포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극지연구소에 있는 A 세포 연구팀과 같이 진행하고 싶습니다.”
“암세포를 만들어 블랙 파이를 없앤다… 흥미로운 아이디어 같아요. 근데 명인대학교 생명과학부의 다른 연구실과 협업할 수도 있는데 왜 극지연구소까지 찾아오신 거죠?” 내가 물었다.
“아, 저희 학교 교수님들은 이 아이디어가 별로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들 항생제나 소독약처럼 분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죠. 지금까지는 그게 통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블랙 파이의 암세포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마침 극지연구소에는 암석 내부를 조사할 때 사용하는 강력한 X선 촬영 기계가 있었다. 그 기계로 X선을 쏘면 A 세포의 DNA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성질이 바뀔 것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세포는 보통 죽지만, 운이 좋다면 성질이 달라진 세포가 생겨날 수 있었다. 즉 우리는 진화의 과정을 가속시켜서 원하는 돌연변이를 찾는 것이다. 오재식 교수는 A 세포의 암이 될 돌연변이가 다음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했다.
(1) 광합성이나 에너지 저장 같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세포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에너지 대부분을 자신의 분열에 사용해야 한다.
(2) 분열 속도가 다른 A 세포보다 빠르고, 분열을 멈추라는 다른 세포들의 신호를 무시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A 세포에 X선을 쏘았다. 만개의 세포에 방사선을 쪼이면, 살아남는 세포는 한두 개였다. 우리는 살아 남은 세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원하는 조건을 만족하는지 테스트했는데, 물론 매번 허탕이었다. 어차피 우연에 기반한 방법이기에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반복 끝에 우리는 게으름뱅이 세포를 찾아냈다. 이 세포는 광합성도, 에너지 저장도 하지 않았다.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족족 번식하는 이 세포를 배양해서 LZ 세포주(Strain)라는 이름을 붙였다. LZ는 Lazy에서 따온 것이다. 오재식 교수는 이제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적인 A 세포는 주위에 많은 동료가 있으면 분열하지 않는다. 대장균이나 효모 같은 지구의 미생물도 정족수감지(Quorum sensing)라는 과정을 통해 주위에 자신의 동료가 많으면 분열을 멈춘다. 덕분에 한정된 자원 상황에서 지나치게 개체 수가 많아져 공멸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A 세포 역시 이런 기작 덕분에 블랙 파이의 중심부에서는 분열이 활발하지 않아 블랙 파이가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만일 중심부의 세포 분열이 주변부처럼 활발하다면, 중심부에 필요 이상으로 세포가 많아져 전반적인 블랙 파이의 구조도 불안정해질 것이다. 때문에 A세포는 주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어떠한 화학물질을 내보내고, 그 화학물질이 많다면 A 세포는 분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신호 전달 물질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게 어떤 물질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오재식 교수는 이제 게으른 LZ 세포를 대상으로 주위에 동료가 많아도 분열을 계속하는 돌연변이 세포를 만들자고 했다. 역시나 막노동, 아니 반복 시도를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고, 우리는 결국 LZC라는 게으르고 분열만 계속하는 암 세포주를 만들어냈다. LZC는 Lazy cancer의 약자이다.
UN이 공표한 핵폭탄 투하까지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정부와 UN에 연락했다. 얼마 뒤 UN은 핵폭탄을 투하하기 2주 전에 암세포를 뿌려보고, 2주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면 핵 폭격을 보류하지만, 효과가 발견되지 않으면 예정대로 핵 폭격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LZC 세포주를 대량으로 배양해 이들을 커다란 드럼통에 담았다. 해군 함정이 이들을 실어 태평양에 있는 블랙 파이까지 갔다. 블랙 파이는 성장을 거듭해 지름이 1500km에 달했다. 해군의 링스 헬기가 블랙 파이와 함정을 오가면서 LZC 세포를 상공에서 살포했다. 이 세포는 광합성을 하지 않아서인지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지는 않았는데, 특히나 붉은빛을 잘 반사했다. 그래서인지 헬기에서 피를 뿌리는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속죄의식을 행할 때 제물의 피를 뿌리는데, 붉은 배양액 살포는 마치 인류의 업보에 대한 속죄 의식처럼 느껴졌다. 이번 사태가 무사히 지나가면 인류는 환경에 대해 좀 더 성숙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LZC 세포의 분열 속도를 고려한 우리의 계산이 맞다면, 10일 뒤부터는 블랙 파이의 곳곳에 붉은 반점이 보일 것이다. 암세포의 암세포가 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초조하게 암세포 접종의 결과를 기다렸고, 핵폭탄 투하 예정일이 점점 다가왔다. UN은 몇 시간의 회의 끝에 핵폭탄 계획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블랙 파이의 곳곳에서 붉은 반점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블랙 파이의 양분을 빨아먹으면서 번식하는 LZC 세포 덕분에 블랙 파이의 성장 속도가 느려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A 세포들이 괴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LZC 세포는 점차 퍼져 나갔고, 각국의 함정은 이 시기에 맞춰 블랙 파이 위에 네이팜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떨어져나온 작은 덩어리들은 화염 방사기로 태워버렸다. 인류가 회심의 일격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말이죠. 지구도 마찬가지예요. 멸망시키지 못했으니, 우리는 이제 면역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A 세포에게도 이 말이 적용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만든 암세포에 면역을 가진 A 세포가 하나라도 남게 되면 지구는 이번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겁니다. 이번 회심의 일격에서 태평양에 떠 있는 A 세포를 모조리 박멸해야 해요.”
오재식 교수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리를 꼰 채로 말했다.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은 영어로 Alien species이다. Alien에는 외계라는 뜻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다른 곳에서 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Alien이라는 단어를 굳이 구분해 쓸 필요가 없었다. 외계에서 온 종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는 외래종과 외계 종을 구분하기 위해 Exotic species와 Alien species라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아는 유일한 외계 종(Alien species)은 실험실을 제외한 지구 모든 곳에서 멸종되었다.
UN 환경계획(UNEP)은 앞으로 적도 바다 위에 블랙 파이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무분별하게 퍼져 나가지 않게 방책만 잘 설치한다면, 지구를 위협하는 온난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제를 위해서는 A 세포의 생물학적 특성을 밝혀야 했다. 전 세계 연구실들은 외계 세포에 관한 연구 결과를 쏟아내고 있었다. A 세포는 지구에게 독이지만, 때로는 독으로 신약을 만든다.
콘드라이트
스트로마톨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