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지속가능화학 연구실에는 여느 연구실에서 보지 못했던 실험 장비가 있었다. 마치 식물의 뿌리처럼 긴 섬유 가닥이 물이 담긴 비커 안에 뻗어있었다. 김성균 DGIST 화학물리학과 교수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쏟아지는 시대에 왜 이와 같은 연구를 하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느끼기 힘들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도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제가 태양광 해수 담수화 소재 연구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자연의 힘으로 자연을 보호한다
바닷물은 지구상의 물 전체에서 97.5% 정도를 차지하지만, 염분을 포함한 각종 이온이 녹아 있어 마시거나 자원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온교환 수지, 전기투석 등 방법으로 이온을 제거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담수로 바꾼다. 하지만 기존 방식에는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 넓은 면적이 필요했다.
김 교수는 “기존 방식으로 해수를 담수로 만들면 화석연료로 만든 에너지가 쓰이고, 그 결과 환경 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태양광 해수 담수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 해수 담수화는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으로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이를 포집해 담수를 얻는 기술이다.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환경 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태양광 해수 담수화에 필요한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같은 면적에서 많은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친수성과 태양광을 열에너지로 만드는 광열변환 효율, 해수에서 석출된 염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세 가지 기능이 뛰어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태양광 해수 담수화 상용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5일 김 교수팀은 천연 고분자 소재인 한천과 셀룰로스 나노섬유를 이용해 만든 태양광 해수 담수화 장치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디살리네이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한천을 기반으로 소량의 셀룰로스 나노섬유를 이용해 광열변환 재료인 프러시안 블루를 고르게 분포시켰다. 그 결과 1시간 동안 단위면적(1m2)에서 2.22kg의 물을 증발시켰다.
높은 효율과 함께 재가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김 교수는 “한천은 열 가공으로 손쉽게 재사용할 수 있는데, 네 번까지 재가공해도 효율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며 “이 결과는 지금까지 개발된 태양광 해수 담수화 소재 중 재가공이 가능한 유일한 사례”라고 말했다. doi: 10.1016/j.desal.2021.115477
지속 가능한 미래 환경을 위해
“태양광 해수 담수화 기술은 실증 연구가 가능한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대기 중 수분 포집 기술연구의 중요성이 큽니다.”
김 교수의 다음 목표는 바닷물마저도 이용할 수 없는 내륙 지역에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기 중에서 수증기를 포집하고, 이를 수집해 수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특히 사막 지역에서 밤낮의 높은 온도 차를 이용해 수증기를 액화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구현하는 소재의 개발은 매우 어렵다. 건조한 공기에서 수분을 흡착하려면 매우 강한 친수성이 요구되면서도 흡수한 물을 다시 방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수분을 흡착하면 소재가 팽창하고 방출하면 수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재의 구조가 무너지며 반복 사용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아직까지 이 방법으로 꾸준히 물을 얻기 위해서는 큰 비용과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연구팀에서는 물의 흡수와 방출이 쉬운 소재를 개발하는 단계에 그치고 있다”며 “고분자를 다른 재료와 섞은 복합소재를 이용해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지속 가능한 화학’이라 표현한다. 실제로 지속 가능한 화학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물 부족 문제는 아직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는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물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속 가능하면서도 우리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와 같은 연구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