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아주 작은 나노입자인 퀀텀닷(QD·Quantum Dot). 퀀텀닷의 가장 큰 특징은 같은 재료로 만들더라도 크기를 조금만 달리하면 발광하는 색을 비롯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장점이다. 예를 들어 µm(마이크로미터·1µm는 100만분의 1m) 이상 크기의 물질을 이용할 때는 기존과 다른 특성의 물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원재료를 찾아야만 했지만, 퀀텀닷은 굳이 새로운 원재료를 찾지 않아도 입자 크기만 조금 다르게 만들면 원하는 특성을 갖는 물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천연색을 구현하고자 하는 디스플레이, 기존 재료로는 광전환 효율의 한계가 명확했던 태양전지, 신체 조직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가시광선과 근적외선이 필요한 바이오이미징 등 여러 분야에서 퀀텀닷을 활용하기 위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각 분야에 특화된 퀀텀닷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치열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분야에서 공통으로 우선시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퀀텀닷의 원재료를 친환경 재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소니, 카드뮴 퀀텀닷 TV 철수
최초의 퀀텀닷은 카드뮴에서 나왔다. 1982년 최초로 발견된 퀀텀닷도, 1993년 처음으로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데 성공한 퀀텀닷도 모두 카드뮴이 핵심 원재료다.
카드뮴은 은백색의 금속으로, 칼로 자를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 변형하기 쉽고, 전기전도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물질과 혼합도 잘 돼 또 다른 장점을 보탠 화합물로 만들기도 쉽다.
그래서 이미 1800년대 미술가들은 카드뮴을 황화합물과 섞어 빨간색과 노란색 안료를 만들었고, 1930년대에는 자동차나 비행기의 부식을 막기 위한 도금 재료로 사용했으며, 1980년대부터는 니켈카드뮴 이차전지의 음극판 재료로도 사용했다.
하지만 카드뮴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독성이다. 지난 수십 년간 카드뮴 독성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카드뮴의 유해성을 가장 강력하게 인식시킨 사건은 일본의 4대 공해병 중 하나인 이타이이타이병이다. 1910년대 전후로 일본 도야마현 진츠강 유역에서 발생한 질병으로, 등뼈, 손발, 관절에 통증이 느껴지고 뼈가 잘 부러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당시 도야마현 내 광산에서 아연 제련 과정 중에 배출된 폐광석을 통해 카드뮴이 유출됐고, 이는 고스란히 강으로 흘러 들어가 이를 식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한 주민들이 이타이이타이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풍토병, 영양실조 등 여러 원인이 지목됐지만, 1968년에 원인이 카드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70년대에는 이타이이타이병을 유발하는 고농축 카드뮴이 아닌, 이보다 적은 농도의 카드뮴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가 대거 발표됐다. 카드뮴에 노출되면 염증이 유발돼 발열, 호흡기 장애, 근육통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장기간 노출될 경우 호흡기나 신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카드뮴은 인체에 필수적인 아연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해 체내에 쉽게 흡수되고, 아연 대신 체내 효소와 결합해 신장 장애를 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카드뮴을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인 ‘발암 등급 1군(Group 1)’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력한 물질’인 ‘발암 등급 B1군(Group B1)’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래서 카드뮴을 사용하던 대부분의 산업은 카드뮴 대신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카드뮴을 가장 많이 소비하던 니켈카드뮴 이차전지 역시 니켈금속수화물이나 리튬이온, 리
튬폴리머 등 다른 형태의 배터리로 대체되는 추세다.
퀀텀닷도 같은 흐름이다. 인체와 밀접하게 닿는 디스플레이, 심지어 체내로 집어넣는 바이오이미징 분야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카드뮴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웨어러블이나 모바일 기기 적용이 연구 중인 퀀텀닷 태양전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13년 일본의 전자업체 소니가 내놓은 최초의 퀀텀닷 TV는 1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됐는데, 카드뮴을 사용한 탓에 판매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 주원인으로 알려졌다.
배완기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는 “현재 퀀텀닷 연구에서 카드뮴으로 대표되는 12족 원소를 16족 원소와 합성(2-6족 퀀텀닷)하는 방식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며 “대부분 13족 원소를 15족 원소와 합성(3-5족 퀀텀닷)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3-5족 퀀텀닷 개발한 삼성, 중국은 아직 못해
하지만 퀀텀닷의 장점을 살리는 데 가장 적합한 원재료였던 카드뮴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인듐으로 대표되는 13족 원소에 15족 원소를 합치면 합성하는 과정과 결과물의 성능 모두에서 문제가 나타난다.
우선 3-5족 퀀텀닷은 2-6족 퀀텀닷보다 합성하기 어렵다. 2-6족이 결합하는 힘보다 3-5족의 결합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3-5족 퀀텀닷을 합성하기 위해 화학 반응이 더 잘 일어나도록 반응성이 높은 물질을 추가하거나 더 높은 온도에서 합성해야 한다”며 “반응성이 높다는 건 곧 폭발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해서 산업 현장에서 적용하려면 더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퀀텀닷의 성능 역시 3-5족 퀀텀닷이 떨어진다. 여기서 퀀텀닷의 성능이란 디스플레이와 바이오이미징 분야에서는 색 순도와 열 안정성 등을, 태양전지에서는 광전환 효율을 말한다.
정소희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카드뮴이나 납 같은 중금속이 경금속인 인듐보다 빛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며 “현재 납으로 만든 퀀텀닷 태양전지의 최고효율이 16.6%인 반면, 3-5족 퀀텀닷으로 만든 태양전지는 10%를 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3-5족 퀀텀닷이 이런 문제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퀀텀닷의 표면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퀀텀닷의 기본구조는 가운데 핵심물질(코어)을 두고 그 핵심물질을 껍질(쉘)로 감싼 뒤, 그 바깥에 리간드라는 물질을 부착한다. 특히 리간드는 금속원자에 전자쌍을 제공하는 화합물로, 퀀텀닷에서는 열이나 습기와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코어를 보호하는 동시에 광전 효율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퀀텀닷은 크기가 매우 작은 만큼 입자의 특성은 표면의 특성, 즉 리간드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정 교수는 “퀀텀닷은 입자의 50% 이상이 표면”이라며 “현재 대부분의 퀀텀닷 연구가 리간드를 통해 표면을 안정화하기 위한 연구라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리간드에 퀀텀닷의 성패가 달린 셈이다.
적당한 리간드를 찾으면 되지만, 사실 그 리간드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리간드가 될 수 있는 화합물은 구성도, 구조도 굉장히 다양하다. 그중에서 핵심물질과 잘 결합하며, 퀀텀닷의 안정화와 성능 향상에 꼭 들어맞는 화합물을 찾는 건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모두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던 2014년 말, 삼성은 3-5족 퀀텀닷인 인화인듐(InP)을 사용한 TV를 개발했다고 전 세계에 발표했다. 이는 최초의 친환경 퀀텀닷 TV의 탄생이었다.
배 교수는 “3-5족 퀀텀닷의 표면을 조절하는 것은 현재도 매우 어려운 기술”이라며 “삼성에서 퀀텀닷 TV가 나온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3-5족 퀀텀닷을 개발하고 싶은 중국이 제대로 된 결과물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친환경 퀀텀닷 TV를 선보인 삼성의 연구팀은 2019년 11월 또 하나의 큰 성과를 발표했다. 2014년에 개발한 퀀텀닷은 단순히 다른 광원에서 나온 빛을 받아 다른 색으로 바꿔주는 컬러필터의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직접 전류를 받아 원하는 색깔의 빛을 바로 내는 자발광 퀀텀닷을 개발한 것이다. 더불어 이것을 디스플레이에 응용했을 때 충분히 안정적인 수명을 유지한다는 사실까지 입증했다. doi: 10.1038/s41586-019-1771-5
기존의 퀀텀닷 응용 소자가 빛을 흡수하는 퀀텀닷의 특성만 활용했다면, 이번 퀀텀닷은 전류를 흡수해야 하는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리간드를 더 짧게 만들어 퀀텀닷 내로 전류가 주입되는 속도를 개선하는 동시에 쉘을 결함 없이 대칭 구조로 균일하고 두껍게 성장시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정 교수는 “모든 산업이 친환경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퀀텀닷 역시 기술적으로 어렵더라도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는 게 당연하다”며 “퀀텀닷은 크기를 달리하면 물질의 특성이 바뀌는 장점 덕분에 친환경으로 전환해도 기존의 효율을 다시 따라잡는 것이 다른 산업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