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과학자에게 논문은 지식을 얻거나, 연구 방향을 잡거나, 아이디어를 얻는 보물창고와도 같습니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관련 분야의 논문을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하는 박사과정 연구원과 최신 연구 동향에 밝을 수밖에 없는 박사후연구원이 직접 해당 분야의 기념비적인 논문을 선정하고 그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언니오빠 논문 연구소’를 이번 호부터 연재합니다.
‘나는 이성적인 사고가 발달한 사람이야’ ‘나는 감정이 앞서는 편이야’ 등과 같이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일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걱정이나 두려움 등 감정을 많이 표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성적으로 해결 방법부터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과거에는 인간의 사고를 이성과 감성으로 나눠 이성은 머리(뇌)에서, 감성은 심장에서 온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뇌를 다친 사람들을 통해 사람의 이성과 감성, 나아가 생존을 위한 수많은 행동들이 뇌의 특화된 영역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두엽 손상되니 다혈질로 바뀌어
1848년 9월, 미국 버몬트 주의 한 공사장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철도 공사 현장 감독이었던 피니어스 게이지는 큰 바위를 제거하기 위해 바위에 난 구멍에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쇠막대로 구멍 표면을 고르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고, 그 여파로 쇠막대가 게이지의 왼쪽 뺨에서 오른쪽 머리 윗부분을 관통했습니다. 그는 두개골의 상당부분과 왼쪽 대뇌 전두엽 일부를 다쳤고, 머리에는 지름 9cm가 넘는 큰 구멍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해 일상생활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다니던 철도회사에서 해고됐고, 다른 어떤 직장에서도 오래 일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친절했던 그가 다혈질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대뇌 전두엽 손상이 성격과 행동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H. M’이라는 이니셜로 더 유명한 헨리 몰레이슨은 어릴 때부터 심한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으로 고통을 받다가, 1953년 치료를 위해 내측측두엽과 해마 등 뇌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뒤 뇌전증은 호전됐지만, 그는 새로운 일을 30초만 기억할 수 있는 기억장애를 앓아야 했습니다. 장기기억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1957년 말부터 그가 사망한 2008년까지 그의 행동과 인지 능력은 뇌과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연구됐고, 뇌 영역과 기억 기능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뇌과학자들은 이런 사례를 통해 ‘뇌의 영역별 역할을 실험으로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동물 뇌의 특정 부위를 절제해 행동 변화를 관찰 하거나, 전기 자극을 통해 뇌 영역을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확하게 목표하는 영역만을 활성화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정 약물을 주입해 뇌 영역을 자극하거나 억제하는 방법도 사용했지만, 이 역시 약물이 체내에 흡수되는 정도를 조절하기 어렵고, 약물에 반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빛으로 이온채널 조절
그러던 중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독일막스플랑크연구소 디터 외스터헬트(Dieter öesterhelt) 세포막 생화학 연구그룹장은 1971년 ‘할로박테리움 할로비움(Halobacterium halobium)’이라는 고세균의 세포막에서 가시광선을 받으면 빠르게 활성화되는 이온채널을 발견했습니다.doi:10.1038/newbio233149a0 세포막에 있는 이온채널은 세포 내부의 이온 농도를 조절하고, 이 농도에 따라 각 세포들은 또 다른 세포에게 신호를 전달합니다.
이 발견은 빛으로 이온 채널의 활성을 조절해 결과적으로 신호 전달을 제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보여준 연구입니다. 뇌를 구성하는 세포 단위인 뉴런의 세포막에도 이온채널이 존재합니다. 만약 뉴런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채널을 빛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아주 적은 노력으로 뇌의 기능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죠.
기존 뇌 자극법에 한계를 느낀 연구자들은 빛으로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법이 실제로 뉴런 연구에 도입되기까지는 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여러 화학물질을 이용해 포유류의 뉴런에 맞는 이온채널을 제작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계속되는 실패로 낙담하고 있던 그때,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포유류에 광(光)유전학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존의 조류(藻類)에서 발견된 이온채널을 바이러스에 넣어 뉴런에 감염시키는 방식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2005년 드디어 빛에 반응하는 양이온 채널인 ‘채널 로돕신-2’를 포유류의 뉴런에 발현시키는 데 성공해 과학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발표했습니다.doi:10.1038/nn1525 연구팀은 빛을 이용해 ms(밀리초·1ms는 1000분의 1초)의 짧은 시간 단위로 뉴런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 논문은 약 10년간 무려 2799번이나 인용될 만큼 신경과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이 논문으로 칼 다이서로스 교수는 ‘광유전학의 창시자’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후 살아있는 동물에게 채널 로돕신-2를 도입하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연구자들은 ‘플라스미드’를 이용해 원하는 뇌 영역에 채널 로돕신-2를 발현시켰습니다. 플라스미드는 유전자 실험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유전자로, 플라스미드를 이용해 마치 레고처럼 원하는 유전자를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채널 로돕신-2의 유전자를 가진 플라스미드를 원하는 뇌 부위에 넣어, 뉴런의 세포막에 채널 로돕신-2를 발현시켰습니다. 여기에 473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의 파장을 갖는 푸른 빛을 쪼여주면 채널의 구조가 변하면서 뉴런 내부에 양이온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이죠.
이후 뇌의 활성을 유도하는 채널 로돕신과 정반대인 음이온을 유입해 뇌의 활성을 억제하는 이온채널인 ‘할로로돕신’ 역시 발견됐습니다. 연구자들은 이제 특정 뉴런을 자극했을 때와 억제했을 때 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해 뇌의 부위별 역할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수술 없이 뇌 치료 길 열려
이런 광유전학 방법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안전하게 뇌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이서로스 교수팀은 빛을 이용해 쥐 뇌의 시상 하부 영역을 활성화시켜 잠든 쥐를 깨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실제 빛을 이용해 살아있는 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광유전학 방법을 이용해 뇌의 특정 영역에 연관된 질병의 치료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쥐에서 보상회로로 알려진 복측피개영역의 도파민 뉴런을 활성화시켜 우울행동을 개선시켰고, 비만과 연관이 있는 ‘아구티-연관성 펩타이드(agouti-related peptide)’를 자극해 먹이를 먹는 행동을 유도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또 사냥행동, 공격행동, 생식행동 등 다양한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을 밝히는 데 광유전학이 사용됐습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2016년 ‘스탠퍼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신병을 이해하고 치료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며 “광유전학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광유전학을 이용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도 많은 연구를 통해 빛으로 조절이 가능한 다른 이온채널들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고, 광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뇌 영역과 신경회로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질병이나 특정 행동의 원인을 밝히고, 나아가 빛을 이용해 난치성 질병을 치료하는 미래를 위해 과학자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쉼 없이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