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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유학일기] 악명 높은 난이도 낙제는 곧 퇴학

영국 대학은 학사 기간이 3년제로 운영된다. 한국, 미국 등의 4년제 대학보다 학사 기간이 1년 짧은 만큼 다른 점도 많다. 


일단 학기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따로 없다. 1년 내내 공부하고, 공부한 것들을 모두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다. 대학별, 학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영국 대학은 1년에 시험을 한 번이나 두 번밖에 보지 않는다. 


대개 첫 번째 시험은 2학기 첫째 주(1월), 두 번째 시험은 3학기(5월)에 본다. 임페리얼칼리지 공대와 물리학과처럼 1월 시험이 아예 없는 학과들도 많다. 화학과는 2학년 때만 1월 시험이 없다.
그래서 3학기를 ‘시험을 위한 학기’로 두는 대학이 많다. 보통 3학기에는 새로운 내용을 배우지 않고, 복습에만 집중한다. 실험 등 실기 수업도 시험을 마친 이후 조별과제로 두고, 시험 자체에 영향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3학기는 공식적으로 5~6월 2개월이지만, 5월에 시험을 끝내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많다. 다만 임페리얼칼리지의 경우 학생 대부분이 6월 중순까지 학교를 떠나지 않는다. 5월에서 6월 초까지는 계속 실기 수업과 새로운 강의가 있고, 시험도 다른 학교보다 길게는 한 달 더 늦게 끝나는 편이라서다.


내가 아는 한 임페리얼칼리지 화학과는 영국에서 가장 늦게 시험이 끝난다. 6월 중순이 되면 도서관에서 자리를 지키는 학생들이 생명과학과와 화학과뿐이다. 생명과학과마저도 화학과보다 약 1주일 일찍 끝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화학과 1, 2학년 학생들만 남는다.

 


올해는 6월 27일이 학교가 휴식기에 돌입하는 날(closing date)이었는데, 화학과 시험은 25일에야 끝났다. 시험 후 뒤풀이 행사는 23일 전에 모두 끝났다. 그래서 화학과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서 파티 소리를 들으며 시험 공부를 해야 했다. 


보통 실험 수업이 많은 학과들이 강의 시간을 채우다 보니 종강도 늦어진다. 가령 화학과는 하루에 5시간을 실험 수업에 쓰고 있어서 강의를 3시간밖에 듣지 못한다. 종강이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셈이다. 


이렇게 1년 동안 배운 내용을 한 번에 몰아서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문제를 통합적으로 제출하기 위해서다. 화학과의 경우 유기화학, 무기화학, 물리화학으로 나눠 시험을 본다. 약 20개가 넘는 과목(Lecture series)을 세 가지 시험으로 나눠 보는 것이다. 시험지마다 해당 강의 교수가 한 세트씩 문제를 내는데, 문제가 통합적으로 제출되다 보니 정확히 어떤 교수가 출제자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자연스럽게 문제 난도는 올라간다. 임페리얼칼리지의 강의 내용과 시험 문제의 난도는 다른 대학과 비교하면 굉장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임페리얼칼리지에서 B를 받으면 다른 곳에서는 A를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최대한 어렵게 문제를 내는 만큼 성적은 절대평가로 매겨진다. 모든 학생이 최고점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절반 이상이 낙제하는 경우에는 무리한 난도의 문제였다고 판단해, 학과 차원에서 성적을 한 등급씩 올려준다. 


한국이나 미국 대학은 주로 평점(A, B, C, D)으로 성적을 나타내지만, 영국 대학은 다른 방식을 쓴다. 가장 성적이 좋은 70~100%를 ‘1st class honour’라고 하며, 보통 ‘퍼스트’라고 부른다. 여기서 성적이 10% 낮아질 때마다 등급이 떨어진다. 60~70%는 ‘Upper 2nd class honour’라고 하며, ‘2:1’이라고 표기하고 ‘투 원’이라고 읽는다. 40~50%는 ‘3rd class honour’, 줄여서 ‘서드’라고 부르는데, 합격점에 해당하는 마지막 등급이다. 40%보다 낮은 경우에는 8월에 재시험을 봐야 한다. 


8월 재시험에서도 낙제하면 1년간 강제 휴학을 당한다. 영국은 한국 대학처럼 학점제가 아니어서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1년 휴학 후 다시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것이 마지막 재시험이다. 이 시험에서조차 낙제하는 경우에는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일부 학과에서는 너무 많은 과목에서 낙제한 학생에게 곧바로 권고 퇴학 조치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화학과의 경우에는 실험 수업을 낙제할 경우 바로 퇴학 처리된다. 물론 실험 수업에서 낙제를 하는 것은 수업에 불참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불참할 경우 합당한 이유를 사전에 설명한다면 다시 실험 일정이 잡힌다. 


그 밖에도 1년 내내 있는 실험 수업의 결과 하나하나가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모인 실험 성적들이 1년 성적의 약 30%를 차지한다. 그래서 화학과는 함부로 아플 수도 없다. 한 번 아프면 일정이 꼬인다.


이런 시스템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일까. 시험 기간 전후로 자퇴하는 학생도 간간이 있다. 1년 내내 공부에 힘써도 시험 기간만 되면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물 뜨러 부엌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6L짜리 물병과 시리얼을 옆에 쌓아두고 공부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험 기간이 끝나면 뒤풀이 파티들이 열리는데, 화학과 학생들은 그조차도 참가하지 못한다. 바로 다음 날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같은 과 친구들과 식사를 한 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와 미뤄둔 잠을 몰아 자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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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고승연
  • 에디터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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