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순위를 매겼는지 궁금해, 블룸버그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7개 분야에서 점수를 매긴 뒤 종합점수가 가장 높은 나라를 순서대로 줄 세우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특허 출원에서 세계 1위, 제조업 부가가치 및 연구개발 투자 부문에서 세계 2위를 기록해 ‘종합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왜 블룸버그를 비롯한 세계적인 통신사와 기관들은 세계 각국의 혁신 순위를 매겨 비교할까. 그 이유는 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경제 성장의 사실상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수확체감 법칙이 지배하던 농업사회
1750년 이전까지 영국을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전체 인구의 85% 이상을 농민이 차지하고 있었다. 농업은 공업과 달리 생산 과정을 자연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하고 생산 과정도 길다. 이로 인해 실험 등을 통해 기술적인 인과 관계를 알아내거나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게 어려워, 기술 진보와 생산성 증가의 속도가 공업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술 진보의 속도가 느린 농업사회는 생산량의 증가 속도가 인구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른 바 ‘맬서스 함정(Malthusian trap)’에 빠지기 쉽다. 맬서스 함정이란 1798년 ‘인구론’을 쓴 토머스 맬서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물론 농업사회도 쟁기 같은 새로운 도구가 도입되거나 사회 질서가 안정된다면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화학 비료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농업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수확체감’ 문제였다. 수확체감이란, 동일한 토지에 점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생산량의 증가 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열 마지기의 논을 1명이 농사지어 10가마의 쌀을 수확할 수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인구가 늘어 열 마지기의 논을 2명이 경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한 마지기의 논에서 3~4가마의 소출이 발생하니, 큰 풍년이나 흉년을 겪지 않는다면 노동력이 추가로 투입된 만큼 쌀 생산량도 늘어날 것이다. 즉 수확량은 20가마로 두 배 증가하고 1인당 수확량은 10가마로 일정하다.
이제 조건을 바꿔, 2명이 아니라 4명이 농사를 짓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4명이 투입돼 이전보다 수확량은 늘어나지만 예전처럼 1인당 10가마를 생산하기는 힘겨울 것이다. 그런데 인구 증가가 멈추지 않아 열 마지기의 논에 4명이 아니라 8명이 투입된다면? 인구 증가의 속도에 맞춰 새로운 농법이 보급되거나 혹은 쌀 수확량을 급격히 늘릴 새로운 품종이 출현하지 않는 다음에야 쌀 생산량이 급증하기는 힘들다. 결국 1인당 수확량은 6가마에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서 수확체감이라고 부른다.
결국, 토지가 한정돼 있는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인구 증가는 축복이 될 수 없었다. 역대 왕조가 약 100여 년의 전성기를 누린 뒤 농민 반란이나 외세의 침입으로 난세가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1인당 수확량의 감소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구가 곧 국력이었던 셈이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곧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하다는 것을 의미하니, 결국 중국이나 인도 같은 대국(大國)일수록 주변 국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고구려를 침략했던 수(隋)나라의 100만 대군은 광활하면서도 비옥한 중국의 토지를 대변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기술혁명이 불러온 수확체증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1840년 아편전쟁 당시, 인구가 27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소국(小國)이었던 영국이 인구가 4억 명에 이르는 청나라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이유는 바로 ‘산업혁명(Industrial Revol ution)’에 있다.
1800년을 전후해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 세계의 1인당 소득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800년을 전후해 갑자기 ‘대분기(Great Divergence)’가 발생해, 영국 등 일부 국가의 소득이 끝없이 늘어나는 혁명적인 사건이 출현했다. 특히 증기기관과 제철 기술의 혁신은 이역만리 떨어진 곳으로 군대를 보내고, 더 나아가 수십, 아니 수백 배의 상대를 무찌를 수 있는 힘을 불어넣었다(아래 그래프).
대분기는 어떻게, 왜 발생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기술의 발달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포드의 T형 자동차 사례다. 1909년 T형 자동차가 처음 출시됐을 때 연간 생산량은 1만 대에 불과했고, 판매 가격은 825달러에 달했다. 참고로 2017년 물가로 환산하면 2만2500달러(약 2415만 원)에 해당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드가 생산한 T형 자동차는 투박제한 외관과 비싼 가격 때문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포드가 1910년 설립한 새로운 공장 ‘하이랜드 파크’에 컨베이어벨트라는 혁신적인 공정 기술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포드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포드는 시카고의 도축 공장을 방문한 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도축 공장에서는 가축을 갈고리에 걸어 늘어뜨린 다음 이동시켜, 수 십 명의 근로자가 자기가 맡은 부위만 전문적으로 고기를 발라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자동차는 무겁기 때문에 갈고리에 걸 수는 없었고, 대신 포드는 큰 벨트 위에 자동차의 차대를 놓는 식으로 공정 기술을 수정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향상됐다. 1909년 1만 대에 불과했던 생산량은 1918년 66만4000대로 늘어났고, 1922년에는 130만 대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노동력의 투입량이 일정한데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학습곡선’을 통해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과학동아 1월호 ‘아이폰X의 원가는 얼마일까’ 참조). 근로자들이 작업에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 필요 없는 생산 공정을 생략하면서, 생산 차질이 발생하는 공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점 1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은 농업사회의 ‘수확체감’과 반대된다는 의미로 ‘수확체증’ 현상이라고 부른다. 근로자 1인당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반대로 자동차 1대에 투입되는 원가는 떨어진다.
결국 포드의 T형 자동차 가격은 1909년 825달러에서 1914년 440달러로 인하되고, 1922년에는 319달러까지 떨어졌다. 2017년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4662달러(약 501만 원)에 불과하다. 단 13년 만에 차 값이 60% 인하되고,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덕분에 불량률까지 떨어지니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거대한 소비 시장의 형성을 목격한 자동차 업계의 경쟁자 쉐보레는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수용하는 한편, 단일 모델만 판매하는 포드 자동차의 약점을 공략해 다양한 모델을 판매함으로써 결국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포드의 기술 혁신이 자동차 업계, 아니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바꿔놨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홍춘욱_hong8706@naver.com
1993년 12월부터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환율의 미래’ ‘인구와 투자의 미래’ 등 다양한 책을 통해 경제 지식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며, 블로그(blog.naver.com/hong8706)를 통해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