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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청각, 촉각 로봇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달려라 달려 ‘로보트 재권V’ STEP ❾ 촉각 및 힘 조절

 

우리는 지금까지 로보트 재권V의 팔, 다리, 몸통, 머리를 만들었고, 전원을 공급하고 인공지능을 넣었습니다.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 각종 센서를 달았고, 인간과 교류하기 위한 감정 표현도 시도했습니다. 이제 로보트 재권V는 우리와 함께 생활할 준비가 모두 끝났을까요? 아쉽게도 로봇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친구 같은 로봇의 핵심은 ‘안전성’ 


로봇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로봇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보면 신기해하고,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오기도 합니다. 신기한 물건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니까요. 


그런데 로봇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오히려 멈칫하며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낯선 물체가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대처하는 것이 인간의 방어 기제입니다. 


반면 만나고 싶던 반가운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악수를 청하거나 껴안는 등 자신의 영역을 기꺼이 공유합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도록 허락하고 이를 통해 서로의 친밀감을 높이게 됩니다.


로봇이 갖춰야 할 많은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안전’에 대한 확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로봇이라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으면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위험한 기계일 뿐이니까요. 


우리 인간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힘 또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넘어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산속에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이 같이 사는 마을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시각, 청각보다 촉각이 먼저 반응 


로보트 재권V가 인간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안전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로봇이 인간에게 안전한 존재로 인식될까요? 사람은 어떻게 서로 안전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내는 걸까요?


많은 사람은 매일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집에서 나와 학교나 직장에 가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기도 합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에 가기도 합니다. 처음 가본 길을 걷기도 하고, 처음 보는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합니다. 험한 산길을 걸어갈 수도 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디자인의 물컵에 물을 따라 마시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경험해본 적 없는 수많은 환경에 적응하며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그 원리가 무엇일까요?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어쩌면 독자 여러분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한 뒤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각과 청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사실은 촉각으로 느끼는 정보와 근육에서 느껴지는 힘의 정보를 토대로 이뤄지는 일이 더 많습니다. 촉각과 힘을 느끼고 이에 따라 이뤄지는 행동은 대뇌가 아니라 척수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사람이 걸을 때는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각과 발목에서 느껴지는 힘의 정보가 척수를 거쳐 소뇌로 전달됩니다. 이때 소뇌는 현재 걷는 상태를 파악하고 걸을 수 있도록 근육에 명령을 전달합니다. 이런 작용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뇌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명령을 내리지 않는데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습니다.


만약 걷던 도중 돌부리에 걸리거나 어깨에 무언가 부딪히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촉각과 근육이 평상시와는 다른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가 대뇌에 전달돼 우리는 돌발 상황을 인식하게 됩니다. 척수에서는 넘어지지 않게 하는 보상 명령을 근육에 급히 전달하고, 일단 넘어지지 않게 만든 다음 대뇌에서 다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친구들과 얘기하며 걸어가다가 땅이 움푹 파인 것을 모르고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도 평평한 길을 걷는 상황이었다면 발이 땅에 닿아서 발바닥이 힘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발바닥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척수는 바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게 만드는 동작, 예를 들어 팔을 휘젓거나 허리를 굽히는 등 반사행동을 하라고 근육에 명령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대뇌가 아닌 척수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찰나의 순간에 모두 처리됩니다. 대뇌에서는 넘어질뻔 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게 시킬 겁니다.


이런 모든 일은 촉각과 힘을 느끼는 근육 덕분에 이뤄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행동을 통해서 서로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실수로 다른 사람과 부딪치거나 다른 사람의 발이라도 밟는다면 빨리 상황을 수습하고 사과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F=ma 이용해 로봇 조종 


그런데 로봇은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입니다. 로봇에게 걸으라고 명령을 내리면 로봇은 걷습니다. 문제는 사람과 부딪치더라도 계속 걷는다는 겁니다. 로봇 팔이 움직이는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움직이는 로봇에게 얻어맞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로봇을 위험하다고 느끼고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로봇도 사람처럼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힘이 느껴지면 멈추거나 안전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도록 재빨리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봇에게 힘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힘/토크(Force/Torque sensor) 센서를 설치해야 합니다. 힘/토크 센서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부위는 손과 발입니다. 그래서 로보트 재권V의 손목과 발목에도 힘/토크 센서를 설치하겠습니다. 힘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 힘의 정보를 이용해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겠죠. 

 


또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인 F=ma(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를 적용하면 로봇을 더 자연스럽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 짐을 들고 나를 수도 있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악수도 할 수 있게 됩니다. 


힘(F)을 알면 로봇의 질량(m)은 이미 저울로 측정해서 알고 있으니까 로봇이 움직이는 가속도(a)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가속도를 적분하면 속도가 나오고 속도를 적분하면 위치가 나오니 로봇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모두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물리학과 수학인데요. 그래서 로봇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학과 물리학을 알아야 합니다.    


여하튼 로보트 재권V에게 힘/토크 센서를 부착해서 힘을 느끼게 해주고, 그 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열심히 계산해서 위험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면 안전한 로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로보트 재권V가 위험한 기계가 아니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로보트 재권V를 우리의 친구 같은 로봇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정말 좋은 로봇을 완성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더욱 안전한 로보트 재권V를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균형을 잡고 넘어지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To be continued.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다.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비롯해서 인간과 로봇간의 상호작용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jkha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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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한재권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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