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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중독에 강하거나 약하거나 우리 뇌에 달려 있다

‘너 게임 중독이야.’


중,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게임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죠.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그리 많이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좋아해서 그것을 계속 원하는 상태를 ‘중독’이라는 단어로 줄여서 가볍게 표현하곤 합니다. 농담 삼아 스스로를 ‘떡볶이 중독자’라거나 ‘마라 중독자’로 자처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쓰는 단어지만 신경생물학에서 중독이란 그렇게 가볍게 표현할 수 없는, 훨씬 심각한 상태를 뜻합니다.

 

고장난 보상회로가 중독으로 연결


신경생물학에서의 중독은 어떤 물질이나 행위에 빠져 그것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탐닉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넘어서 말이죠. 


간단히 말하면 이것이 나에게 나쁜 것임을 알고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니코틴에 중독된 사람들은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끊지 못합니다. 더 강력한 물질인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마약을 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모두 파괴하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무언가에 중독되는 걸까요. 동물의 뇌는 어떤 행동이 즐거움을 주게 되면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이렇게 보상을 통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뇌의 ‘보상회로’ 작동 때문입니다. 중뇌의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에서 전뇌의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연결된 신경회로를 보상회로라고 부릅니다. 보상회로의 작동에는 복측피개영역에서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약류는 일반적인 행위나 물질들로는 도달할 수 없을 수준으로 보상회로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보상회로를 망가뜨리고 사용자를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중독시킵니다.


대표적인 마약 중 하나인 코카인은 코카나무에서 추출합니다. 코카인 사용자 중 20%는 만성적으로 중독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마약인데 누구는 쉽게 중독되고, 다른 누군가는 잘 중독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이 현상이 개인 의지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중독에 취약한 뇌와 강인한 뇌


이번에 살펴볼 논문에서는 코카인을 스스로 투여할 수 있도록 쥐를 학습시켜 코카인에 중독된 뇌와 코카인을 사용했지만 중독되지 않은 뇌의 차이를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먼저 실험 쥐에게 스스로 코카인을 투여할 수 있는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구멍에 코를 찔러 코카인을 투여하는 방법도 훈련시켰습니다.


이후 쥐들은 여러 상황에 노출됐습니다. 점진적으로 더 많이 코를 찔러야만 코카인이 나오거나, 코를 찌르면 일정 확률로 전기충격도 받는 상황, 마지막으로 코를 찔러도 코카인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쥐들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는 모든 상황에서 코카인을 얻기 위해 코를 찌르는 중독자와 같은 행동을 보였고, 다른 일부는 코카인을 얻기 어려워지자 금세 포기했습니다. 행동실험으로 코카인에 중독된 쥐와 코카인을 사용했지만 중독되지 않은 쥐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들 뇌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측좌핵에 전극을 설치하고 코카인을 투여하며 신경세포의 활동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중독되지 않은 쥐와 코카인을 처음 겪는 쥐의 경우 측좌핵의 콜린성 신경세포(Cholinergic Interneurons)가 코카인에 강한 활성을 보였습니다. 반면 중독된 쥐에서는 콜린성 신경세포가 코카인에 의해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도파민 제2형 수용체 발현 따라 달랐다


연구자들은 앞선 실험을 통해 중독된 쥐와 중독되지 않은 쥐의 측좌핵 콜린성 신경세포가 발현하는 유전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콜린성 신경세포를 분리해 RNA 염기서열을 분석했습니다. RNA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해당 세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의 종류와 양을 알 수 있습니다. 


염기서열을 분석해 보니 중독된 쥐의 콜린성 신경세포에서 도파민의 제2형 수용체인 ‘DRD2’가 더 많이 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DRD2는 도파민에 의해 신경세포의 활성을 떨어뜨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DRD2의 발현을 제어해 중독을 조절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유전공학 기술로 쥐의 DRD2 유전자를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발현시킨 뒤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DRD2 유전자가 많이 발현되면 코카인을 더 강하게 갈구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코카인을 원하는 정도가 약했습니다. DRD2 발현에 따라 코카인에 중독되는 경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DRD2는 흡연, 음주, 도박 등 여러 형태의 중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만 DRD2 유전자의 발현이 코카인 중독에 대한 취약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단서는 이번 논문을 통해서 처음 제시됐습니다. 또 DRD2의 발현을 조절해 중독을 관리할 수 있다면, 코카인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중독’이라는 질병


이 논문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측좌핵 콜린성 신경세포의 도파민 수용체 발현이 코카인 중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혔습니다. 사실 측좌핵은 뇌의 수많은 부위 중 하나일 뿐이고, 측좌핵에서 콜린성 신경세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2%입니다.
DRD2는 콜린성 신경세포가 발현하는 수많은 유전자 중 하나일 뿐이죠. 이처럼 적은 양의 단백질이 신경세포의 활동을 바꾸고, 그 변화가 동물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생명체에 대한 신기함을 주는 것을 넘어 중독이라는 질병에 대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중독은 무턱대고 참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뇌의 보상회로가 망가진 질병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것처럼 단백질 하나의 발현도 중독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중독을 질병으로 여기기보다는 중독자를 한심하게 여기고, 그들의 의지력 부족을 탓하곤 합니다.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기 위한 개인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독에 취약한 뇌를 갖게 된 것을 두고 그 사람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국 중독 환자의 의지를 탓하기보다는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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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과학동아 정보

  • 성기봉 포스텍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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