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하나 있다. 지구가 공 모양이 아니라 주사위 모양의 정육면체라면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학적으로 추측해본 영상이다. 이 영상은 전 세계에서 엉뚱하고 기발한 연구 결과를 재미있는 영상으로 만드는 ‘채널AI’에 공개됐다. 제임스 채펠 호주 애들레이드대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팀과 마크 채펠 그리피스대 기계공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지구가 정육면체라고 가정하고 중력의 방향과 크기, 이에 따른 지형이나 생물 서식지의 변화를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하게 연구해 ‘피직스 인터내셔널’에 발표했다.doi:10.3844/pisp.2012.50.57 정육면체 지구는 지금의 지구와 얼마나 다를까.
중력_(면 중앙에서 최대, 꼭짓점에서 최소)
아직도 일각에서는 지구가 편평한 널빤지 모양이라거나 속이 빈 강정 형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사진에서도 확실히 보이듯 지구는 공처럼 둥글다. 물론 맨눈으로 보이는 태양이나 달,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화성이나 금성 등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천체는 구형이다. 질량이 충분히 큰 물체는 내부 중심으로 중력이 작용하는데, 표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 모양을 띠고 있다.
연구팀은 육면체 지구의 질량이 실제 지구와 같다고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 한 변의 길이가 약 9340km인 정육면체라는 결과를 얻었다. 구형을 제외했을 때 정육면체가 가장 안정된 구조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우주에서 정육면체 모양의 천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고재현 한림대 응용광물리학과 교수(한국물리학회 대중화위원회 위원)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에서는 정육면체가 물리적으로 안정적인 구조가 아니다”라며 “만약 정육면체를 띠는 천체가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구형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정육면체 모양의 지구도 공 모양의 지구와 마찬가지로 정중앙(중심)에서 질량을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의 조건은 동일하다고 가정했다. 이 경우 중력이 정육면체 지구의 여섯 면에 미치는 힘의 방향과 크기의 조건은 동일하다고 전제했다.
실제 지구에서는 중력이 지구 내부 중심점으로부터 지표면까지의 거리, 즉 지구 반지름(약 6378km)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구형이기 때문에 지구상 어느 지점 에서든 중심에서부터의 거리가 거의 동일해, 중력도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정육면체 지구에서는 중심으로부터의 지구 표면 위의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달라진다. 중심에서 수직으로 바로 위 지점까지의 거리가 가장 짧고, 중심에서 꼭짓점까지의 거리가 가장 길다.
공 모양 지구에서는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반면 연구팀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육면체 모양 지구에서는 각 면으로부터 수직거리에 따라 중력의 크기가 달라졌다. 먼 거리에서는 지금처럼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는 거리에 반비례하는 특성을 보였다. 그래서 거리에 따른 중력의 변화를 그래프로 그리자 ‘가파른 미끄럼틀’처럼 나타났다.
연구팀은 정육면체 모양 지구의 한 면에 대해 중력의 변화를 시각화했다.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 한눈에 알 수 있게 중력이 큰 곳에 비해 작은 곳을 높게 표현한 것이다. 그 결과 면의 정중앙에서는 중력이 가장 크고 꼭짓점으로 갈수록 작아져, 마치 펼쳐놓은 보자기의 가운데를 아래로 꾹 누른 것 같은 형태의 3차원 그래프가 나타났다(아래 그림).
재미있는 사실은 정육면체 모양 지구에서는 공 모양 지구에 비해 무게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고 교수는 “정사각형 면의 정중앙에서도 원래 지구에 비해 무게가 약간 줄어들고, 꼭짓점에서는 중력이 가장 작은 만큼 무게가 더 줄어든다”며 “질량이 100kg인 사람이 꼭짓점에 갈 경우 60kg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다_(중앙에 볼록렌즈 처럼 솟아 올라)
연구팀은 중력의 방향에도 주목했다. 공 모양 지구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발 아래쪽 수직방향으로 중력이 작용한다. 하지만 정육면체 모양 지구에서는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중력 방향이 달라진다. 중력이 지표면과 수직이 아닌, 지구 중심을 향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정육면체 지구에서 중력을 계산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각 지점의 좌표(x, y, z)와 지점마다 달라지는 변수(α, β, γ)를 일일이 대입했다. 이렇게 나온 방정식은 매우 복잡해, 독자들에게는 아래에 수식만 공개한다.
연구팀은 중력의 방향에 따라 바닷물도 각 면의 중앙으로 흘러내려 쌓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지구 오대양 바닷물을 모두 합친 부피(약 1.4×109km3)에 해당하는 바닷물이 정육면체 모양의 지구에서 어떻게 퍼져 있을지 시뮬레이션 했다.
그 결과 각 면마다 중심에 볼록렌즈처럼 솟은 둥근 모양으로 대양이 생겼다. 대양의 폭은 약 4000km였고, 해수의 높이는 최대 300km였다. 해수의 ‘깊이’가 아닌 해수의 ‘높이’인 이유는 각 면에서 바닷물이 가운데로 몰려 마치 볼록렌즈처럼 볼록하게 솟아 있기 때문이다. 모서리와 꼭짓점 에서는 중앙에 비해 중력이 작아 육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서식지_(해안가 10km에 모여살아)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은 정육면체 지구의 어디쯤 살 수 있을까. 실제 지구는 대륙이 고르게 펼쳐져 있는 편이어서 동식물도 세계 각지에 고루 퍼져 있다. 하지만 정육면체 모양 지구에서는 살만한 땅이 그리 넓지 않다.
일단 생물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공기다. 연구팀은 정육면체 지구에서 대기 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예측했다. 지구가 달에 비해 대기가 짙은 이유는 중력이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육면체 지구에서도 중력에 따라 대기 농도가 달라진다.
실제 지구의 대기권은 지표면으로부터 약 100km다. 모든 지점에서 중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대기권의 모양도 지구와 거의 비슷하게 둥글다. 하지만 정육면체 지구에서는 중력이 작은 모서리와 꼭짓점 부근에서는 대기가 극히 적고, 중력이 큰 각 면의 중앙에 대부분 몰려 있다. 연구팀이 현재 지구에서 고도 100km의 대기압을 기준으로 정육면체 지구의 대기권을 계산한 결과 대기권의 형상도 바다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면 중심부에 대기가 몰리고, 모서리와 꼭짓점 위에는 대기가 거의 없었다.
대기 농도는 생명과 직결된다. 공기가 부족하면 대부분의 생물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기가 풍부한 각 면의 정중앙에는 살기가 불가능하다. 한 가운데는 바다가 솟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연구팀은 정육면체 지구에서는 사람을 포함한 동식물이 해안가로부터 10km 이내에 모여 살 것으로 예상했다. 고 교수는 “볼록렌즈 모양의 바다가 사각형의 면과 만나는 선, 그리고 볼록렌즈 모양의 대기가 사각형 면과 만나는 선 사이의 좁은 범위 안에서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공위성_(여덟바퀴 째 결국 지구와 충돌)
연구팀은 정육면체 지구 주위를 돌 수 있는 달(위성)이나 인공위성의 궤도도 계산했다. 지구와 달이 구형일때는 서로 무게중심을 기준으로 공전한다. 그래서 달은 상대적으로 질량이 큰 지구로부터 일정한 거리(약 38만3000km)만큼 떨어져서 일정한 주기(약 27.3일)로 돈다.
인공위성도 마찬가지다. 지구 중력에 끌려 들어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지구와 부딪치지 않을 만큼 고도가 높다. 연구팀은 인공위성이 정육면체 지구의 각 지점을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탈출속도(지구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 속도)를 계산했다. 그 결과 꼭짓점에서는 탈출속도가 약 6.05km/s, 면의 중심에서는 약 7.47km/s였는데, 이는 현재 지구에서의 탈출속도(약 11km/s)보다 작다.
연구팀은 인공위성의 궤도를 정육면체 지구의 면과 모서리의 가운데를 잇는 선으로 가정하고 인공위성의 궤도도 계산했다. 인공위성이 처음 궤도에 안착한 높이가 지구 중심에서 지표면까지 거리의 3배라면, 인공위성이 움직이는 속도는 약 3.63km/s였고, 지구를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48분이었다.
하지만 꼭짓점을 지날 때마다 지구와 인공위성 간 거리가 가까워져 만유인력이 커지는 탓에 인공위성이 움직이는 궤도가 바뀌었다. 꼭짓점에서는 원래 출발했던 고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가, 사각면의 중심을 지날 때는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연구팀은 정육면체 지구가 10시간에 한 바퀴 자전한다고 가정하고 다시 인공위성 궤도를 계산했다. 그러자 인공위성이 지구를 여덟 바퀴째 돌 때 꼭짓점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 교수는 “꼭짓점에서는 지구와 인공위성의 만유인력이 훨씬 커지는 탓에 실제 지구에서처럼 안정적인 궤도로 돌지 못하고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주에서 정육면체 모양의 천체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땅이 거의 없다. 고 교수는 “학문적인 호기심 차원에서는 충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특히 청소년과 일반 대중에게 물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알맞은 소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