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난이도 | 2020 연료 삼총사
1st 줄기세포
개구리 심장세포가 로봇을 움직이다
흔히 ‘살아있는 로봇’이라고 하면 SF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AI) 로봇을 떠올린다. 살아있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로봇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진짜로 살아있는 로봇이 있다. 세포가 가진 에너지로 작동하는 ‘제노봇(Xenobot)’이다.
제노봇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 laevis)의 심장세포를 엔진으로 사용하는 1mm 크기의 초소형 생체로봇이다. 미국 터프츠대와 버몬트대 등 공동연구팀이 올해 1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했다. doi: 10.1073/pnas.1910837117
연구팀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 배아의 초기 발생단계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심장세포와 피부세포로 분화시켰다. 그리고 이것으로 각각 제노봇의 엔진과 뼈대를 만들었다. 심장세포는 자체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에너지를 내는데 이를 엔진처럼 사용한 것이다.
심장세포와 피부세포의 배열은 인공지능(AI)으로 설계했다. 로봇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늘리거나, 이동할 수 있는 방향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도록 세포마다 위치를 정해 아치형, ‘ㄱ’자형, 도넛형 등 다양한 모양의 제노봇을 만들었다.
제노봇은 최대 수 주가량 생존한다. 직선 방향은 물론이고 S자형, 원형 등으로 방향을 바꾸며 움직일 수도 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샘 크리애그만 미국 버몬트대 컴퓨터과학과 연구원은 “제노봇은 생체 조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토양이나 해양 환경에서 미세플라스틱을 생분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며 “안전성 등이 검증되면 체내에서 약물을 전달하는 운반체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nd 부탄가스
불판을 넘어 전지의 연료가 되다
부탄가스는 캠핑지에서 음식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휴대용 연료다. 끓는점이 낮아 원유를 정제할 때 프로판 등과 함께 가장 먼저 추출되는데, 이를 고압으로 액화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기화시켜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부탄가스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전지의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손지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소재연구단 책임연구원팀은 올해 4월 휴대용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저온에서 작동하는 세라믹 연료전지 기술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응용 촉매 B: 환경’에 발표했다. doi: 10.1016/j.apcatb.2019.118349
세라믹 연료전지는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의 일종으로 차세대 발전소의 핵심 발전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SOFC는 전극과 전해질을 모두 고체로 구성해 안정성이 뛰어나며, 수소 등을 연료로 쓰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될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을 밖으로 내뿜지 않는다.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통하는 이유다.
SOFC 중에서 산소 이온이나 수소 이온으로 만든 세라믹 물질을 전해질로 사용하는 것이 세라믹 연료전지다. 최근에는 수소 이온으로 만든 전해질을 사용하는 세라믹 연료전지가 주로 개발되는 추세다. 산소 이온으로 만든 세라믹 전해질은 온도가 낮아질 경우 전도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 성능 저하가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발된 수소 이온 세라믹 연료전지는 액화석유가스(LPG)나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쓰며, 니켈을 촉매로 사용했다. 저렴한 니켈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지만, 니켈을 활성이 높은 상태로 유지하려면 800℃가량의 높은 열을 가해야 한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이 때문에 저온에서도 성능이 유지돼 이미 자동차의 부품으로 활용되는 수소 연료전지와 달리, 고온을 유지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발전소에 적합한 연료전지로 여겨졌다.
손 책임연구원팀은 세라믹 연료전지의 양쪽 전극에 팔라듐과 루테늄, 구리 같은 2차 촉매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저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기존 촉매인 니켈-전해질 박막층과 루테늄, 구리 같은 2차 촉매를 덧씌운 박막층을 교차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휴대용 부탄가스의 발화점인 500℃ 내외에서 높은 효율로 작동하는 저온형 고성능 박막 세라믹 연료전지를 개발했다. 손 책임연구원은 “향후 부탄가스를 연료로 쓰는 세라믹 연료전지로도 상품화될 수 있다”며 “가정이나 캠핑장에서 쓰는 휴대형 가스레인지는 물론 드론이나 킥보드처럼 이동형 전자제품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3rd 메탄올
부동액 원료에서 로봇의 연료가 되다
메탄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필수품이 된 소독제의 주성분인 에탄올의 친척뻘 성분이다. 메탄올은 다른 물질을 녹이는 용매나 부동액으로 쓰인다. 대부분은 800℃ 이상 고온에서 만들어진 일산화탄소와 수소분자의 합성가스로 만들지만, 혐기성 생물의 대사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산되기도 한다.
네스토르 페레즈아란치비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8월 메탄올을 연료로 움직이는 딱정벌레 로봇 ‘로비틀(RoBeetle)’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선보였다. doi: 10.1126/scirobotics.aba0015
연구팀은 소형 로봇일수록 에너지 밀도(일정 질량의 물질로 발생시킬 수 있는 열량의 비율)가 큰 연료가 필요하다는 데 착안해 로비틀의 연료를 구상했다. 로비틀의 몸체는 무게가 약 88mg이고, 연료통까지 가득 채우면 무게가 183mg이 된다. 연구팀은 로비틀이 최대 2시간가량 작동하며 자체 무게의 약 1.3배(237mg)까지 실어나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러려면 기존 로봇에 주로 사용하는 리튬이온전지로는 부족했다. 리튬이온전지는 크기가 작을수록 에너지 밀도가 낮아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동물의 지방이나 메탄올을 대안으로 떠올렸다. 실제로 동물의 지방은 1kg당 38MJ(메가줄·1MJ은 100만J)의 에너지를 내고 메탄올은 1kg당 20MJ의 에너지를 낸다. 반면 리튬이온전지는 같은 무게로 1.8MJ의 에너지밖에 내지 못한다.
연구팀은 로비틀의 다리를 니켈과 타이타늄 합금 전극으로 설계하면서 표면에 메탄올의 연소를 촉진하는 촉매인 백금 가루를 덮었다. 메탄올이 산화되며 발생하는 에너지로 다리의 전극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현재 로비틀은 앞으로만 움직일 수 있으나 향후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로비틀은 로봇 분야 연구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라이언 트루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실험실 교수와 슈광 리 하버드대 파울슨공학 및 응용과학스쿨 교수는 8월 1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논평을 실으며 “새로운 화학물질이나 인공근육과 같이 초소형 로봇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찾아야 한다”며 “메탄올을 활용한 로비틀은 이를 위한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doi: 10.1126/scirobotics.abd7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