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동과숙수의 신제품은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입니다.
이미 조리된 상태로 구입해 집에서 간단히 근사한 한 상을 차려낼 수 있는 마법 같은 제품입니다. 간단히 먹을 수 있으면서도 맛, 안전, 영양 그 무엇하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HMR 속 다양한 식품기술 덕이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연구실의 실험대에서 만들어져 당신의 식탁에서 완성되는 HMR을 동과숙수에서 만나보세요.
가정간편식(HMR)은 ‘그대로 또는 단순한 조리를 통해 섭취할 수 있도록 제조, 가공, 포장한 형태의 제품’을 말합니다. 별도의 조리 없이 섭취할 수 있는(RTE·Ready To Eat) 제품은 대표적으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이나 김밥, 샐러드 등이 있죠. 최근에는 단순 가열(RTH·Ready To Heat), 단순한 조리(RTC·Ready To Cook)만으로도 잘 차려진 한 상을 맛볼 수 있는 즉석조리식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조리에 필요한 재료만 제공하는(RTP·Ready To Prepare) 밀키트 형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냉동 기술로 간편한 조리 실현하다
HMR의 가장 중요한 인기 요인은 ‘간편함’입니다. 지난해 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가공식품소비자태도조사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HMR을 구매하는 이유 1위는 ‘간편함(20.3%)’이었고, ‘저렴한 비용(17.6%)’ ‘맛(16.4%)’과 ‘짧은 조리시간(15.4%)’이 뒤를 이었죠.
HMR은 요리 실력, 심지어 조리 도구조차도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즉석조리식품 형태로 출시되는 HMR의 경우에는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로 몇 분만 데워도 근사한 한 상이 차려집니다. 마치 마술상자에 제품만 넣으면 그럴듯한 음식이 나타나는 것 같죠. HMR이 품은 간편함의 마술, 그 비밀은 식품가공 기술에 있습니다.
단순 조리와 가열만으로 요리사의 손을 거친 것 같은 요리를 먹으려면 제조를 마친 음식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냉동과 건조 등 과정을 거치는데, HMR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건은 ‘잘 얼리는’ 기술입니다. 음식을 얼리면 내부의 수분이 얼음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부피가 커지면서 식재료의 세포를 파괴하고, 식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얼음 결정을 작고 고르게 만드는 냉동 기술이 HMR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HMR 제품에 적용되는 냉동 기술 중 대표적인 게 개별급속냉동(IQF·Individual Quick Freezing)입니다. 냉동할 식품에 영하 30℃에서 영하 80℃ 수준의 초저온 액체나 기체를 수 분 이내로 분사해 급속냉동하는 방식입니다. 식품을 얼리는 데 드는 시간이 매우 짧아 얼음 결정이 작게 만들어집니다. 신선도와 풍미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식재료를 개별적으로 얼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가령 볶음밥처럼 쌀알 하나하나의 식감이 중요한 경우 더할 나위 없는 기술입니다. 실제로 CJ제일제당, 풀무원, 사조대림 등에서 출시한 대부분의 볶음밥류 HMR이 IQF 기술로 냉동됐습니다.
재료와 식품 종류에 따라 다양한 급속냉동 기술이 쓰입니다. 고기류는 수분을 담아두는 능력인 보수력이 품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냉동할 때 전자기장을 이용하면 물 분자의 이동을 막을 수 있어 보수력이 유지되는 효과를 냅니다. 얼음 결정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초음파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초음파를 쏘면서 식품을 냉동시키면 냉동 속도가 빨라지며 비교적 작은 얼음 결정이 만들어집니다. 냉동된 식품의 품질이 좋아진다는 의미죠.
맛이 없는 식품은 가치가 없다
아무리 간편함으로 무장한 HMR이라도 맛이 없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음식에서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화합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재료가 가지고 있는 분자들은 조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떤 조리 방법을 사용하냐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음식에서 풍미는 입맛을 돋우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풍미 때문에 특정 음식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한번 굽기 시작하면 온 집안을 비린내로 물들이는 생선구이가 대표적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재료를 HMR 제품으로 만들려면 불쾌한 풍미를 줄이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런 전략이 적용된 제품의 예가 바로 최근 출시되는 고등어, 꽁치 등 생선류 HMR입니다. 생선이나 어패류 등 수산물은 애초부터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였습니다. 입맛을 뚝 떨어뜨리는 비린내 때문이었죠. 특히 밀봉해 오랜 시간 동안 유통해야 하는 HMR 제품 특성상 비린내가 점점 더 심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선류 HMR의 비린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특별한 조리 방법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생선구이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300℃ 이상의 고열 증기를 가해 고등어를 구워냈습니다. 윤소영 CJ제일제당 식품개발센터 연구원은 “저산소 조건에서 조리하면 비린내의 원인인 지방 산화를 막아 비린내를 없애고 식감까지 높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재석 신라대 바이오식품공학과 교수팀은 지난해 5월 냉동 고등어를 이용해 해동-찜(증숙)-냉동 과정을 거쳐 HMR 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국제학술지 ‘푸즈(Foods)’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해동, 증숙, 냉동 조건을 달리 조합해가며 최적의 조리법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고주파 해동기(HFD)로 냉동 고등어를 해동하고 181℃의 온도로 9분간 증숙한 뒤 급속냉동한 경우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영양성분도 잘 보존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doi: 10.3390/foods10051135
물론 이런 조건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풍미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식품에서 긍정적인 풍미를 내는 성분은 보호해야겠죠. 김범근 한국식품연구원 가공공정연구단장은 “재료와 식품 고유의 향과 맛을 유지하는 기술은 다양하다”며 “대표적으로 캡슐화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캡슐화는 식품의 화합물을 캡슐에 넣어 가공이나 조리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캡슐화는 영양소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활용되지만, 반대로 불쾌한 향을 가둬 억제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포장기술로 제품군 폭 넓혀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밥과 국, 김치입니다. 그중에서 가공식품 시장에서 최근 몸값을 올리고 있는 국, 찌개류 HMR에도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김 단장은 “모든 가공식품에서 중요하지만, 특히 국물류 HMR 제품에서 중요한 기술은 살균·멸균 기술과 포장기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랜 기간 조리된 상태로 유통되는 HMR은 포장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통 과정에서 부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특수 코팅된 포장재를 쓰고 진공 포장 하는 등 여러 기술이 전통적으로 쓰여왔습니다. 최근에는 포장을 뜯지 않고도 전자레인지에서 조리할 수 있도록 하는 ‘스킨 포장’, 포장재 내부의 수분이 조리 중 서서히 빠져나가며 찜처럼 조리할 수 있는 ‘스팀팩 포장’ 등이 HMR 제품에 활용되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스마트 포장이라는 기술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포장의 역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식품기업이 함께 만든 조리기기 ‘비스포크 큐커’와 연동되는 포장이 있습니다. 밀키트나 가정간편식 포장지에 인쇄된 바코드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조리 온도와 시간이 설정됩니다. 간단한 조리만으로도 먹을 수 있는 게 HMR이라지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일종의 포장지 속의 셰프인 셈입니다.
HMR에는 이외에도 많은 기술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된 기술들은 HMR 이외의 다양한 제품군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령 인구가 섭취하기 편하도록 부드러운 식품을 제조하거나 운동선수들을 위해 단백질 함량을 높인 고영양 제품을 출시하는 데 활용되고 있죠. 김 단장은 “HMR 제조에 쓰이는 식품가공 기술은 보관과 취급을 쉽게 하는 만큼 우주식품 개발에 활용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