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Masterpiece)’. 우리말로는 ‘걸작’ ‘명작’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는 상품을 일컫는다. 시대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마스터피스는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에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현대의 기술로 재탄생한 마스터피스도 만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 두 해 동안 영화관에서 신작 영화가 개봉하는 일이 드물었다. 신작 대부분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개봉했고, 영화관은 과거에 이미 개봉했던 영화를 재개봉해 빈자리 일부를 채웠다. 대표적 사례가 2004년 개봉해 국내 영화로서 두 번째 1000만 관객을 달성했던 ‘태극기 휘날리며’다.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두 형제가 적으로 만나게 되며 겪는 갈등을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는 개봉 17년만인 지난 3월 재개봉해 다시 한번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현대 감성에 맞춰, 업스케일링
이 영화가 17년의 시간 간격에도 다시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업스케일링’이다. 업스케일링이란 화질을 높이는 기술이다. 디지털 이미지 또는 영상 픽셀 사이의 간격을 넓혀 새로운 픽셀을 끼워 넣거나 큰 픽셀을 여러 개의 작은 픽셀로 쪼개 더 높은 해상도를 구현해낸다.
과거에는 저화질 영상을 업스케일링하기 위해 각 프레임을 사람이 직접 보정해야 했다. 저화질 영상을 고화질 디스플레이에서 상영하면 픽셀 수가 적어 영상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영상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선 픽셀 사이를 적절한 색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이 색을 사람이 결정해 직접 칠한다.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최근접 이웃 보간법’과 ‘차회선 보간법’이다. 최근접 이웃 보간법은 인접 화소의 색상을 그대로 붙여넣는 방법이고, 차회선 보간법은 평균적인 색상을 입히는 방식이다. 비교적 간단히 구현할 수 있지만, 경계선 부근에서 품질의 저하가 또렷이 보여 실제 화질 개선 효과는 크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수고가 많이 든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더욱 정확하고 간단하게 업스케일링을 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특히 생산적 적대 신경망(GAN)과 지각손실함수가 널리 활용된다. GAN 알고리즘은 ‘생성자’와 ‘감별자’라는 두 신경망 모델을 두고 생성자가 생성한 이미지를 감별자가 원본과 구별할 수 있는지 감별하는 신경망이다. 이를 통해 실제와 비슷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업스케일링에서는 생성자가 저화질 이미지를 업스케일링한 뒤 감별자가 이를 원본(고화질 이미지)으로 인식하도록 훈련한다. 덕분에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고도 눈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화질 개선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역사 자료로서 가치, 필름 복원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디지털 영상의 화질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필름으로 촬영된 과거 영상 콘텐츠 자료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가 이 역할을 맡아 국내외 영화자료를 보존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이곳에 보관된 국내외 영화 필름은 지난 7월 기준 약 1만 2697편, 디지털 파일은 6084편에 달한다. 일종의 영화계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온도와 습기에 취약한 필름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보관고는 항시 적정 온도인 5℃, 30% 습도를 유지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귀중한 문화 자료를 지키기 어렵다. 그렇기에 영상자료원에서는 이곳에 입고된 영화 필름을 보관용인 ‘마스터 포지티브(MP) 필름’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필름의 복사본을 만드는 과정은 문서를 복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존의 필름과 새로운 필름을 겹쳐 빛을 쏴 그대로 새기면 필름 복사본이 완성된다. 원본 필름의 색을 온전히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필름의 색을 분석하는 아날로그 색상 보정기에서 배합한 약품의 도움을 받는다.
이따금 복원이 어려운 필름도 있다. 초산염 필름의 아세테이트 성분이 수분과 반응해 초산을 방출하는 현상인 ‘초산화 증후군’이 심각하게 진행됐거나, 수분이 과도하게 증발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필름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복원하는 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손상이 심할 때는 복원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영상자료원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오래전 필름 영화를 복원하는 이유는 영화를 통해 과거 역사와 문화를 후손들이 간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해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장은 “국내의 고전 영화는 단지 영상 콘텐츠로서의 의미를 벗어나 당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며 “1934년에 개봉한 ‘청춘의 십자로’를 비롯해 총 8개의 영화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필름 영상을 디지털 영상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최근 영화 상영 시설에 필름을 상영할 수 있는 장비가 없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OTT 서비스가 확산하는 등 트렌드가 변했기 때문이다.
필름 영화를 디지털화하는 과정도 물리적인 손상을 복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사기에서 상영이 가능할 수준으로 손상된 부분을 고친 후에는 스캐너를 이용해 영상과 음성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다. 이후에는 편집이 진행되는데, 영화 촬영 후 진행되는 일반적인 편집과는 개념이 다르다. 필름을 스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거나 순서가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간단하게 수정을 하는 수준으로 디지털화 작업이 마무리된다. 조 팀장은 “이 과정을 통해 매년 약 60편의 필름 영화를 디지털화하고 있다”며 “일부 작품은 필름의 손상 흔적을 수정하고 색상을 보정하는 등 추가 공정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중요성이 특히 높은 일부 작품은 심화 복원 작업을 거친다. 필름에 붙은 먼지나 흠집 등에 의해 영상이 손상됐을 경우 작업자가 일일이 확인하고 프레임 단위로 수정해야 한다. 필름은 오래 보관할수록 영상의 붉은 색상이 진해지는데, 이런 색상 변화도 원본과 가깝게 수정해야 한다. 이 과정은 모두 프레임 단위로 사람의 손을 거쳐 진행되기 때문에 연간 8편 수준만이 심화 복원을 거쳐 원본과 같은 수준의 디지털 영상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
이렇게 복원된 과거 영상 자료들은 대중들에게 공개되거나 중요한 역사 자료로도 활용된다. 실제로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탄생도 이들의 노력 덕을 일부 봤다.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1960년 개봉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기생충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계단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 팀장은 “영상 콘텐츠는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 사료인 만큼 귀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