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현재, 정치권에서는 일명 ‘릴레이 삭발’이 이어지고 있다. 정확히는 자유한국당에서다. 1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삭발을 했고, 17일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3명이, 18일에는 5선 이주영 의원과 심재철 의원이 삭발에 동참했다. 정치인에게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비장한 결의, 투쟁 의지 표출의 의미를 갖는다.
사실 특별하기로 따지면 과학에서 머리카락이 갖는 지위가 훨씬 더하다. 머리카락 한 올 두께는 0.1mm 안팎으로 무척 얇고, 어찌 보면 보잘것없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용의자를 추적할 때 수사팀이 가장 먼저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증거물이 머리카락이다. DNA 분석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내 과학수사 역량은 과학동아 연재기사 ‘검시관의 사건 노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머리카락 한 올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많다. 머리카락 뿌리(모근)에는 핵 DNA가 들어있다. 머리카락 뿌리세포 10~15개를 확보하면 핵 DNA를 분석해 실종자의 특성을 대부분 확인할 수 있다. 혹여 뿌리가 없는 머리카락이라면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다.
머리카락에서 얻은 DNA 정보로 얼굴을 예측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가령 머리카락 색깔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데, 정확도가 75% 수준이다.
머리카락은 심지어 블랙홀 물리학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지난해 작고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는 최근 ‘패배’를 안겨줬다.
1960년대 미국의 물리학자인 존 휠러는 검정구멍(블랙홀)은 물질을 내보내지 않고 빨아들이기만 하므로 질량, 각운동량, 전기량 외에는 더 이상의 성질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를 “블랙홀은 머리카락(hair)을 가지지 않는다”고 표현하며 ‘no-hair theorem’(민머리카락정리 또는 머리털없음정리 정도로 번역된다)를 제안했다.
하지만 호킹 박사는 일찌감치 이런 ‘no-hair’를 부정하며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블랙홀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주장해왔고, 수식으로 이를 입증한 논문을 2016년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다. 하지만 2017년 처음 관측된 중력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블랙홀은 ‘no-hair’인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일단은 호킹 박사가 틀린 것이다.
적어도 과학에서는 머리카락이 첨단 법유전학의 시료이자 우주에 대한 인류의 원초적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는 직관을 상징하는 존재다. 과학에서는 머리카락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정치에서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와 같은 낡은 사상만 강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