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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머리는 사람, 몸은 기계 다시 깨어난 사이보그 전사 알리타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양손에 보이는 건 살갗 대신 철그렁거리는 기계 손. 그의 화려한 몸짓 뒤로 다른 사이보그들이 나가떨어진다.

 

뇌는 사람이지만 몸은 기계로 이뤄진 전투 사이보그를 다룬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이 2월 5일 개봉한다. 일본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영화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감독으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에 나서 화제가 됐다. 캐머런은 무려 600여 장에 이르는 설정 자료집까지 만들면서 오랜 기간 이 영화를 준비했다고. 다시 깨어난 사이보그 알리타를 과학으로 들여다봤다. 

 

 

뇌 빼고 몸만 이식? 산소 부족해 불가능

 

알리타는 뇌를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위가 기계로 이뤄진 사이보그다. 온몸이 파괴된 상태로 고철 더미에 버려진 알리타는 사이보그 의사인 다이슨 이도에게 발견된다. 멀쩡한 건 뇌뿐이었다. 이도는 새로운 사이보그 신체를 만들어 알리타에게 이식한다. 이후 알리타는 깨어나지만,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의 뇌를 이식하면 알리타처럼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현재 의학 기술로는 못 깨어날 가능성이 높다. 산소 공급 때문이다. 뇌는 인체 내에서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기관이다. 성인 기준 뇌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산소 소모량은 20%나 된다.

 

산소가 부족하면 뇌세포는 급격히 파괴된다. 산소를 4~5분만 공급받지 못해도 뇌세포가 손상되고, 한번 손상된 뇌세포는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알리타처럼 온몸이 부서진 채 오래 방치됐다면 뇌세포 또한 손상됐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뇌세포 손상으로 사라진 기억까지 복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능적인 부분은 복구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연구진은 최근 뇌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인공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조승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와 강훈철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교수 공동 연구팀은 사람의 뇌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 신경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의생명공학’ 2018년 7월 1일자에 발표했다. doi:10.1038/s41551-018-0260-8

 

 

연구팀은 실제 뇌 조직에 들어 있는 성분을 가공해 뇌 조직을 3차원으로 모사한 새로운 세포 배양 시스템을 제작했다. 기존에도 화합물이나 세포 외 기질을 이용해 뇌를 모방한 시스템은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 뇌세포의 생존율이나 분화 등에서 한계가 있었고, 세포독성을 보이기도 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배양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보다 2배 이상 효율적으로 신경세포 분화를 유도했다. 조 교수는 “이 시스템으로 배양한 신경세포를 허혈성 뇌졸중에 걸린 쥐에 이식해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며 “앞으로 뇌 조직뿐만 아니라 심장이나 간 등 다른 조직을 모사한 시스템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눈동자? 인공 홍채로 가능

 

이번에는 알리타의 얼굴을 살펴보자. 알리타의 얼굴에서 가장 큰 특징은 커다란 눈이다. 얼굴에서 유독 큰 눈 때문에 처음 예고편이 공개돼자 어색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알리타의 눈은 실제 사람의 눈과 동일하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됐다는 점만 제외하면 눈동자의 움직임과 빛을 받아 수축하는 동공 모두 실제 사람 눈과 같다.

 

알리타의 눈을 실제로 만들 수 있을까. 이때 필요한 것은 인공 홍채다.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 본연의 기능을 하면서도 인간의 홍채와 비슷해 위화감이 없어야 한다. 현재 이식 가능한 홍채 중 가장 발달한 형태는 독일의 휴먼옵틱스가 개발한 인공 홍채 ‘커스텀플렉스(CustomFlex)’다.

 

커스텀플렉스는 2018년 5월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FDA의 승인을 받은 인공 홍채는 커스텀플렉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커스텀플렉스도 빛의 세기에 따라 동공을 조절하는 인간 홍채 본연의 기능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한다.

 

아직 상용화 되지는 않았지만, 2017년 핀란드 연구진이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인공 홍채를 개발한 적이 있다. 아리 프리메기 핀란드 탐페레공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팀은 빛에 반응하는 액정 엘라스토머(탄성을 가진 플라스틱 소재)로 인공 홍채를 만들어 빛의 세기에 따라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게 했다. 주변 빛이 강할 경우 동공의 크기를 줄여 빛 투과율을 최대 7배까지 줄인다. 외부 전원도 필요 없다. doi:10.1002/adma.201701814

 

 

국내에서도 인공 홍채가 개발됐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팀은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콘택트렌즈형 인공 홍채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바이오머티리얼스’ 2013년 1월 17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doi:10.1016/j.biomaterials.2013.01.020

 

이 교수팀은 빛을 받으면 분자 구조가 바뀌는 ‘스피로파이란(spiropyran)’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홍채를 제작했다. 그 결과 외부 전원 없이도 빛의 세기에 따라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 이 홍채는 자외선을 차단하고 가시광선만 선택적으로 투과할 수 있다.

 

 


사이보그 무술? 뇌파 조종이 답

 

중국 무협영화를 연상시키는 ‘기갑술’이라는 화려한 액션도 알리타의 특징 중 하나다. 기갑술은 플라스마 불꽃을 사용한다거나 주먹에서 초고주파를 발생시켜 적에게 충격을 주는 등 인간의 신체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기술을 구사하는 사이보그 무술이다. 그런데 알리타의 뇌는 인간의 뇌가 아니었던가. 사람의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알리타의 뇌는 어떻게 명령을 내리는 걸까.

 

뇌에서 나오는 전기적인 신호인 뇌파를 통해 명령을 전달하면 된다. 인간은 특정 행동을 생각할 때 뇌의 운동 피질에서 뉴런이 활성화되는데, 뇌와 기계를 잇는 시스템이 이런 활성을 시뮬레이션해 기계에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을 ‘뇌-기계 인터페이스(BMI·Brain-Machine Interface)’라고 한다. 

 

BMI에는 크게 침습형과 비침습형, 두 가지가 있다. 침습형은 수술을 통해 뇌 특정 부위에 미세전극이나 반도체 칩을 직접 심는 방식으로, 해상도와 인식률이 높지만 수술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주로 의족, 의수 등 의료용으로 많이 쓰인다.

 

반면 비침습형은 헬멧이나 헤드셋 같은 장비를 머리에 쓰고 표면의 전극으로 뇌 신호를 읽는다. 간편하지만 두개골, 두피 등에 의해 신호가 약해지고 잡음이 심해져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비침습형 BMI는 주로 엔터테인먼트에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한국뇌연구원의 명물로 떠오른 ‘뇌파 드론’이다. 이 장비는 헬멧을 통해 뇌파를 읽어 드론을 띄울 수 있으며, 드론에게 공중돌기를 명령하는 것도 할 수 있다.

 

이찬희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알리타는 사이보그여서 뇌와 머리 골격을 연결할 때 침습형 BMI를 장착하면 될 것”이라며 “특히 무술 등 생명과 직결된 섬세한 동작은 비침습형 BMI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 interview 김기범 웨타 디지털 CG 슈퍼바이저 "머리카락 움직임 한 가닥씩 계산"

 

 

“배역 전체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전작인 영화 ‘아바타’는 상상이 가미된 형태이지만, ‘알리타’의 경우 눈이 좀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람하고 똑같습니다. 동작이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관객들이 금방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죠.”

 

화려한 영상미로 무장한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CG는 한국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CG 제작을 총괄한 김기범 웨타 디지털 CG 슈퍼바이저를 과학동아가 만났다.

 

‘불쾌한 골짜기’ 극복이 관건

 

김 슈퍼바이저는 영구아트, ILM 등을 거치며 ‘스타워즈: 깨어난포스’ ‘트랜스포머3’ ‘어벤저스’ ‘아이언맨2’ ‘혹성탈출: 종의 전쟁’ 등 할리우드 유명 블록버스터의 CG 작업을 맡아온 베테랑 CG 기술자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이번 영화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주인공을 포함한 많은 배역들이 사이보그였기 때문에 고도의 CG 기술이 필요했다.

 

그는 “알리타가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알리타는 사이보그지만 인간과 거의 똑같은 외모를 지녔다. 관객들이 알리타에게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어설프게 닮았을 때 오히려 불쾌함을 느낀다는 이론)’를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해법은 ‘정공법’에 있었다. 알리타의 머리카락이 대표적인 예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의 움직임을 CG로 나타낼 때 가이드 헤어를 이용해 작업한다. 가이드 헤어가 되는 한 가닥의 움직임에 맞춰 주변 머리카락들을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알리타는 가이드 헤어를 쓰지 않았다.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을 전부 따로 계산해 처리했다.

 

알리타의 큰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홍채 주름도 하나씩 전부 따로 계산했다. 김 슈퍼바이저는 “홍채의 경우 과거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골룸에 비해 320배 더 정밀하게 움직인다”며 “머리카락, 홍채뿐만 아니라 얼굴 근육의 움직임 등 움직임이 필요한 곳은 부위별로 최대한 세분화해 알리타의 움직임을 인간과 최대한 비슷하게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CG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영화지만, 그는 영화의 1등 공신으로 CG가 아니라 배우를 꼽았다. 그는 “현장의 느낌과 감정은 배우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다”며 “CG 작업을 할 때도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알리타의 경우 블루 스크린 촬영을 최대한 배제했다. 특수 배경을 만들어 배우가 직관적으로 공감하고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철 도시도 파나마의 실제 도시의 도로와 건물 배치 데이터를 토대로 작업해 현실감을 살렸다. 얼굴에 지는 그림자, 먼지에 의한 빛의 산란, 고도에 따른 색온도 변화 등도 모두 실제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김 슈퍼바이저는 “기술적으로 구현되지 않는 장면이 생기면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해결했다”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장인 정신이 없었다면 영화 ‘알리타’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최고의 장면은 바로 사이보그들이 대결을 벌이는 ‘모터볼’이다. 화려한 CG와 압도적인 스피드로 이 장면 하나만 봐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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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 사진

    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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