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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식물사연] 겨울에 만나는 아카시아 꽃의 비밀

추억의 동요 ‘과수원 길’에 등장하는 아카시아의 원래 이름은 아까시나무다. 식물 분류학상으로는 수도아카시아(pseudoacacia)라는 종명을 가지고 있는데, 가짜(pseudo) 아카시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짜’ 아카시아는 어떤 식물일까.


놀랍게도 아카시아는 1000종 가까이에 이르는 대가족으로, 대부분이 호주의 아열대 기후에서 자란다. 당연히 우리 산야에 자라는 아까시나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지금껏 필자가 본 가장 아름다운 아카시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롱우드 가든에서 만난 아카시아 레프로사(Acacia leprosa)다. 오랑주리(오렌지온실)와 난초온실을 이어주는 좁은 통로 양옆 화단에 열 지어 식재된 이 아카시아는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그 길을 아주 아름답게 장식해 줬다. 가늘고 긴 깃꼴 잎들이 초록 터널을 이루며 몽환적인 느낌을 줬는데, 가드너의 일로 바쁜 와중에도 그 길을 지날 때면 지친 마음이 스르르 녹을 만큼 위안이 됐다. 길의 한쪽 벽면은 바깥으로 수련 연못이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으로 돼 있어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저녁 무렵이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절정을 이뤘다.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전시온실에도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아카시아가 자라고 있다. 특히 한 해가 시작될 무렵 지중해온실에 들어서면 초입부터 풍성한 잎을 가진 아카시아가 방문객들을 반기며 노란 꽃을 피운다. 


이 나무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아카시아 포달리리폴리아(Acacia podalyriifolia)다. 평상시에는 짙은 밤색 나무줄기에 달린 은회색 또는 은청색의 공단 같은 보드라운 잎들이 밝은 햇살 아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면, 꽃이 필 땐 그 잎 사이사이로 동글동글한 솜털 같은 꽃들이 가지를 뒤덮어 극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아카시아 포달리리폴리아는 폭과 높이가 6~9m 정도 크기로 자라는 상록 소교목이다. 세계적인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로 유명한 호주 동부 해안가 퀸즐랜드에 자생하기 때문에 퀸즐랜드 실버 와틀(Queensland Silver Wattle)이라고도 불린다. 

 

개미와 공생하는 아카시아


아카시아 포달리리폴리아는 개미와 상호 유익한 관계를 맺고 있다.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영양소가 풍부한 먹이가 붙어 있다. 개미는 씨앗을 개미굴로 가져간 뒤 먹이를 먹고 씨앗은 그대로 두는데, 결과적으로 씨앗을 땅에 심어 주는 역할을 한다.


멕시코에서 자라는 몇몇 아카시아 종류도 개미와 끈끈한 공생 관계로 유명하다. 황소뿔아카시아라고도 불리는 아카시아 코르니게라(Acacia cornigera, syn. Vachellia cornigera)는 개미의 철통같은 보호를 받는다. 잎을 먹으려고 하는 동물의 얼굴에 개미들이 달라붙어 공격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다른 곤충이나 식물도 쉽게 얼씬거리지 못한다. 가령 기생식물이 다가와 줄기에 덩굴손을 감으려 시도하면 개미들이 즉시 끊어 낸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개미와 공생하는 미생물은 아카시아 잎에 해로운 병원체가 달라붙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개미가 이렇게 애지중지 자신을 지켜 주는 데 대한 보상으로 아카시아는 개미에게 달콤한 음식과 은신처를 제공한다. 


특히 아카시아의 소엽 끝에 달려 있는 양분 덩어리인 벨트체에는 개미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고, 잎자루에서는 개미가 좋아하는 달콤한 꿀물이 나온다. 부풀어 오른 가시 안에 동굴처럼 마련된 은신처는 개미의 안전한 보금자리다.


오늘날 아카시아는 주로 잎을 감상하는 실내 반려식물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각잎아카시아, 둥근잎아카시아, 긴잎아카시아, 자엽아카시아 같은 종류가 예쁜 화분에서 자라며 실내 공간을 장식한다. 


오랜 진화 역사 속에서 다른 생물들과 공생하는 법을 찾아온 아카시아는 이제 도심 한가운데서 인간과의 공생을 도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박원순.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롱우드 가든에서 국제 정원사 양성 과정을 밟았으며, 델라웨어대에서 대중원예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버랜드에서 식물 전시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나는 가드너입니다’ ‘식물의 위로’ ‘미국 정원의 발견’이 있고, ‘세상을 바꾼 식물이야기 100’ ‘식물: 대백과사전’ ‘가드닝: 정원의 역사’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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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에디터

    조혜인 기자
  • 일러스트

    한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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