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역사는 종종 한반도 문명의 역사와 동일시된다. 물을 쉽게 이용해 선사문화가 탄생했다거나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국가가 가장 번성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인류가 한강을 목격하기 훨씬 이전부터, 심지어는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한강은 한반도를 흘렀다. 한강 역사의 첫머리는 땅이다. 한강은 최대 25억 년의 시간을 지닌 땅을 품고 있다. 땅이 형성되고 다채로운 지형적 사건으로 빼곡히 채워진 한강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 마지막 최대 빙하기 황해의 모습
지금보다 해수면이 130m 이상 낮았던 2만 5000~1만 8000년 전 황해의 모습을 전문가의 고증을 통해 복원했다. 기후 및 꽃가루 연구결과에 따르면 황해 지역은 경사가 5도 이내인 완만한 초원이었으며 한강은 황해 중앙까지 진출해 압록강, 황허강과 만났다.
❶ 탄성파로 퇴적물을 분석해 해저에서 과거 강줄기의 흔적을 찾아냈다. 상류에서 이동한 자갈이나 모래가 직선 형태로 발견된다면 강이 흘렀다는 증거다.
❷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가무락조개의 계통수에는 해수면 하강의 증거가 남아있다. 2012년 중국 해양대 연구팀은 중국과 한국 해안선 21개 지점의 가무락조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해수면 하강으로 바다 면적이 달라지자 가무락조개는 서로 다른 계통으로 분화했으며 해수면이 상승할 때 크게 번성했다.
❸ 지난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동해 퇴적층에서 2만 3000년 전 대만에서 시작하는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온 것으로 추측되는 꽃가루가 발견됐다. 동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대한해협이 마지막 빙기에도 존재했다는 증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시대는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의 마지막 빙기가 끝난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다. 두 시기 모두 신생대 제4기에 해당한다. 한강 역사의 첫 장을 펴기 위해서는 고원생대(25억~16억 년 전)와 신시생대(28억~25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강 유역의 대부분은 선캄브리아시대 변성암
한반도의 땅덩어리를 살펴보면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이 각각 3분의 1씩 고루 차지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중에서도 한반도를 처음 채운 암석은 신시생대와 고원생대에 생성된 변성암이다. 이때 생긴 오래된 암석을 ‘육괴’라 하며 한반도에는 북쪽으로부터 관모육괴, 낭림육괴, 경기육괴, 영남육괴가 있다.
육괴가 생성된 이후 신원생대(10억~5억 4100만 년 전), 고생대(5억 4100만~2억 5200만 년 전)에 퇴적암과 화산암들이 채워졌고, 중생대(2억 5200만~6600만 년 전)에 접어들면서 격렬한 조산운동으로 곳곳에 화강암이 넓게 관입했다. 신생대 신신기(2300만~250만 년 전)에 접어들어 동해가 바다로 태어나면서 동해 주변에 쌓인 육상층과 해상층이 연안을 따라 소규모로 드러났고 신생대 제4기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제주도, 울릉도, 독도, 백두산이 솟아올랐다.
한강 유역의 대부분은 한반도 역사 초기에 탄생한 경기육괴에 속한다. 경기육괴는 선캄브리아시대(46억~5억 4100만 년 전)와 고생대 변성암류, 중기 고생대 태안층, 중생대 대동누층군, 경상누층군, 중생대 화강암류로 이뤄져 있다. 선캄브리아시대 변성암류는 고원생대에 생성된 암석으로, 다른 육괴와 달리 시생대 암석은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는 “경기육괴는 다른 지질에 비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층서와 지질시대가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동누층군은 중생대 일어난 두 차례의 대규모 지각변동인 송림, 대보조산운동으로 퇴적된 지형으로 한반도 곳곳에 분포한다. 이중에는 한강 유역에 해당하는 지역도 있다. 한강 하류인 김포와 연천 지역에 나타난 김포층군과 남한강이 흐르는 강원 영월, 충북 단양의 반송층군이다.
그런데 반송층군은 경기육괴에 속한 지질이 아니다. 반송층군을 포함한 남한강 상류 지역은 옥천대를 흐른다. ‘대’라는 명칭은 지층이 가로 방향의 압력을 받아 휜 상태인 습곡을 의미한다. 옥천대는 경기육괴와 영남육괴 사이,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북동-남서 방향으로 발달해 있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한반도에서는 두 땅덩어리(중한랜드, 남중랜드)가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각 땅덩어리의 경계에 있던 충청분지와 태백산분지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최 교수는 “남한강 상류뿐만 아니라 낙동강 상류 역시 태백산분지와 충청분지를 지나는데, 남한강은 이후 경기육괴로 흐른다는 점이 구별된다”고 말했다.
한강의 침식 구조로 태백산맥의 형성 알아내다
한강 유역을 이루는 땅이 토대를 갖췄지만 신생대 마이오세(2300만 년 전~600만 년 전) 이전까지 한강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등 한반도 주요 산맥이 형성된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나기 전이기 때문이다. 변종민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산맥이 나타나기 전 한강이 어떻게 흘렀는지에 관한 지형적인 증거는 남아있지 않다”며 “신생대 이전에 생성된 단층은 상대적으로 연약해 이를 따라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추측일 뿐”이라고 말했다.
산맥 형성으로 하천은 극적인 형태적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역으로 한강 유역의 형태를 토대로 산맥 형성 과정을 유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충북 충주와 제천, 강원 하진부, 횡계 지역에서 그릇과 같은 분지 지형이 계단식으로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이를 토대로 경동성 요곡운동이 수차례에 걸쳐 조금씩 일어났을 거라 추측해왔다.
그런데 2018년 당시 조문섭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태백산맥 대관령 지역의 경사를 따라 화강암의 열역사를 조사한 결과는 달랐다. 융기가 일어나면 뜨거웠던 지하의 암석이 지표로 나오며 냉각되고 이 온도변화는 암석에 기록된다. 따라서 암석의 열역사를 분석하면 융기 시점을 추측할 수 있다. 분석 결과 해발고도 600m 아래 지층은 공통적으로 2600만~1800만 년 전 사이에 냉각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태백산맥이 점진적인 융기로 형성된게 아니라 한꺼번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doi: 10.1080/00206814.2017.1340196
지난해 12월 변종민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점진적 요곡운동의 증거로 여겨진 계단식 분지지형이 실은 기반암의 조성이 달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평창강, 오대천, 송천, 골지천 등 한강 지류의 형태를 분석해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난 최소시점을 추측했다. 땅이 융기하면 가장자리에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 생기고 이 지역에 오랜 시간 동안 하천이 흐르면 가장자리의 경사급변점이 점점 깎여나가면서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이때 암석의 종류에 따라 급변점의 이동 시간은 달라진다. 암석의 종류와 경사급변점의 이동 거리를 바탕으로 땅이 융기한 시점을 계산했더니 최소 1060만~510만 년 전 이전에 융기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역시 요곡운동이 이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doi: 10.1177/0309133320975654
한강을 비롯한 한반도 하천에 서식하는 민물고기인 참종개속 분화를 토대로 태백산맥 형성 시기를 유추한 연구도 있다. 원용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팀은 수계별로 참종개속 어류의 유전자 마커를 분석했다. 참종개속 어류는 6종으로 수계별로 다양한 종으로 분화해 진화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으로 얻은 참종개속 분화 시기를 토대로 한반도 산맥의 형성시기를 추측했다. 그 결과 태백산맥이 형성돼 동해안의 북방종개가 분화한 시기는 약 1130만 년 전으로 나타났다. 생물이 고립된 뒤 적어도 수만~수십 만 년 뒤 종분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태백산맥 형성 시기는 이보다 이전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doi: 10.1080/14772000.2017.1340912
변 교수는 “암석의 지질학적 연대, 하천의 형성, 생물의 유전적 증거 등 한반도 산맥 형성 시기와 과정을 추측할 수 있는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며 “한강을 비롯한 한반도 하천은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난 시점과 과정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大)한강이 황해의 초원을 따라 흐르다
한강의 모습을 바꾼 마지막 변곡점은 대략 2만 5000년 전~1만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130m 이상 낮았던 플라이스토세 마지막 최대빙기다. 수심 100m가 채 되지 않는 황해는 당시 모두 물이 빠져 있었다. 육지가 된 황해 지역은 지름 2~5mm의 가는 퇴적물도 덮여 있고 그 위에 넓게 초원이 형성돼 있었다.
현재 한강은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인천 강화군 말도로 빠져나가며 바다와 만나지만, 마지막 빙기에는 황해 중앙까지 진출했다. 이후 황허강, 압록강과 만나 제주도 북쪽을 둘러 흐르고 나서야 바다로 빠져나갔다. 남해 앞바다도 육지였기 때문에 낙동강과 섬진강의 줄기도 현재보다 100km 이상 길었다.
중국 동부에는 양쯔강과 황허강 사이에 구(舊)황허강도 흘렀다. 구황허강은 황해를 가로지른 뒤 제주도 남쪽을 지나 바다로 흘렀다. 마지막 빙기가 지나고 구황허강은 사라졌다.
황해는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단순히 지형만으로 이처럼 자세하게 줄기를 복원할 수 없다. 연구자들은 탄성파를 이용해 과거의 강줄기를 복원해냈다. 강물은 퇴적물과 함께 흐른다. 그래서 강이 흐른 자리엔 상류에서 이동한 자갈이나 모래 등 퇴적물이 강의 모양 따라 형성돼 있다. 황해 지역은 진흙, 진흙형 모래 등이 주를 이루는데 자갈이나 모래가 직선 형태로 발견된다면 과거 강이 흘렀다는 증거다. 보통 탄성파를 쏜 뒤 되돌아온 파장의 형태를 분석해 입자 조성이 달라지는 구간을 찾아낸다.
2016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팀은 서해와 남해 지역의 퇴적물을 분석해 보다 정확한 과거 강줄기를 알아냈다. 과거 한강이 흘렀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의 수심 30~50m에서 여러 모래 능선이 평행하게 나타났고, 제주도 서쪽에서는 수심 80~110m의 비교적 두꺼운 모래 능선이 나타났다. 이 지역은 구황허강 또는 대(大)한강이 흘렀을 것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모래 함량이 80% 이상이었다. doi: 10.1016/j.marpetgeo.2016.03.005
하지만 연안의 강줄기는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 이상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수심이 얕은 지역은 탄성파로 분석할 수 없고 새로운 퇴적물의 유입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와 일본 규슈 사이의 대한해협은 마지막 빙기 황해 지역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지역이다. 최대 수심 150~200m인 곳이 있었지만, 워낙 폭이 작아 한반도와 규슈가 일부 붙어 있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 책임연구원팀은 식물의 흔적을 분석해 대만에서 올라와 오키나와 서쪽에서 갈라지는 쓰시마 해류가 마지막 빙기에도 대한해협을 지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식물의 흔적 중 꽃가루는 세포벽 맨 바깥 껍질인 스포로폴레닌이 염산, 황산에도 녹지 않을 만큼 안정하다. 수백만 년 동안 퇴적층에 보존돼 과거 기후나 지형 연구를 하기에 좋은 재료다. 연구팀은 한반도 동해 6곳에서 시추한 퇴적층을 분석한 결과 2만 3000년 전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 사는 꽃의 꽃가루를 발견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마지막 빙기 시기에도 태평양 서부에서 시작한 따뜻한 해류가 대한해협을 건너 한반도 남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라며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지막 빙기에도 대한해협이 동해와 남해 사이를 갈랐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