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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북극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우리나라의 유일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는 여름마다 북극으로 나선다. 겨울철 꽁꽁 얼어있던 북극해는 기온이 올라가며 쇄빙연구선이 지나갈 틈을 내준다. 올해도 아라온호는 베링해, 척치해, 동시베리아해를 향해 7월 17일 출항했다. 


북극 항해가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여름에도 두께가 2m 이상인 해빙이 곳곳에 남아있다. 아라온호는 1m 이하 두께의 얼음을 깨는 데 최적화된 쇄빙연구선인 만큼 이 정도 두께의 해빙을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하늘 위 인공위성이 바다 위 아라온호의 길잡이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다 위 아라온호의 ‘눈’이 되어 준 ‘아리랑’


아라온호의 안전한 탐사 항로를 찾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이 주기적으로 확보한 영상이 필요하다. 아라온호가 탐사지에 가까워지면 한국에 있는 극지연구소의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가 바빠진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위성정보활용지원센터로부터 아라온호의 예상 항로를 촬영한 영상을 거의 매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영상을 토대로 아라온호가 정박해서 연구할 만한 안전한 해빙(해빙 캠프)을 찾아내고, 그렇지 않은 위험한 해빙 지역을 골라내야 한다.


2012년 해상도 70cm급의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3호가 발사되기 전까지는 우리의 ‘눈’이 돼줄 우리나라 인공위성은 아리랑 2호 한 기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공위성으로 목표 해빙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북극의 세찬 바람은 해빙을 하루에도 최대 수십km씩 이동시키는데, 아리랑 2호가 한 번에 촬영할 수 있는 범위는 대략 15km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표 해빙이 촬영 구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빈번했다. 


지금은 우리의 눈이 돼줄 우리나라 인공위성이 4기나 운영되고 있다. 2015년 임무기간이 종료됐지만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아 14년째 활동 중인 아리랑 2호부터 아리랑 3호,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한 아리랑 3A호, 그리고 국내 최초로 기상에 상관없이 전천후 관측이 가능한 영상레이더를 탑재한 아리랑 5호가 각자 맡은 구역을 촬영해 목표 해빙을 포착할 확률이 대폭 높아졌다.   


특히 여름철 북극해에는 거의 매일 구름이 형성되는데, 광학 카메라로는 북극해와 아라온호 주변 해빙을 관측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아리랑 5호에 달린 영상레이더는 촬영 범위가 최대 100km에 이르고, 레이더 신호를 이용하는 만큼 구름이 끼는 등 악천후나 밤에도 촬영할 수 있다.  
아리랑 5호의 영상레이더는 두 가지 촬영 모드가 있다. 아라온호가 항해할 때는 더욱 넓은 지역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해상도는 20m로 낮추는 대신, 촬영범위를 100km로 확대해 북극해의 해빙 밀집 지역을 촬영하고, 이를 통해 해빙의 넓이를 계산한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는 아라온호가 해빙을 깨고 지나갈 수 있을지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해빙이 밀집돼 있거나 해빙이 겹쳐져 만들어진 빙맥(ice ridge) 등 위험 지역을 미리 알릴 수도 있다. 빙맥은 두께가 최대 수십m에 이르기 때문에 아라온호가 깰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위성으로 해빙의 강도까지 조사해 아라온호의 항해를 더 수월하게 만들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아라온호가 깰 수 있는 해빙을 조사하는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가장 빨리 깨고 지나갈 수 있는 해빙까지 찾아내는 게 목표다. 막히는 길을 피해 최적의 경로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인공위성이 하는 셈이다. 

 

 

아라온호의 해빙 캠프 후보를 선정할 때도 인공위성 정보가 유용하다. 해빙 캠프는 연구자들이 아라온호에서 하선해 현장 조사를 수행하는 지역이다. 출항한 아라온호의 예상 항로에는 해양 조사 지점만 표시돼 있다. 해빙을 조사하는 해빙 캠프는 항해 중에 결정된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가 바빠지는 시기다.


해빙 캠프는 해빙의 높이, 표면의 거친 정도, 융빙호(해빙이 녹아 만들어진 물웅덩이)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아리랑 5호의 영상레이더가 촬영한 영상은 해빙 표면의 거친 정도를 정밀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면 연구자들이 접근 가능한 최적의 해빙 캠프를 찾을 수 있다. 해빙 캠프를 물색할 땐 해빙을 더욱 자세히 관측하기 위해 해상도 3m, 촬영범위 30km 모드로 바꾼다.

 


 해빙 캠프는 아라온호가 북쪽 해빙 밀집 지역에 닿을 때까지는 무조건 찾아야 한다. 예상 기한은 나와 있지만, 항해 상황에 따라 1~2주 당겨지거나 늦춰지기도 한다. 남쪽의 해양 조사 지역을 지나 최북단에 다다를 때쯤에는 해빙 캠프 후보지가 아라온호에 전달돼 있어야 한다. 


해빙 캠프 후보지가 결정되면 아라온호에 탑승한 연구원이 무인기를 띄워 해빙 주변을 직접 둘러보고, 해빙에 직접 하선해 해빙 두께가 충분한지 확인한 뒤 해빙 캠프로 사용할지 말지를 확정한다. 

해상도 수십m 북극 해빙 지도 개발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위성 영상에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북극의 해빙 지도를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아리랑 5호가 촬영한 레이더 영상을 픽셀 단위로 나눈 뒤 주변 픽셀과의 차이를 분석하는 식이다. 


아리랑 5호의 영상레이더는 마이크로파를 지면으로 보내고 되돌아오는 신호의 특성을 측정해 영상으로 전환한다. 마이크로파가 지표면에 입사한 각도와 되돌아온 파장의 세기를 분석하면 표면의 거칠기를 알아낼 수 있다. 표면이 거칠수록 영상에서는 밝게 나타난다. 


보통 해빙이 바다보다 밝게 나타나지만 바람에 의해 바다가 거칠게 변하거나, 해빙이 거울처럼 매끄러워지면 밝기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픽셀을 하나씩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해빙인지 바다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주변 픽셀과의 관계를 추가로 분석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가령 특정 픽셀이 바다로 분류됐는데, 주변 픽셀이 모두 해빙이라면 이는 바다가 아니라 표면이 평평한 해빙일 확률이 높다. 또 밝은 픽셀과 어두운 픽셀이 띠 형태로 번갈아 나타나면 파도가 치고 있는 바다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제작한 북극 해빙 지도는 해빙이 갈라져 드러난 틈(lead)까지 표시될 만큼 정교하다. 해빙의 갈라진 틈새로 드러난 해수는 직접 외부와 에너지를 교환한다. 따라서 북극해에 구름이 생성되는 과정이나 해빙 아래 생물들의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틈을 지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극지 연구기관들은 자국의 쇄빙연구선이 항해에 필요한 해빙 지도를 1주일마다 업데이트해 제공한다. 대개 이런 해빙 지도의 공간 해상도는 수~수십km다. 인공위성이 지표면을 가로세로 격자로 나눠 촬영할 때 한 칸(픽셀)의 길이가 수~수십km라는 뜻이다.


반면 아리랑 5호로 제작하는 해빙 지도는 공간 해상도가 수십m 수준으로 매우 정밀하다. 다만 지금은 아리랑 5호를 활용한 해빙 지도 제작을 막 시작한 단계여서 아라온호에 정기적으로 제작해 배포하지는 않고 있다. 앞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공동으로 북극해 해빙 지도를 주기적으로 제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아리랑 위성으로 촬영한 극지 영상은 국내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2017년 ‘스타 아카이빙 시스템(STAR Archiving System)’을 구축해 인공위성이 촬영한 극지 자료와 다양한 빙권 모니터링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전 세계 인공위성 데이터 시스템 가운데 극지 연구 전용 시스템은 스타 아카이빙 시스템이 유일하다. 

 

 

 


최근 기후변화로 북극해 해빙이 감소하면서 기상이변 등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북극해 해빙이 녹으면서 역설적으로 북극에 가기는 더 쉬워졌다. 


현재는 1년 중 여름철에만 북극에 갈 수 있지만, 해빙이 점점 줄면 가까운 미래에는 사계절 내내 북극으로 선박이 오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러시아 북쪽 해안을 따라가는 이 뱃길을 북극 항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북극 항로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예로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선박으로 항해할 때 지금처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거리가 2만1000km이다.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1만2700km만 항해하면 된다. 총 45일 걸렸던 거리를 35일 만에 갈 수 있다. 연료비 등 선박 운항에 필요한 비용이 그만큼 절약된다. 해빙이 녹으면서 열리는 북극 항로는 이미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됐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가 개발 중인 북극해 해빙 지도와 해빙 변화 예측 자료는 북극 항로를 개발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북극의 환경을 지키면서도 인류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익한 연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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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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