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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물리학의 환상이자 난제, 고온 초전도체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인 전기는 도선내부 전자의 흐름입니다. 이때 전자의 이동은 원자핵이나 다른 전자, 불순물 등과의 충돌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저항). 고전물리에서는 저항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력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저항으로 인한 발열과 전력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1911년 네덜란드 과학자인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는 이런 학설을 처음으로 깨뜨립니다. 오너스는 자신이 가공한 액체헬륨을 이용해 절대영도(0K) 근처에서 물질의 저항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하 약 268.8도(4.2K) 이하에서 수은의 저항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최초로 관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전자가 물질 내부에서 충돌 없이 움직일 수 있는 현상을 ‘초전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1913년 극저온에서 물질의 특성을 연구한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쿠퍼 쌍’이 초전도 현상 일으켜

 


초전도 현상은 발견된 지 거의 50년이 지난 1957년에이르러서야 이론적으로 설명됐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의 존 바딘, 레온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는 원자 진동을 매개로 전자 간 간접적인 인력(당기는 힘)이 발생했을 때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이론은 세 명의 이름의 앞 글자를 따 ‘BCS 이론’이라고 불립니다(아래 '저온 초전도체가 나타나는 원리'그림).

 

BCS 이론의 핵심은 특정 온도 미만에서 인력이 충분히 강해지면 전자들이 더 이상 개별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둘씩 쌍을 이뤄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쿠퍼쌍’이라고 불리는 이 두 전자의 집합체는 단일 전자와는 특성이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고체 내에서 충돌 없이 흐를 수 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즉, 이 쿠퍼 쌍이 전하를 전달할 때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바딘과 쿠퍼, 슈리퍼 역시 이 이론을 설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초전도는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저항이 0이라는 사실 외에도 외부자기장을 완전히 밀어내는 완벽한 반자성체의 특성도 가졌습니다. 다른 물질에서 나타나지않는 이런 이상적인 특성들 때문에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은 초전도 현상에 매료됐습니다.


그 결과 초전도체는 전력을 효율적으로 송신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저장하고, 의료 목적으로 고자기장을 생성하거나, 자기부상열차를 달리게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절연물질 도핑해 고온 초전도체 최초 발견


하지만 초전도가 발견되고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초전도체를 상용화하는 데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걸림돌이 있습니다. 바로 초전도체의 낮은 임계온도입니다. BCS 이론은 30K(영하 243도) 미만에서만 원자가 진동할 때 초전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합니다. 학계에서는 BCS 이론이 설명하는 초전도체를 ‘저온 초전도체’라고도 부릅니다.

 

현대로템이 개발한 자기부상열차 ‘에코비’. 인천공항 구간에서 운행된다.

 

 

측합니다. 학계에서는 BCS 이론이 설명하는 초전도체를 ‘저온 초전도체’라고도 부릅니다. 한 마디로 초전도 현상을 활용하려면 액체헬륨 등을 이용해 물질의 온도를 절대영도(영하 273도) 근처까지 낮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험실에서는 가능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저온 초전도체의 한계를 깨는 새로운 초전도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저항이 작은 금속 원소나 이를 기반으로 한 화합물에서 초전도체를 찾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달성한 최대 임계온도는 10년간 약 23.3K였습니다. 여기에 쓰인 화합물은 니오브산게르마늄(Nb3Ge)입니다.


스위스 IBM 취리히연구소의 베드노르츠 박사와 뮐러 박사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초전도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항이 매우 큰 절연물질에 전자나 양공을 서서히 도핑하는 방법으로 초전도체를 만드는 것이지요. 결국 1986년 두 사람은 고온 초전도체를 발견했습니다.

 

양공
전자가 비어 있는 자리를 말하며, 양전하 입자와 동일한 역할을 하는 가상 입자


두 사람은 주기율표에서 4주기의 전이원소인 티타늄, 니켈, 구리 등과 산소 화합물에 주목했습니다. 이중 산화구리(Cu-O)를 기반으로 한 Ba(바륨)-La(란타넘)-Cu-O에서 초전도 현상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이 도입한 도핑의 효과는 매우 극적이었는데, 저항이 매우 높은 물질인 La-Cu-O에 Ba을 고작 6% 정도 도핑하자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가 된 것입니다. 절연체에 전자나 양공을 도핑하는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새로운 초전도체를 찾아내는 데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베드노르츠 박사와 뮐러 박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연구결과를 보고한 이듬해인 1987년 연구결과 발표 1년만에 이례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들이 달성한 최대 임계온도는 35K에 그쳤지만, 이 연구를 기반으로 전 세계 물리학자들은 이와 관련된 산화구리 계열 화합물에서 초전도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여러 연구실에서 100K에 가까운 임계온도를 가진 초전도체들을 얻어냈습니다. 이후 산화구리 기반 초전도체는 기존 초전도체보다 임계온도가 높다는 뜻에서 ‘고온 초전도체’라고 불리게 됩니다.

 

특히 임계온도가 77K가 넘는 초전도체는 액체질소를 사용해서도 임계온도 미만으로 냉각이 가능합니다. 100리터(L) 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액체헬륨에 비해 물보다도 싼 액체질소는 초전도체를 산업화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초전도체의 가장높은 임계온도는 Hg(수은)-Ba-Ca-Cu-O 화합물의 135K입니다.

 

고온 초전도체는 전자간 상호작용이 만들어


고온 초전도체는 단순히 임계온도가 높다는 사실 외에도 저온 초전도체와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초전도 상태에서 쿠퍼 쌍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저온 초전도체에서는 원자가 진동할 때 전자쌍이 만들어지는 반면, 고온 초전도체에서는 전자끼리의 강한 상호작용이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고온 초전도체에서는 초전도 현상 외에도 자성, 전하 밀도파(charge density wave) 등 새로운 상들이 관측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강한 상호작용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온 초전도체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현대 고체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실험물리학자들에게는 파라다이스이지만, 이론물리학자들에게는 악몽’인 셈입니다.

 

전하 밀도파
고체 내에서 전하의 밀도가 공간상에 마치 파동처럼 주기적으로 정렬돼 있는 상태.

 

최근에는 차세대 소자 재료로 각광받는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 두께의 2차원 물질에서 초전도 현상이 발견돼 초전도 연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필자가 몸 담았던 김근수 연세대물리학과 교수팀은 2차원 반도체를 넓은 폭으로 도핑할 때 나타나는 전자 구조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데, 최근 초전도 상태에서 ‘홀스테인 폴라론’이라는 입자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홀스테인 폴라론은 격자의 왜곡이 전자와 합쳐진 형태의 합성 입자로, 1950년대 이론적으로 제시된 후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관측된 사례가 없었습니다.

 

연구팀은 또한 홀스테인 폴라론 입자의 강도가 초전도 상태의 임계온도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입자가 2차원 물질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초전도를 설명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지요.

 

초전도체를 이해하고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물리학적으로, 공학적으로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초전도체에 대한 실험을 거듭할수록 우리가 몰랐던 현상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에, 처음 발견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초전도 현상은 물리학자들에게 여전히 새롭게 다가옵니다. 언젠가는 고온 초전도체가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강민구
POSTECH 물리학과를 졸업 한 뒤 김근수 연세대 교수 연구실 연구원을 거쳐 미국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다. 분광학적 방법을 이용해 반도체와 초전도체의 전자구조 및 에너지 레벨을 연구하고 있다. iordia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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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민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 에디터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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