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에서 조선 전기 금속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그간 문헌으로만 전해 내려온 유물들이 속속 실체를 드러낸 ‘국보급 발굴’이었다. 과학동아는 같은 해 9월호에서 가슴 떨리는 순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2022년 7월 14일,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인사동에서 발굴된 유물을 연구해 자격루의 두뇌 ‘주전’의 비밀을 풀었다는 발표다.
발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연구를 이끈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사과장에게 뒷이야기를 들었다.
“임금께서는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게 되면 중벌을 면치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호군 장영실에게 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 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이에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리므로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
세종실록 ‘보루각기(報漏閣記)’에는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즉 자격루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1434년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이 경복궁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자격루를 처음 설치할 당시의 이야기다. 보루각 자격루는 이후 조선의 국가 표준시계로 활약했다.
2021년 6월 24일, 수도문물연구원에서 사진을 보내왔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유물의 사진이었다. 보자마자 보루각기가 떠올랐다. 그간 자격루를 복원하며 수도 없이 읽은 문헌이었다. 뇌리를 스친 건 그중에서도 자격루에 있는 ‘주전(籌箭)’이란 장치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부분이다. 주전은 자격루의 수량제어 부분과 시간을 알려 주는 자동 시보 부분을 연결하는 장치로 묘사돼 있다.
인사동에서 출토된 유물은 ‘1전(一箭)’이라고 쓰여있는 동판을 포함해 구멍이 뚫린 동판 여러 점과 원통형 기구들이었다. 보루각기에서 설명한 대로 주전이 나타난다면 사진 속 금속유물과 똑같이 생겼을 터였다. 그간 문헌 자료로만 상상해보던 자격루의 두뇌, 주전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는 조선 전기의 하이테크
자격루를 떠올리면 흔히 돌로 된 단 위에 늘어서 있는 여러 개의 항아리를 생각한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던 부분이 여러 개의 항아리로 구성된 수량제어 부분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격루에는 항아리 외에도 다양한 부품이 복잡하게 맞물려 작동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일정한 속도로 흘려보낸 물이 원기둥 모양 항아리에 차오르는 높이를 토대로 시간을 알리는 원리다. 원기둥 모양 항아리를 ‘수수호’라고 부른다. 시간을 확인할 때 일일이 수수호의 수위를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자격루는 뻐꾸기 시계처럼 종, 북, 징소리와 12지신 인형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알렸다. 이렇게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자동 시보 부분이다.
그런데 수수호에 물이 차오르는 건 연속적인 일이다. 매분 매초 변화하는 물 높이를 정해진 길이에 따라 나눠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야 한다. 아날로그 신호인 수위 변화를 디지털 신호인 종, 북, 징소리와 인형의 움직임으로 바꾸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주전의 역할이다.
주전은 당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 수수호에 물이 일정 수위 차오를 때마다 구슬을 방출했다. 그러면 구슬이 자동 시보 부분으로 굴러가면서 동력을 전달하는 원리다. 자동 물시계의 시각 조절 장치이자 동력 전달 장치인 셈이다.
500여 년 전 낮과 밤의 시간을 읽다
2021년 6월 25일, 세부 사진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보루각기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였다. 매우 중요한 유물이 발굴됐음을 직감하고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의 김상혁 연구원과 민병희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문화재를 복원해온 세월이 길어 이젠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드림팀이다.
26일 오후, 확대 출력한 유물 사진을 펼쳐놓고 머리를 맞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루각기 속 주전이 맞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결정적 단서는 동판에 새겨진 1전이라는 글자였다. 보루각기에 따르면 주전은 같은 높이의 동판 두 개가 평행하게 설치된 형태였다. 좌측 동판은 구멍이 12개 뚫려있고, 우측 동판은 구멍이 25개 뚫려있다. 구멍 각각에 구슬 방출기구를 연결하는 식이다. 특히 우측 동판은 1전부터 11전까지 11개를 만들어 절기에 따라 바꿔 사용했다. 인사동에서 발견된 1전 동판이 바로 이 중 첫 번째 동판이라는 데 모두 입을 모았다.
구멍이 12개 뚫려있는 좌측 동판과 25개 뚫려있는 우측 동판. 그리고 이 우측 동판을 11개 만들어 절기마다 바꿔 쓴 이유는 조선시대의 시간 체계에 있다. 조선은 하루를 12시로 나누는 시간 체계를 사용했다. 사극에서 흔히 접하듯, 자시, 묘시, 축시 등 12지신의 이름을 붙여 불렀다. 좌측 동판의 구멍 12개 각각이 12시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밤 시간을 나타내는 체계도 따로 있었다. 해가 졌을 때부터 이튿날 해가 다시 뜰 때까지인 밤 시간은 크게 5개의 경으로 나눈다. 각 경은 다시 5등분해 점으로 나눈다. 그러면 밤을 25점으로 나눌 수 있다. 우측 동판의 25개 구멍이 25점을 알렸다. 그런데 밤의 길이가 매일 달라진다는 점이 문제다. 밤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도 절기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조정해야 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밤의 길이 변화를 완벽히 계산해 각 절기에 사용할 동판을 각각 만들어 사용했다.
조선의 밤 시간 구분과 이에 따른 주전 사용법은 ‘누주통의(漏籌通義)’란 지침서에 자세히 적혀있다. 누주통의에 따르면 1전은 동지 전후, 6전은 춘분과 추분 경, 11전은 하지 전후에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발견된 동판은 1전이라고 쓰여있는 것 외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 부분이 잘려나간 채로 발견된 동판이 두 개 더 있었다. 두 동판이 어느 절기를 나타내는 주전인지 알아내는 게 연구팀의 당면 과제였다.
동판 위 흔적을 더듬다 터져나온 ‘유레카’
1전 동판을 쳐다보며 골똘히 궁리하던 중이었다. 동판에 선이 가로로 아로새겨진 게 눈에 띄었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가로선과 세로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 구멍의 위치를 재단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1전 동판과 함께 발견된 나머지 두 동판도 마찬가지였다. 유레카.
가로선 사이의 간격을 누주통의와 비교해 분석했다. 누주통의에는 밤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 1점의 길이가 절기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적혀있다. 예를 들어, 1전 동판을 사용하는 동지 전후의 경우, 1점은 13.2분이다. 그리고 1전 동판에서 1점에 해당하는 가로선 사이 간격은 47mm다. 기준이 되는 1전에 대한 정보를 다 밝혔으니 남은 건 간단한 비례식을 푸는 것뿐이다. 계산 결과 나머지 두 동판이 각각 3전과 6전에 해당하는 주전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밤 시간을 알려주는 경점용 주전 11개는 물론 12시를 알려주는 12시용 주전까지 어렵지 않게 복원 설계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남아있는 과제는 복원된 주전을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보루각 자격루를 보다 원형에 가깝게 만드는 게 목표다. 그러나 아직 자격루에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 자동 시보 부분이다. 남아있는 유물이 없고, 보루각기에만 그 구조와 원리가 쓰여있을 뿐이다. 주전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이 부분과 관련된 유물이 서울 어느 곳에서 반드시 발견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자격루의 또 다른 비밀이 밝혀지는 가슴 벅차오르는 순간이 다시금 찾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