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숲
크레이그 포스터, 로스 프릴링크 지음
이충호 옮김│해나무│392쪽│2만 원
‘문어 이야기에 눈물이 나오다니’.
넷플릭스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을 감상한 직후 머릿속엔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문어가 지능이 높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사람과 문어 사이의 진정한 우정 앞에서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 감정에는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영화는 감독인 크레이그 포스터가 남아프리카의 바다에서 우연히 암컷 참문어(Octopus vulgaris)와 교감을 나누게 되고 1년에 걸쳐 우정을 쌓는 이야기다. 영화 중반에 문어가 그를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다리를 쭉 뻗어 그의 손을 감싸는 순간, 그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 문어는 더 이상 이전의 문어와 같지 않다. 문어와의 첫 교감 이후 그는 이 문어의 천재적인 은신술을 지켜보고 함께 사냥을 다니며 문어를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여기게 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장벽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인간이 동물과 따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며 인간과 문어 모두 동물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쉬이 무시해 버린 채 살고 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반도에서 수렵과 잠수를 하며 자란 포스터 감독은 오히려 자연을 스승이자 부양자로 여긴다. 바다에서는 물에 아주 작은 압력파만 일으키도록 최대한 작고 조용하게 움직이며, 한 동물로서 다른 동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에겐 문어뿐만 아니라 멧고둥, 성게, 갑오징어, 수달, 파자마상어 등 다양한 선생님이 존재한다. 덕분에 그는 과학자들도 미처 몰랐던 새로운 해양 생물 종을 발견하고, 그들의 습성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와 함께 남아프리카의 바다에서 잠수한 경험들을 책 ‘바다의 숲’으로 엮은 로스 프릴링크는 “크레이그는 잠수복 없이 맨몸으로 프리다이빙을 권하며 ‘추적’이라 불리는 바다숲의 생물학적 마음이 작용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설명했다”며 “크레이그를 잘 봐줘야 기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그와 잠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이 책은 주로 프릴링크가 자연에 몰입한 ‘기인’ 정도로 여겼던 포스터와 함께 바다를 누비며 자연에 동화돼 가는 과정을 그린다. 동시에 포스터가 다양한 해양 동물 선생님을 만나며 느꼈던 감정도 내밀하게 서술돼 있다. 문어 선생님 역시 책의 한 챕터를 차지한다.
사랑과 연결의 힘은 언제나 조용히 승리한다
다정함의 과학
켈리 하딩 지음│이현주 옮김
더퀘스트│376쪽│1만 9000원
동물과 인간 사이에 두툼한 장벽을 뒀던 프릴링크가 야생 동물들과 우정을 맺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야생 동물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병원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을 집계해보면 단연 선두에 있을 단어다. 나 역시 다양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그 시작과 끝엔 늘 ‘스트레스’가 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하셨나요?” “스트레스를 조심하세요”와 같은 식이다.
높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 호르몬이 분비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과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질병에 꼬리표처럼 스트레스가 붙는 데는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단선적인 궤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스트레스의 반대편엔 ‘다정함’이 있다. 스트레스가 현대인에게 벗어날 수 없는 악령 같은 존재라면, 다정함은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는 수호자다. 다정함 역시 그 영향이 단선적인 궤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정함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1978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로버트 네렘 미국 조지아공대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토끼들에게 고지방 사료를 꾸준히 먹이고 몇 달 후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대개는 혈관에 지방이 많이 쌓였지만 유독 한 무리의 토끼만 혈관에 쌓인 지방이 60%나 적었다. 이 무리의 실험자는 그 연구실에서 특히나 다정하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그는 토끼에게 때마다 말을 걸고, 쓰다듬는 등 애정을 줬다. 실험자의 다정함이 토끼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켈리 하딩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다정함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정신의학 전문가다. 다정함에는 가족과 친구, 이웃과 맺는 친밀한 관계, 직장이나 학교에서 북돋아주는 고취감 등이 포함된다. 하딩 교수는 다정함의 효과를 증명하는 수많은 임상 사례들을 책 ‘다정함의 과학’에 담았다. 스트레스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해결서가 될 수 있다. ‘다정도 병인 양’이 아니라 ‘다정도 약인 양’해야 한다는 새로운 해결책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