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 속에는 방사성 입자가 들어 있다. 이 입자는 50%의 확률로 붕괴하는데, 붕괴 여부에 따라 고양이의 생사가 결정된다. 그런데 상자를 열고 이 물질을 관측하지 않는 이상 이 물질은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갖고 있고, 관측하는 순간에야 둘 중 하나로 상태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관측하기 전까지 이 고양이는 살아 있는 것인가, 죽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50%는 살아있고 50%는 죽어 있는 것인가. 최근 이 기묘한 논쟁에 해결의 실마리를 줄 실험 방법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로 일컬어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고 실험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기묘한 양자역학의 특성(중첩)을 소개하기 위해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다.
그간 양자역학의 이 같은 특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상보성(입자가 동시에 파동성과 입자성을 갖는 성질)을 실험 방법이 부족해 정량적인 연구 대신 정성적인 연구가 주로 이뤄져 왔다.
전자의 상보성, 파동이다 vs. 입자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을 이론적, 수학적으로 검증하려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시작은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전자를 입자로 가정해 운동을 기술하려 만든 행렬역학 수식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측량, 예를 들어 위치와 가속도는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하이젠베르크는 이 두 가지 물리량으로 운동을 기술하는 대신 진동수와 세기를 바탕으로 전자의 운동을 완벽히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전자를 파동으로 가정한 물리학자도 하나의 수식을 발표했다. 1926년 에르빈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이라는 이름의 방정식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행렬역학과 마찬가지로 전자의 운동을 온전히 표현해냈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 두 개의 수식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전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둘러싼 논쟁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슈뢰딩거가 파동방정식을 발표한 이듬해인 1927년, 미국의 물리학자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거머는 이중슬릿을 이용한 회절실험에서 입자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상보성 원리를 처음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두 개의 틈이 있는 이중 슬릿을 가운데에 두고 한쪽에서는 전자를 쏘는 장치를, 다른 쪽에는 전자의 흔적이 기록되는 스크린을 배치했다. 전자를 쏘자 회절에 의한 간섭무늬가 나타났다. 간섭무늬는 파장의 보강·상쇄 간섭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동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전자가 입자라는 관점에서 간섭무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자가 절반씩 쪼개지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두 물리학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자 입자가 이중 슬릿의 어느 틈을 통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검출기를 부착했다. 하지만 그 이후 실험에서는 더 이상 간섭무늬가 나타나지 않았다. 행렬역학과 파동방정식이 말하는 것처럼 전자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모두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1928년 닐스 보어는 전자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모두 가지며, 이를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성질만을 나타낸다는 상보성 원리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doi: 10.1038/121580a0
양자의 상보성은 기묘함으로 많은 물리학자들을 당황시켰다. 거시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특성을 둘러싸고 물리학자들은 저마다 해석을 내놨다. 그 중에서도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등이 속한 코펜하겐 학파가 내놓은 해석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이르렀다. 이 해석에 따르면, 세계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로 나뉜다. 이 가운데 미시세계에서 양자는 두 가지 상태가 배타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관측하는 순간 한 가지 상태로 나타난다. 이 과정은 확률로 계산될 수 있다. 이 해석의 장점은 계산 결과와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이 같은 해석에 불편함을 느꼈고, 코펜하겐 해석, 나아가 양자역학 자체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기 위해 고양이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그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하지만 상보성 원리에도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두 성질이 한 물체에 동시에 나타나는 상태를 ‘양자 중첩’이라 부르는데, 상보성 원리를 정량적으로 연구해야 중첩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실험 결과를 관측해 수식과 비교해야 하지만, 관측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하며 한 가지 성질만 남는다. 그렇게 상보성 원리의 해석에 관한 문제는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양자역학의 난제로 남아있었다.
슈뢰딩거의 상자를 들여다보다
이런 가운데 국내 과학자들이 상보성 원리를 해석하기 위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윤태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위원)와 조민행 고려대 화학과 교수(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장)는 상보성 원리를 관측하고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실험장치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8월 18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adv.abi9268
양자의 중첩상태를 관측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파동함수의 붕괴다. 시스템 내부에서 양자를 관측하면 상보성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성질만이 남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이를 직접 만든 실험장비인 ‘얽힌 비선형 광자쌍 광원(ENBS·Entangled Nonlinear Bi-photon Source)’으로 극복해냈다. 데이비슨과 거머가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관측을 시도했던 것과 달리, 광자의 이동 경로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파동함수의 붕괴를 우회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ENBS는 각각 두 경로를 이동하는 동일한 세기의 신호 광원 중 한 곳에 단일 광자를 더해 이 차이를 측정하는 시스템이다. 가령 100개의 광자(아이들러 광자)를 만들어 각각 다른 경로로 통과시키며 한쪽에만 단일 광자를 더한다면 측정기에서는 100개의 광자와 101개의 광자가 측정된다. 광자검출기에서 이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다면, 단일 광자의 이동 경로를 알아낼 수 있다. 직접적으로 광자를 관측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광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광자의 수가 많아지면 단일 광자를 더해도(예를 들어 광자 1억 개에 단일 광자를 더한다면) 이를 측정으로 구분해내기 점점 어려워진다.
단일 광자의 이동 경로를 얼마만큼 구분해낼 수 있는지는 입자성과 파동성에 관련된다. 실제로 데이비슨과 거머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도 광자의 이동 경로를 알 수 없을 땐 파동성을, 광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이후에는 입자성을 보였다. 전자의 이동 경로가 측정되는 확률을 계산해 신호 광자가 만든 회절 무늬와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최종적으로 양자가 가진 입자성과 파동성을 확률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상자를 열면 한 가지 상태로 결정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얼마큼 살아있고 죽어있는지 계산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윤 교수는 “그간 상보성 원리 연구는 입자성을 갖는지, 파동성을 갖는지를 정성적으로 측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며 “하지만 수학적으로 살펴보면 이들 성질이 일정 비율만큼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NBS를 통해 양자 상보성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단일 광자를 이용해 광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조절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단일 광자의 차이를 민감하게 구분해낼 수 있던 덕이다. 광자의 이동 경로를 간접적으로 관측함으로써 그간 상보성 원리의 정량적 측정을 어렵게 하던 파동함수의 붕괴를 피할 수 있었다. 윤 교수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간 단일 광자를 이용해 정밀한 수준의 ‘주파수 빗(frequency comb)’ 기술을 연구해 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주파수 빗은 빛의 주파수를 마치 빗살처럼 짧은 간격으로 나눠 거리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도구다. 단일 광자를 이용해 주파수 빗을 세계 최초로 구현한 것도 윤 교수다. ENBS에 광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단일 광자를 만드는 데도 단일 광자 주파수 빗 기술이 쓰인다.
단일 광자 주파수 빗을 이용하면 아직 풀리지 않고 남은 양자역학의 난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서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호 간에 영향을 주는 현상인 비국소성이나 물리적인 원인과 관련 없이 확률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인과율에 대한 해석 등이다. 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양자역학의 여러 난제를 해결할 실험 방법을 제시했다”며 “이를 통해 양자역학의 난제들을 밝히면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등 양자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