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스티커처럼 붙였다 떼기만 하면 됩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을 뜻하는 ‘DGIST’라는 단어가 금색으로 새겨진 흰색 물질이 적갈색 필름에 붙어 있다. 흰색 물질은 한지 같은 질감에 두께는 훨씬 얇아서, 불투명한데도 뒷면에 있는 물체의 윤곽이 보일 정도다. 가로가 약 4cm, 세로는 약 2cm인 직사각형이다. 손등에 물을 묻히고 필름을 붙였다 떼니 ‘DGIST’라는 글자와 흰 물질만 피부에 달라붙었다. 이내 흰색은 사라지고 문구만 남았다. 이성원 신물질과학전공 교수팀이 개발한 ‘숨 쉬는 전자피부’다.
금 나노섬유 엮어 전자피부 개발
이 교수는 전자피부 전문가다. 현재는 전자피부 수요가 많지 않지만 웨어러블 기기 시장이 발전하면서 어린이와 노인 등 노약자들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데 전자피부가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 등에게 전자피부를 부착하면 뇌졸중과 심근경색 등 위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전자피부는 필름 형태로 피부에 붙이기 때문에 공기와 땀이 통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끼고, 피부에 염증이 생길 염려도 있다.
이 교수팀은 전자피부의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상용화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고민 끝에 피부를 촘촘한 그물망 형태로 구현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고분자물질을 지름이 약 30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인 섬유가닥으로 뽑은 뒤 그물망 모양으로 엮고, 그 위에 금 입자를 코팅하는 방식이다.
금 입자를 코팅하는 이유는 측정한 생체 신호를 흘려보내기 위해서다. 흰색 한지처럼 보인 부분이 고분자물질이다. 고분자물질은 금 나노섬유로, 피부의 뼈대 역할을 한다. 이 교수는 “고분자물질은 피부에 붙은 뒤 물에 녹아서 사라지고, 금 나노섬유만 남아서 측정한 생체 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피부는 신체 어디에나 붙일 수 있고, 관절이 구부러지면 자연스럽게 휘어 신호 전달에도 문제가 없다. 전자피부에 온도와 압력, 터치 센서를 붙이고 측정한 결과 신호가 잘 전달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인 18명을 대상으로 전자피부를 붙인 뒤 피부 자극을 측정한 결과도 좋았다. 일주일간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피부와 기존의 전자피부를 붙이고 생활하게 한 뒤, 피부과에서 피부 자극 정도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피부를 착용한 사람들 중에서는 부착 부위에 피부 트러블이 발생한 경우가 없었다. 반면 필름 재질의 전자피부에서는 2명(11.1%), 실리콘 고무 재질의 전자피부에서는 5명(27.7%)에게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 이 교수팀은 이 내용을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2017년 7월 18일자에 발표했다.
현재 연구팀은 전자피부에 붙여서 체온 변화를 측정할 얇고 작은 온도센서를 개발 중이다. 자석과 자기 센서 사이에 고분자물질을 넣어서 샌드위치 구조로 만들고, 온도에 따라 고분자물질의 부피가 변하는 현상을 이용해 그에 따른 자기장 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전례가 없는 방식이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정우성 석사과정 연구원은 최근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고분자물질이 부피가 변하는 과정에서 고정되지 않으면 측정값에 오류가 생기는데, 코팅으로 고분자물질을 고정시키면서도 부피가 잘 변하게 한 것이다. 정 연구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던 끝에 필름을 3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두께로 코팅하면 가장 효율이 좋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연구가 성공하면 초소형 온도 센서를 장착한 숨 쉬는 전자피부가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