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비하인드 로켓] 한국 항공우주 기술 자존심 높인 '나로호 2단 고체엔진'

 

“2단 로켓 개발을 포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켓은 우리가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2004년 12월 러시아의 우주기업 흐루니체프의 알렉세비치 메드베졔프 사장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해왔다. 나로호 발사를 위해 러시아가 나로호의 1단을, 한국이 상단인 2단을 개발하기로 하고 설계안까지 공유한 뒤에 나온 말이라 당혹스러움은 더 컸다.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2단에 들어갈 고체엔진(킥모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는 정밀 제어 기술이 혹시라도 다른 분야에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했다. 우리의 대답은 당연히 “Нет(아니오)”였다. 

 

 

고체 연료로 추력 8t 내는 킥모터 

흔히 ‘킥모터(kick motor)’라 불리는 고체엔진은 발사체 핵심부품 중 하나로 꼽힌다. 고체엔진과 액체엔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료다. 액체엔진은 액체 상태의 연료(보통 등유)를 산화제에 섞어 태우면서 추력을 얻는다. 반면 고체엔진은 고체추진제를 점화시켜 추력을 낸다. 고체추진제는 산화제와 연료를 혼합해 고체로 만든 것이다. 


발사체의 경우 1단의 주엔진은 보통 액체엔진을 사용한다. 고체엔진은 이런 발사체의 상단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전략무기 엔진으로 쓰인다. 고체연료를 곧바로 점화하기 때문에 별도의 탱크나 연소실이 필요 없어 구조가 단순하고, 즉각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정부가 한국의 고체연료 우주발사체의 추진력과 사거리 제한을 해제하는 내용의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는 뉴스가 큰 관심을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 연구팀은 나로호 상단에 들어있는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킬 추진기관으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추력 8t의 킥모터를 설계했다(엔진이 위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툭 차듯이(kick) 마지막으로 밀어주기 때문에 킥모터라 부른다).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했다. 가벼우면서도 비추력(추진제 소모량 대비 추력값) 성능이 높아야 하고, 최대 추력이 너무 크지 않으면서 연소시간은 길어야 하며, 추력 방향도 조종할 수 있어야 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화 등 국내 방산업체 공동 연구팀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킥모터 개발에 돌입했다. 우주 공간에서 작동하는 고체 킥모터를 개발해본 경험이 없어 부품 설계부터 난관이 많았다. 

 


모든 부품이 우주 환경에서 사용 가능한 소재여야 했고, 위성을 궤도에 정확하게 투입하기 위해 노즐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부품을 새로 개발해야 했다. 대기가 없는 우주에서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뿜는 화염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일 밤 난상토론이 이어졌고, 끝내 공동 연구팀은 고온, 고속의 연소 가스가 지나는 노즐부의 형상과 단열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해냈다. 노즐 표면이 깎이고 갈리는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소-탄소 복합재를 적용했다. 


또 노즐의 방향을 바꾸는, 노즐의 고정부와 운동부 사이에 설치하는 유연한(플렉시블) 실을 독자기술로 개발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복합 소재에 고무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엄격한 환경 기준과 속도 기준을 만족하는 플렉시블 실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킥모터 연료가 연소할 때 발생하는 3000도 이상의 고온을 60초 이상 견디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추력을 제어할 수 있는 킥모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연소시간을 기존 기술보다 2배 수준으로 늘린 쾌거였다. 

 

300km 고도 우주환경을 재현하다 

킥모터는 나로호 발사 395초 뒤, 지상 약 300km 고도에서 점화하도록 설계됐다. 두 개의 점화안전장치에 전기 신호가 들어가면 점화가 되고, 각각의 점화안전장치는 독립적으로 임무 수행이 가능한 구조였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지, 추진기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험을 반복해야 했다. 개발 초기에는 지상연소시험을 7회 정도로 예상했다. 초반 3회 시험에서 비행용 고체엔진 설계를 확정하고, 이후 비행용 인증시험을 2회 정도 거친 뒤, 실제 비행환경에서의 최종적인 성능을 검증하는 고고도 시험을 2회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추가로 진행된 지상연소시험에서 연소 시작 약 50초 후 노즐 확장부의 일부가 이탈하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났다. 곧바로 원인을 분석하고 설계를 변경해 새로 제작한 뒤 다시 시험에 들어갔다. 문제를 찾고, 찾아낸 문제를 해결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지상연소시험은 총 13회나 수행됐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두 번째 지상연소시험이 실패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연소 과정 중 추진제에 포함된 다량의 알루미늄이 산화되면서 슬래그(찌꺼기)로 변하고, 이 슬래그들이 내열재를 태우는 문제가 발생했다. 나로호 2단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탄소-탄소 복합재도 엄청난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타버렸다. 내열재의 설계를 변경하기도 하고, 전방부에 기계 마모를 막는 판을 붙여보기도 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최소한의 무게로 열에 잘 견디는 킥모터의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수없이 실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킥모터는 고고도 환경에서 작동하는 만큼 노즐의 팽창비도 크다. 이런 추진기관을 대기압 환경에서 시험할 경우, 노즐 확대부에서 유동박리(물체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압력이 계속 커지면서 물체 표면에서 유체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가 발생해 정확한 추력을 측정하기가 어렵다. 


우리 연구팀은 킥모터가 실제로 작동하는 환경에서 시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러시아의 자문을 받아 고공환경 모사시험 설비를 2007년 7월 구축했다. 킥모터 주변을 인위적으로 대기압 이하의 환경으로 낮추기 위해 고공환경을 제공하는 디퓨저, 디퓨저에 냉각수와 기체 질소를 공급하는 유공압시스템, 점화 시퀀스를 제어하고 장착된 각종 센서로부터 자료를 획득하는 제어계측시스템, 추력측정장치 등을 구축한 시험 설비를 세웠다. 이는 고체엔진 개발 과정에서 얻은 또 다른 소득이었다. 

 

 

‘2단 무상 제공’ 거절한 이유

2단에는 추진기관 외에 발사체의 정보를 무선으로 지상에 보내거나, 각종 장치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자탑재시스템도 배치해야 했다. 발사체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지상으로 전송하는 원격측정 및 추적시스템, 나로호 상단의 각종 전자탑재장치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시스템, 비행 중 발사체가 비정상적으로 기동할 때 비행을 멈추는 비행종단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것들의 안정성 시험도 나로호 발사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원격측정 및 추적시스템은 발사체 상태를 측정해 전송하는 계측시스템, 발사체 비행 중 발사체 내외부의 카메라 영상을 지상으로 전송하는 영상시스템, 지상레이더 추적 신호를 받아 지상으로 응답 신호를 전송해 비행 궤적을 알려주는 추적시스템으로 이뤄진다. 


우리 연구팀은 시스템에 들어가는 모든 장비를 대상으로 온도, 진동, 진공, 파이로 충격(구조물에 폭발 또는 충격이 발생할 때 가해지는 충격), 전자파 등 다양한 시험을 수행했다. 특히 시험 항목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자파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력시스템은 배터리와 전력분배장치, 페어링 분리구동장치 등으로 구성됐다. 배터리는 당시까지 발사체에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리튬이온기술을 적용했다. 배터리를 충·방전하며 용량을 시험하고 배터리에 전자부하를 임의로 가해 성능을 확인하는 시험을 더욱 꼼꼼하게 해야 했다.  


전력분배장치는 파이로 충격 시험에서 충격 하중을 견뎌내지 못했다. 곧바로 장치 외부에 충격 저감장치를 달아 문제를 해결했다. 페어링 분리 구동장치는 진동 시험 중 입력 전류가 요동치는 현상이 발생했다. 결국 고전압을 생성하기 위해 배치한 트랜스포머 케이스의 몰딩을 보강하는 조치를 취했다. 수많은 부품 중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었다. 


‘산 넘어 산’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심지어 로켓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 연구팀이 독자개발을 고집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로호에 적용되는 수많은 기술이 한국형 발사체, 또는 그 후속 발사체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나로호 발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동안 더 많은 기술을 얻고, 더 많은 기술을 독자개발 해야만 했다. 그 선택이 옮았음을 누리호를 개발하는 지금 다시금 느낀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나로호개발책임자)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화학·화학공학
  • 신소재·재료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