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1927개.
미국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초대형 프로젝트 ‘스타링크’에 포함된 인공위성의 수다. 스페이스X는 작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이중 800여 대를 발사했다. 세계적인 IT 기업 아마존도 앞으로 지구 저궤도에 3236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예정이다. 이중 절반은 2026년까지, 나머지 절반은 2029년에 띄울 예정이다.
아마존과 스페이스X가 위성 군단에 주목한 이유
아마존과 스페이스X의 공통적인 목표는 ‘전 세계 어디서든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95% 이상이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 세계로 넓혀 보면 인터넷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나라가 많다. 인터넷 통계 사이트인 ‘인터넷 월드 스태츠’에 따르면 2020년 9월까지 전 세계 인터넷 보급률은 63.2%에 그친다.
특히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보급률이 낮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정보 격차가 심해지고,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인터넷이 주는 혜택은 실로 엄청나다.
전 세계에 초고속 인터넷을 공급하기 위한 한 가지 해결 방법은 광케이블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광케이블은 전기신호를 훨씬 더 빠른 레이저(빛) 신호로 바꿔 주는 케이블로, 현재의 초고속 인터넷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우선 설치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에서는 비용 문제로, 남극이나 사막은 극한 환경조건 때문에 설비가 어렵다.
다음 문제는 속도다. 비록 레이저 신호를 이용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빛의 속도로 전달되지 않는다. 광섬유의 특성상 광케이블 안에서는 신호가 광속의 3분의 2정도로 느리게 전송된다. 게다가 중간중간 중계기와 수신기를 거치며 전송 속도는 더 느려진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우주에서 찾을 수 있다. 인공위성에서 직접 지구로 통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에베레스트산 정상이든, 8000m 상공 비행기 안이든 어디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위성인터넷이라 한다.
현재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살펴봤을 땐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GPS는 지구 중궤도인 2만 200km 상공에 떠 있는 항법 위성을 이용해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위치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그 신호의 속도는 초고속 인터넷에 턱없이 부족하다. 초고속 인터넷을 구현하려면 인공위성이 지구와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
그러나 인공위성이 가까워지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인공위성 한 대가 통신 신호를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멀찍이 떨어뜨리고 보면 페이지 전체 내용을 볼 수 있지만, 코에 바짝 붙이고 본다면 달랑 몇 개의 글자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지구 전체에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구 저궤도에 수백, 수천, 많게는 수만 대의 인공위성을 띄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처음 뛰어든 게 재활용 로켓 발사를 성공시킨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2015년 초고속 위성인터넷을 계획하기 시작해 2016년 11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운영 승인을 신청했다. 일명 ‘스타링크(starlink)’ 프로젝트다. 스타링크란 명칭은 승인 신청 이후인 2017년에 명명됐다.
하지만 이 엄청난 일이 한 번에 통과될 리 만무했다. FCC에서는 전체 위성군 완성 기간을 6년으로 제한했고,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요구했다.
길고 긴 협의와 기술 개발 끝에 스타링크 프로젝트는 2019년 4월 FCC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스페이스X는 한 달 후인 2019년 5월 테스트 위성 60개를 발사한 이후 그해 11월 11일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폭이 0.7m, 무게가 227㎏인 위성을 60개씩 발사하고 있다. 전체 위성군 완성 기한은 완화돼 앞으로 9년간 총 1만 2000대의 위성을 발사하며 빠르면 2021년 후반부터는 실제 인터넷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예상되는 연간 수익은 300억 달러(한화로 약 35조 6000억 원) 이상이다.
스페이스X는 9월에 "첫 번째 베타 테스트 결과 초당 100Mb(메가비트·1Mb는 100만 bit)의 속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미국 도서 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라는 초청장을 통해 “향후 전송속도 초당 50Mb에서 150Mb, 레이턴시(지연시간)는 20ms에서 40ms 사이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평균 인터넷속도보다도 약 40배 빠른 수치다.
아마존은 스페이스X보다 한 해 늦은 올해 인공위성 발사계획 ‘프로젝트 카이퍼(Project Kuiper)’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승인 소식을 들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이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한화로 약 11조 9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화답했다. 아직 위성 발사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578개의 위성을 궤도에 올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스타링크 너머 스타를 볼 수 있을까
‘전 세계 초고속 인터넷 공급’이라는 멋진 꿈을 안고 시작된 계획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들이 쏘겠다는 인공위성의 수가 지금 활동 중인 지구 저궤도 인공위성(약 2000개)보다도, 그리고 여태까지 쏴 올린 모든 인공위성 수(약 9000개)보다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천문학계 반발이 심하다. 우주 관측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에 있는 우주 관측 망원경에 스타링크 인공위성이 지나간 궤적이 찍히거나, 스타링크의 강한 빛 때문에 지구와 멀리 떨어진 항성이 관측되지 않는 상황이다. 최은정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책임연구원은 “인공위성이 태양 빛을 반사하는 초저녁 2시간과 새벽녘 2시간 동안 천체관측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스페이스X는 뒤늦게 해결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올해 1월 6일 발사한 인공위성 60개 중 1개를 ‘다크샛(Darksat)’으로 구성한 것이다. 다크샛은 기존 스타링크 인공위성에 차양을 씌워 빛 반사를 줄인 위성이다.
트레글로안-리드 칠레 안토파가스타대 천문센터 연구원을 비롯한 세계 천문학자들이 다크샛을 관측한 결과, 이전보다 위성이 반사하는 빛의 밝기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51/0004-6361/202037958 하지만 최 책임연구원은 “스타링크 위성의 영향을 아예 없애려면 밝기가 지금보다 15분의 1 수준으로 어두워져야 한다”며 “빛 반사를 감소하는 것만으로는 사실 한계가 있으므로 다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해결책 중 하나는 우주 관측 데이터에서 인공위성이 반사시킨 빛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공위성이 반사시킨 빛과 멀리 떨어진 별이 내뿜는 빛의 파장 대역이 다르므로, 인공위성의 빛만 제거할 수 있다. 현재도 활용되는 데이터 전처리 과정(data reduction)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도 인공위성의 흔적은 일부 남는다. 이런 흔적조차 남지 않는 이미지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우주에서 관측을 수행해야 한다.
최 책임연구원은 “인공위성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수많은 인공위성 아래서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타링크와 프로젝트 카이퍼가 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인공위성의 충돌이다. 현재 지구 주변에는 2만 개가 넘는 인공우주물체가 떠다니고 있다. 이중 ‘핫스팟’인 2000km 고도 이하의 저궤도에만 1만 4000여 개가 궤도비행을 하고 있다. 여기에 스페이스X와 아마존이 총 1만 5000개가 넘는 인공위성을 추가로 올린다면 그만큼 충돌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스페이스X는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을 모두 대기권으로 추락시켜 없앤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최 책임연구원은 “인공위성 발사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에 위성의 충돌 위험이 앞으로 약 5배 정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나와 있었다”며 “여기에 스타링크까지 더해진다면 수명 다한 위성이 대부분 대기권에서 소멸한다 한들, 충돌 위험은 25배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 이런 인공위성의 충돌을 막을 대안은 마땅치 않다. 충돌을 막으려면 인공우주물체의 궤도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모든 물체의 궤도를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수명을 마치고 궤도를 떠도는 비활동 위성이나 조종이 불가한 물체는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들은 지구에서 관측해 궤도를 알아내야 하는데 그 정밀도가 떨어져 1~2일 후의 위치 예측도 수km의 오차가 난다. 저궤도 인공우주물체 1만 4000여 개 중 이런 물체만 1만여 개에 이른다.
최 책임연구원은 “이 물체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현재 계획된 군집위성들 때문에 충돌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무분별하게 인공위성이 발사될 경우에 대비해 안전이 보장된 가이드라인을 국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