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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노트] 왕관의 무게

 

지난해 미국에서 지낼 때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작품상에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이 호명됐다. 방송사가 아닌 동영상 플랫폼 기업의 첫 작품상 수상이었다. 더 크라운은 생존한 세계 최고령 재위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2)의 삶을 다뤘다. 필립 공과 결혼한 뒤 아내와 어머니로 살다가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여왕이 되면서 그 중압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흥미롭다.

 

그녀는 대관식을 앞두고 왕관을 머리에 써보다가, 아버지 조지 6세의 대관식 전날을 떠올린다. 조지 6세는 5파운드(약 2.27kg) 무게의 왕관을 들어올리더니 “정말 무겁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왕관의) 상징적인 무게는 말할 것도 없고…”라며 엘리자베스 2세를 바라본다.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다.

 

이소연 씨가 한국 첫 우주인으로 선발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온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러시아 연방우주청은 소유스호를 타고 ISS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인들을 공개하는 홈페이지(www.astronaut.ru)에 이씨를 ‘우주 비행 참여자(Space Flight Participant)’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우주 관광객’이라고 비꼬는 시선도 있다.

 

정부의 우주인 사업은 일회성으로 끝났고, 제2 우주인 사업은 시작도 못했다. 이 씨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2014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사표를 냈다. ‘우주 관광객’이라고 비꼬는 시선은 ‘먹튀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씨는 ‘한국 첫 우주인’이라는 왕관을 썼다. 한국 첫 우주인으로서 이 씨의 역할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왕관이 무겁다며 잠깐 내려놓겠다는 무책임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다. 정부가 바뀌고, 개인의 상황이 달라진다고 해서 한국 첫 우주인이라는 왕관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있으면 6·13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왕관의 화려함만 좇던 이들이 무척 많은 것들을 어렵게 만들고, 망쳐 버리던 것을 오랫동안 자주 봐 왔다. 왕관의 화려함을 누리려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글 : 이현경 편집장

과학동아 2018년 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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