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류의 꿈은 언제부터였을까. 인류에게 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1505년 이탈리아의 천재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새의 몸 구조와 새의 비행 원리를 해부학과 생리학 지식을 동원해 연구했다. 그 결과 새의 날개 윗부분과 아랫부분에서 압력 차이가 존재해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훗날 과학적으로 증명된 ‘양력’이다.
1900년 9월,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비로소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인류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유인 글라이더 비행을 실시해 최고 20노트(시속 약 37km)의 속도로 200피트(약 61m)가량을 난 것이다. 라이트 형제는 새가 날개 모양을 변화시키면서 비행한다는 사실을 포착해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제작했다.
지금도 새는 여전히 항공기의 역할모델이다. 적은 연료로 효율적으로 나는 방법은 어떤 첨단 항공기도 새에 못 미치고 있다. 특히 새는 순간적인 상황에 따라 깃털을 부위별로 세밀하게 조절하며 비행한다. 과학자들은 ‘완벽한 항공기’인 새를 모방하기 위해 새의 비행 방식과 날개, 깃털을 분석하는 생체모방 연구를 하고 있다.
시속 320km 송골매, 비행 제어 비결은 깃털
항공기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음속의 5배(시속 6120km)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여객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는 서울에서 뉴욕까지 2시간이면 도착하는 속도다.
다만 초고속 비행에는 주의해야 할 점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급작스런 속도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어쩌면 이에 대한 해답은 송골매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송골매는 지구상 가장 빠른 동물 중 하나다. 무려 시속 320여km로 비행할 수 있다. 또한 송골매는 먹이를 포착하면 빠르게 하강해 먹이를 다시 낚아채곤 곧바로 다시 솟구쳐 오른다. 어떻게 이런 비행이 가능할까.
과학자들은 송골매의 날갯죽지 근처의 특정 깃털들에 주목했다. 송골매가 일정 속도 이상의 비행을 시작하면 이 깃털들이 곧추서는 장면이 계속 포착됐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공기의 흐름이 빨라지면 송골매의 날갯죽지 근처에 있는 깃털들이 진동하면서 속도를 감지하고, 이에 따라 이 깃털들을 세우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이 깃털은 비행 속도도 제어할 것으로 예상했다.
마르코 로스티 영국 런던대 컴퓨터과학및공학부 박사과정 연구원은 송골매의 이 깃털들이 고속 비행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해 이론 및 응용역학 저널인 ‘메카니카(Meccanica)’ 2017년 6월호에 발표했다. doi:10.1007/s11012-016-0524-x
연구팀은 송골매와 비슷한 유선형 몸체가 비행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주변의 공기흐름을 조사했다. 유선형 몸체에는 송골매의 날갯죽지 근처 깃털을 모방한 막대를 여러 각도로 붙였다. 그 결과 막대가 위로 솟을수록 주변 소용돌이 기류에 변화가 커졌고, 이 변화는 양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송골매는 날갯죽지 근처 깃털을 이용해 고속 비행 중에도 안전하면서 빠르게 상승하면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기류 등으로 비행기의 속력이 갑자기 빨라질 때 이를 감지하고 속력을 다시 줄이는 항공 기술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파랑새 깃털 구조, 디스플레이에 응용
깃털의 구조색 역시 생체모방의 주요 대상이다. 이은옥 국립생태원 생태연구본부 융합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현재 많이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는 색상을 내기 위해서 별도의 컬러필터와 이를 구동할 전력이 필요하다”며 “구조색은 빛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전력이 따로 필요 없는 만큼 차세대 광소자로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색은 비단 깃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곤충들이 구조색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모르포 나비의 파란색 날개 구조는 구조색을 구현한 대표적인 예다. 모르포 나비의 날개에는 파란색 색소가 전혀 없지만, 날개의 표면구조가 독특해 파란색 파장의 빛만 반사시키고 결과적으로 파란색을 띤다. 이는 이미 반사형 디스플레이와 화장품 등에 활용되고 있다.
반면 깃털의 구조색은 2010년 이후에서야 생체모방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일본 나고야대 연구팀은 북미에 서식하는 ‘스텔러어치’라는 새의 깃털을 분석해 직접 멜라닌 입자를 만들었다.
스텔러어치의 구조색은 파란색인데, 이 구조색은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색이 달라지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구조색은 까치의 꼬리깃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경우와 스텔러어치처럼 보는 각도에 상관없이 일정한 색을 띠는 것으로 나뉜다. 구조색을 만드는 멜라닌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면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무질서하게 있으면 일정한 색을 낸다.
디스플레이에 응용하기에는 보는 각도에 상관없는 구조색이 더 적합하다. 연구팀은 깃털에 있는 멜라닌 구조를 분석한 뒤, 콜로이드실리카라는 물질을 이용해 멜라닌과 유사한 미세입자를 만들어 스텔러어치의 구조색을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 doi:10.1002/adma.201605050
한편 이 선임연구원은 올해 4월부터 여종석 연세대 글로벌융합공학부 교수와 공동으로 ‘저전력 디스플레이 소재개발을 위한 파란색 깃털 구조색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깃털의 파란색은 대부분이 색소가 아닌 구조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조색 연구에서는 파란색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뤄진다. 이 선임연구원은 “국내에 서식하는 파랑새, 쇠유리새, 어치, 물까치, 물총새를 대상으로 파란색을 내는 ‘케라틴’의 미세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깃털의 구조색은 멜라닌뿐만 아니라, 깃털의 주성분인 케라틴도 관여한다. 케라틴은 깃털 내에서 그물망 구조를 띠고 있는데, 이 구조가 빛을 굴절시키면서 특정 색상을 내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케라틴의 그물망 구조는 얼기설기 엉켜 있어 매우 불규칙해보이지만 이를 부분적으로 나눠보면 규칙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이 규칙성이 특정 색깔을 내게 하는 원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선임연구원이 새의 깃털 구조를 광학적으로 분석해 그 결과를 여 교수에게 보내면, 여 교수는 이를 토대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 찾아내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새의 케라틴 구조는 짧은 길이로 나눠져 있는 반면, 쇠유리새의 케라틴 구조는 실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때문에 쇠유리새 깃털의 파란색은 조금 탁한 편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구조색의 미세구조를 상세히 파악하면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페인트나 화장품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음 죽이는 올빼미 깃털
올빼미 깃털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깃털이 비행 소음을 줄여 준다. 야행성인 올빼미는 청각 정보에 의존해 먹이를 찾는다. 이 때문에 날 때 내는 소리를 줄여야 주변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또한 상대가 공격을 알아채지 못한다.
새가 날갯짓을 하면 공기의 흐름이 순간적으로 크게 바뀌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더군다나 올빼미는 결코 작은 새가 아니기 때문에 소음이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실제 올빼미의 비행 현장을 녹음하면 소음이 거의 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올빼미의 독특한 깃털 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올빼미의 날개깃 앞쪽 끝은 뻣뻣한 털들이 빗살 형태를 이루고 있고, 날개깃 뒤쪽 가장자리는 부드러운 잔 깃털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이는 소음의 주요 원인인 소용돌이 기류가 생기는 것을 억제해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저스틴 저워르스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응용수학및이론물리학과 연구원팀은 올빼미의 날개깃뿐만 아니라 날개 표면을 카펫처럼 덮고 있는 부드러운 솜털 또한 소음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2013년 ‘유체역학 저널’에 발표했다. doi:10.1017/jfm.2013.139
특히 이 솜털은 날개깃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음을 억제했다. 보통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기가 지나가는 표면이 매끈해야 한다. 표면이 거칠면 공기의 흐름 또한 매끄럽지 못해 소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개깃 역시 표면이 매끈하다. 하지만 연구팀이 분석한 솜털은 표면을 거칠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소용돌이 기류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소음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워르스키 교수는 “소음을 억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며 “솜털이 소용돌이 기류를 억제하는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면 거친 표면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