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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새 책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펼쳐진 연극 ‘남태평양’의 무대. 원주민 추장이 북을 치며 무대에 올랐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다. 파인만은 암 수술을 받은 직후였지만 늘 그렇듯 ‘유쾌한’ 모습으로 공연을 마쳤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추장님’으로 불리게 됐다.

 

올해는 1918년에 태어난 파인만의 탄생 100주년이자, 사망 30주기가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파인만의 자서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전 2권)’와 에세이집 ‘남이야 뭐라하건’을 한 데 묶은 책이 출간됐다. ‘클래식 파인만’은 파인만이 70년 일생 동안 겪은 일화를 종합적으로 그려내며, 파인만의 ‘장난스럽고 유쾌한’ 면 뒤에 가려진 과학적 업적을 재조명했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파인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힌다. 거시 세계 물리학의 대부가 아인슈타인이라면, 미시 세계 물리학의 대표 주자로 파인만이 꼽힌다. 2005년 미국에선 그의 얼굴이 담긴 기념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며 그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과학혁명’의 역사를 엿보는 느낌을 받는다. 양자 역학, 원자폭탄 개발, 우주 왕복선 사고 등 20세기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의 중심에 늘 파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프리먼 다이슨,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20세기 과학사에 화려하게 이름을 남긴 과학자들이 파인만의 선생, 동료 혹은 친구로 등장한다.

 

“비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 일에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대학원 시절 원자폭탄을 만드는 ‘비밀스러운 일’에 참여를 권유받았을 때 파인만은 처음 이렇게 반응했다. 하지만 히틀러 등 국제 정세는 이내 파인만이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 즉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독자라면 적어도 책 중반에 나오는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 참여 일화와 책의 에필로그로 실린 강연문 ‘과학의 가치’는 읽어보길 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과학이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낀 파인만은 후배들에게 항상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길 권유하며 인생의 후반기를 보냈다.

 

파인만은 1955년 미국 국립과학학술원 모임에서 ‘과학의 가치’를 강연하며 이런 명언을 남겼다. ‘추장님’의 100세를 기념해 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현재 우리는 앞으로 인류가 누릴 긴 역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연이어 기침을 한다. 숟가락을 넣어 함께 먹던 찌개를 괜히 쳐다보게 된다. 감기가 아니라 감염성 눈병에 걸렸다면 어떨까. 혹시라도 손을 눈으로 가져가지는 않는지 자꾸 신경 쓰이게 될 터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상류층에서 솜씨 좋은 것으로 평이 자자했던 요리사 메리 맬런의 일생을 소설처럼 써냈다. 장티푸스 바이러스 보균자인 메리는 비록 자신은 건강했지만, 여러 집안의 식솔 24명을 장티푸스 환자로 만들었다.

 

이후 ‘장티푸스 메리’라는 악명을 얻은 채 26년간 격리 병동에 유폐돼 살았고, 그곳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보건 당국은 그녀를 범죄자 다루듯 추적하고 겁박했으며, 경찰까지 나서 메리를 잡아들이려 기를 썼다. 일개 민간인이자 평범한 가사 노동자가 감염병 보균자라는 이유로 ‘현대판 마녀’가 된 셈이다.

 

이 책은 메리의 사례를 통해 현대 사회를 조명한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공중보건이라는 시스템과 충돌할 때, 그리고 공공의 안전이라는 대의와 마찰을 일으킬 때 벌어지는 비극을 짚는다. 의학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도 전염병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장티푸스 메리 사건으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전염병에 대해 얼마나 많이 깨우쳤을까.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은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글 : 권예슬 기자

과학동아 2018년 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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