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은 매우 요긴한 식재료입니다. 인류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며, 우리나라에 공급되는 양만 2021년 1분기 기준 하루에 3982만 개나 됩니다. 식재료로서 달걀이 또 흥미로운 점은 생산과 동시에 포장돼 나온다는 점일 겁니다. 딱딱한 알껍데기 덕분에 흰자와 노른자는 추가적인 공정 없이 식탁까지 전달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딱딱한’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딱딱함 덕분에 알껍데기는 오랜 시간 보존하기에 상당히 유리한 물질이고, 따라서 화석이 되기에도 유리합니다. 알 화석은 전 세계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한국은 알 화석이 자주 발견되는 편이죠. 발견된 알 화석 안에서 배아가 발견되면 학술적 가치는 더욱 커집니다.
공룡알 연구의 보물, 배아 화석
공룡알 화석은 공룡이 살던 시대인 중생대 퇴적층,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백악기 퇴적층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공룡알 화석을 현미경과 다양한 분석 장비를 통해 연구하면 독특한 형태적, 화학적 특성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특성들로 공룡의 번식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집중되는 주제는 ‘어떤 공룡이 낳은 알이냐’는 겁니다. 공룡알이 새로 발견됐을 때 그 알을 낳은 공룡 분류군을 추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룡알 속에 함께 보존된 배아 화석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룡알 안에 배아 화석이 함께 보존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기 때문에, 고생물학자들은 배아 화석이 알에서 발견될 때마다 매우 기뻐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논문은 예외적인 수준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공룡알과 배아 화석을 다룹니다. 배아 화석도 발생 초기 단계면 약간의 뼈만 남아 있을 뿐 정보량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보고된 화석은 배아 발생의 후기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뼈들이 모두 존재하며 이것들이 살아 있을 때 모양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붙어 있습니다. 베테랑 고생물학자들도 감탄할 만한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질학과 생물학의 경계에서
화석이 묻힌 땅은 당시에는 부드러운 흙과 모래였을 겁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것들은 대부분 단단한 암석이 됩니다. 흔히 퇴적암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보존된 배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암석을 제거해야 합니다. 고생물학에서는 이를 위해 ‘에어 스크라이브’라는 장비를 사용합니다. 스크라이브는 압축 공기를 이용해 날카로운 침을 진동시키는 장비입니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암석을 미세하게 떼어 내 화석만 노출시켜 연구할 수 있습니다.
배아 화석을 연구할 때에는 생물학적인 지식, 그중에서도 비교 해부학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공룡의 해부학적 지식을 활용해 배아 화석이 어떤 공룡 분류군에 속하는지 알아내고 배아의 분류학상 소속과 명칭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 배아를 감싼 알이 어떤 공룡의 것인지도 알 수 있겠죠. 또한 이번 연구에서는 공룡 배아의 자세를 현생 조류 배아의 발생과정과 비교해 어떤 단계와 가장 유사한지 분석했습니다.이를 통해 해당 배아 화석이 취한 자세가 새끼 조류가 부화 직전 2~3일 전에 머리를 날개 밑으로 밀어 넣는 자세(발생학 용어로 ‘터킹(tucking)’이라고 부름)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고생물학은 이처럼 땅에서 나오는 화석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지질학에 속하기도 하지만 화석이 발견된 이후에는 상당한 수준의 생물학적 지식이 필요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두 분야의 지식이 모두 필요한 경우가 많으며, 지질학적 방법론이 생물학으로 혹은 생물학적 방법론이 지질학으로 흘러가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조류와 소형 육식공룡의 연관성
논문의 저자들은 현생 조류의 발생 과정에서 보이는 특정 자세들이 조류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다는 조류와 분류학적으로 굉장히 가깝던 소형 육식공룡들에서도 나타나던 특징이라는 주장을 제기합니다. 1990년대에 중국 랴오닝 성에서 깃털이 달린 공룡들이 대거 발견돼 조류가 공룡에 속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후, 조류의 고유한 특징으로 여겨지던 생물학적 특징들이 사실은 공룡에서도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번 발견 또한 이와 비슷하게 조류 배아의 자세에서 보이는 특징이 사실은 굉장히 긴 역사를 가진 특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화라고 하면 항상 새로운 특징들이 등장하고 전에 없던 무언가가 나타나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고생물학의 다양한 발견들은 한번 잘 확립된 특징들이 매우 오랫동안 생물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진화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 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최승. 중국과학원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화석알과 현생알의 다양성과 진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seung05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