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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기상이변 일으키는 태평양의 강력한 기후 엔진 ‘천의얼굴’ 엘니뇨

‘전국 평균 폭염일수 역대 최다’ ‘전국 평균 최고기온 역대 최고’ ‘전국 기상관측소 60% 최고기온 경신(서울 39.6도)’… 그야말로 ‘기록적인’ 폭염이 7~8월 이어졌다. 재난은 한반도만 덮친 게 아니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탓에 일본과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도 40도가 넘는 이상고온에 시달렸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올 여름에는 열대 태평양이 평년과 유사한 상태였지만, 지구온난화와 강력한 엘니뇨가 결합되면 지구의 기온은 올해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 폭염과 가뭄, 홍수, 폭설 등 기상이변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엘니뇨의 다양한 발생 과정을 국내 연구진이 주도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 핵심을 공동 연구자에게 직접 들어봤다.

 

1998년, 2010년, 2016년 북반구 중위도 여름의 공통점은 뭘까. 기후과학 측면에서 답은 두 가지다. 기록적인 폭염이 덮쳤다는 점, 그리고 폭염 발생에 엘니뇨가 기여했다는 점이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 바닷물의 이상 고온 현상을 말한다. 수 세기 동안 페루의 어부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따뜻한 해류가 페루 북부 해안에 몰려오는 현상을 알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엘니뇨’라는 이름으로 구전되다 1893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에너지 평형 맞추는 엘니뇨-남방진동


최근 기후과학자들은 ‘엘니뇨-남방진동(ENSO·El Nino and Southern Oscillation)’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이는 엘니뇨가 열대 태평양 해양-대기 시스템이 결합해 발생하는 2~8년 주기의 자연적인 기후 변동이기 때문이다. 


자연법칙은 에너지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는다. 에너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평형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대기 순환, 해양 순환, 그리고 여러 기후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엘니뇨는 열대 서태평양에 축적돼 있는 해양 상층의 열에너지를 중·동태평양 및 중위도 해양으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적도 태평양의 중심 부근에서 동쪽지역까지 바닷물이 비정상적으로 따뜻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수개월에서 1년까지 지속된다. 그 결과 해수면으로부터 대기 중으로 많은 양의 열이 방출되고, 대기 순환이 바뀌며, 지구 전체의 기상 패턴에 변화가 생긴다. 지구 곳곳에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다양한 기상이변을 야기할 수 있다. 


가령 엘니뇨가 발생하면 호주, 남아시아, 인도 등에서는 폭염과 가뭄, 산불이 심해진다. 그에 반해 페루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엘니뇨가 발생하면 홍수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 중위도 국가들은 열대 국가들에 비해 그 영향이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앞서 설명한 1998년, 2010년, 2016년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폭염은 여름철 엘니뇨가 소멸되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되고 고기압성 순환이 강화된 결과였다.

 

 

 

예측 어려운 엘니뇨의 ‘복잡성’ 


엘니뇨가 기상재해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으면서 전세계 과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이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 메커니즘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수치 모델을 통해 수개월 앞서 엘니뇨 발생 여부, 강도, 지속 기간 등을 일부 예측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가 있다. 엘니뇨의 발생 패턴이 불규칙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엘니뇨는 매번 다양한 형태로 발생했다. 한 예로 2014년 5월 열대 태평양은 심상치 않았다. 서태평양 상층 해양에 뜨거운 물이 상당량 축적돼 조만간 엄청난 에너지를 품은 해수가 동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였다. 
전세계 여러 기후예측모델이 ‘곧 엘니뇨가 시작되고, 겨울이 되면 강도가 1997~1998년에 맞먹는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각국 언론들은 ‘17년 만의 슈퍼 엘니뇨’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2014년 엘니뇨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슈퍼 엘니뇨는 2015~2016년에 발생했다(이때는 기후예측모델이 예측에 성공했다). 2014년의 예측 실패는 기후과학자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 엘니뇨의 다양성과 엘니뇨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엘니뇨의 비선형적 특성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기후과학자들은 첨단 관측시스템을 이용해 1997~1998년, 2004~2005년, 2006~2007년, 2009~2010년, 2014~2015년, 그리고 2015~2016년에 발생한 엘니뇨의 특성(발생, 영역, 강도, 지속기간, 영향 등)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약 10년 전부터 이런 다양한 엘니뇨를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적도 동태평양을 중심으로 해수면 온도가 증가하는 ‘동태평양 엘니뇨’와, 중태평양을 중심으로 해수면 온도가 증가하는 ‘중태평양 엘니뇨’가 바로 그것이다. 엘니뇨는 유사한 형태 내에서도 매번 공간적, 시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두 가지 ‘엘니뇨 진자’의 상호작용


필자가 프로젝트 리더로 참여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팀은 엘니뇨의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했다. 


악셀 팀머만 부산대 석학교수(IBS 기후물리연구단장)가 연구를 이끌고 안순일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 국종성 POSTECH 환경공학부 교수 등 국내 엘니뇨 전문가와 해외 10여 개국 엘니뇨 전문가들이 협력해 기후관측 자료를 분석하고, 이론 모델을 개발하고, 컴퓨터 수치모델을 이용해 시뮬레이션 했다. 


그 결과, 엘니뇨의 발생 주기 및 발생한 장소에 따라 다양성을 띠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통합이론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복잡해 보이는 엘니뇨 현상 내부의 수학적 구조를 밝혀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열대 태평양의 해양-대기 결합 시스템은 동태평양 엘니뇨와 중태평양 엘니뇨라는 서로 독립적인 기후 변동 모드를 갖고 있다. 우리 연구팀은 이 두 가지 독립적인 진동 모드가 마치 두 개의 진자처럼 상호작용해 매우 다양한 형태의 엘니뇨 현상이 발현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동태평양 엘니뇨는 3~7년 주기로 발생하는데, 열대 태평양 해양 상층에 열이 많이 저장되고 무역풍이 약할 때, 하층의 차가운 바닷물이 표층으로 올라오는 현상이 약해지며 주로 발생한다. 


그런가 하면 중태평양 엘니뇨는 2~3년마다 찾아오는데, 해양 상층의 열저장이 상대적으로 적고 대신 무역풍이 강할 때 따뜻한 바닷물이 표층에서 동서 방향으로 이동하며 주로 발생한다. 동태평양 엘니뇨는 일반적으로 소멸 후 해수의 이상 저온현상인 라니냐로 전환되지만, 중태평양 엘니뇨는 라니냐로 전환되는 확률이 낮다. 


이밖에 열대 태평양의 해양-대기 결합 시스템의 외부 요소들도 엘니뇨의 다양성을 더욱 가중시켰다. 예를 들면 서태평양 태풍 등의 돌발적인 날씨 현상이나, 연중 태양 복사 변화에 따른 계절 주기, 해양의 수십 년 주기 변화, 인도양과 대서양 등 다른 해양 분지와의 상호작용 등도 엘니뇨의 다양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로 엘니뇨 영향 더 강해져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인위적인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엘니뇨에 의한 이상기후가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있다. 올해 폭염은 북반구 중위도 제트기류가 약해진 것이 주원인이지만(지구온난화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향에 엘니뇨까지 더해진다면 폭염의 강도가 더 세지고 지속 기간도 더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올 여름철 열대 태평양은 평년과 유사하며, 차후 엘니뇨가 발생한다고 해도 약한 엘니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월부터 적도 중·동태평양 해수면의 온도가 약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엘니뇨로 발달할지는 아직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몇몇 기후예측모델이 가을부터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지만, 반대 예측을 내놓는 모델도 있다.


엘니뇨 발생과 엘니뇨에 의한 이상기후를 예측하는 첫 걸음은 엘니뇨가 발생, 지속, 소멸하는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모의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번 연구가 엘니뇨를 예측하고, 수많은 기후과학 난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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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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