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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바이오 인공장기 시대, 인간 몸에 돼지 장기

 

이 같은 일은 짧게는 10여 년 사이에 현실이 될 수 있다. 심장이나 간, 대장과 소장, 췌장 등 몸속의 다양한 장기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기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몸에서 건강한 장기를 떼어 와야 한다. 적합한 도너(장기제공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끝내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2013년부터 5년간 국내에서만 7776명의 이식대기환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인공장기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 가운데 실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술은 다른 동물의 장기를 활용하는 ‘이종(異種)장기’ 분야다. 최근에는 인간의 세포를 배양해 원하는 장기를 키워내는 ‘세포 기반 인공장기’ 기술도 진전을 보이고 있어 점차 실용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가능성 높은 건 돼지
사람 몸속에 다른 동물의 장기를 넣으려면 거부반응부터 없애야 한다. 거부반응은 크게 네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우선 이식 즉시 일어나는 ‘초(超)급성 거부반응’이 있다. 장기와 혈관을 연결한 순간부터 이식한 장기가 그 자리에서 괴사해 들어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급격하게 진행된다.

 

동물 중에서 장기이식 후보 0순위로 거론되는 동물은 돼지다. 돼지는 사람과 식습관이 비슷하고 장기의 구조와 비율, 생리 특성도 유사해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에 유망한 동물로 꼽혀 왔다. 한 가지 문제는 인간과 돼지의 면역 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할 경우 세포 표면에 있는 ‘알파 1,3-갈락토오스(알파갈)’이라는 당 성분에 인체의 면역시스템이 반응하면서 돼지 장기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알파갈을 돼지 세포에 붙이는 효소를 만들지 못하도록 돼지의 유전자를 교정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초급성 거부반응을 해결했다면, 이후 며칠 사이에 ‘체액성 급성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세 번째는 온 몸의 혈관이 조금씩 망가지는 ‘혈관성 거부반응’이 수십~수백 일 사이에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이식한 장기와 인체 세포가 잘 부합하지 못해 전신에 악영향을 미치는 ‘세포성 거부반응’이나 ‘만성 거부반응’이 있는데, 이는 장기이식을 하고 나서 수년 뒤에도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생명체의 유전자 일부를 자유롭게 잘라낼 수 있는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의 등장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각종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유전자는 한 종류가 여러 기능을 갖는 경우가 많아 무턱대고 편집해 버리지는 않는다. 그보다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돼지에게 추가로 끼워 넣는 경우가 많다. 현재 급성 거부반응은 인간의 유전자(hCD45, hCD55, hCD59, hsCR1) 가운데 하나를, 혈관성 거부반응은 ‘hCD39’라는 유전자를 넣어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돼지는 몸무게가 300~400kg에 달한다.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려면 몸무게 60kg 정도로 작게 개량한 ‘미니돼지’를 이용해야 한다.

 

 

 

이정웅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신약중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초급성 거부반응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생명에 위협을 주는 만큼 관련 유전자를 완전히 녹아웃(제거)한다”며 “그 외에는 적합한 인간 유전자를 찾아 돼지의 유전자에 끼워 넣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원숭이나 고릴라 같은 영장류가 돼지보다 이종장기 개발에는 훨씬 유리하다. 가령 돼지 대신 고릴라나 오랑우탄의 장기를 쓴다면 초급성 거부반응은 생기지 않는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알파갈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돼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임신 기간이 100일 정도로 짧고, 수개월만 기르면 이식에 충분한 크기로 장기가 자라나는 점 등이 장기 생산에 유리하다. 장기이식에 적합하도록 형질을 전환한 돼지의 가격이 실험용 영장류에 비해 10배 이상 싼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돼지 각막, 췌도 이식 임상 돌입
최근 과학자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인공장기의 이식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팀은 2016년 4월 형질전환 돼지의 심장을 개코원숭이에 이식하는 데 성공해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원숭이는 수술 뒤 약 3년간 생존했다.

 

같은 해 11월 국내 연구진도 비슷한 성과를 냈다. 건국대와 국립축산과학원 공동연구팀이 알파갈에 관련된 유전자를 제거하고 2차 급성 면역거부반응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끼워 넣은 형질전환돼지 ‘믿음이’를 개발한 뒤, 믿음이의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해 51일간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내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016년 이식수술에 쓸 수 있는 각막 조직을 미니돼지에서 얻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각막, 피부, 인대 등 인체 내 조직과 췌도 등의 내분비기관 일부가 대형 장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면역거부반응이 매우 낮다는 점에 착안해 연구를 시작했다. 돼지의 형질을 전환하는 대신 감염을 없애기 위해 깨끗한 상태에서 키운 ‘무균돼지’에서 각막을 얻은 뒤 이를 영장류에 이식해 6마리 모두 6개월 이상 시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도 2016년 3월 돼지의 각막을 14세 소년에게 이식하고 일주일 만에 시력을 일부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각막 상피의 일부만 이식한 것으로 각막 전층을 모두 이식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의 기술이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사업단은 올해 말 사람을 대상으로 각막 전체를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업단은 췌도 이식 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췌도 이식은 미국과 뉴질랜드, 중국, 일본 등에서 시험 중인데, 주로 면역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췌도를 캡슐로 싸서 수술한다. 이 방법은 수년 내 캡슐이 수명이 다하면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 사업단은 2016년 캡슐을 쓰지 않아도 시술이 가능한 췌도 이식법을 개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지침에 따르면 캡슐 없이 돼지 췌도를 원숭이에 이식해 8마리 중 5마리가 6개월 이상 생존해야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있다. 사업단은 이 조건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충족하고 현재 임상을 준비 중이다.

 

 

3D프린터로 장기 만드는 시대 올까
이종장기는 이식용 장기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여전히 의학적으로 ‘완벽한 기술’은 아니다. 면역거부반응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지만 완전히 없애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현재로서는 인체 장기를 확보해 이식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을 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완벽한 인공장기’는 개발이 어려운 것일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세포 기반 인공장기 기술이다. 이 방법은 인체의 어느 기관으로든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를 이용한다. 환자 몸에서 뽑아낸 혈액이나 피부세포 등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얻어낸 뒤, 이것을 필요한 장기나 세포로 다시 배양해 장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최근 ‘오가노이드(organoid)’ 연구에서 실마리가 나왔다. 오가노이드는 실험용으로 배양하는 초소형 생체기관으로, 실제 장기와 기능이 흡사한 ‘장기유사체’다. 오가노이드 연구자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 세포, 위 세포 등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세포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장기의 형태를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 세포를 배양했더니 위와 비슷하게 성장한 것이다.

 

실제로 다카베 다카노리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2013년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간의 간 세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내피세포 등과 섞어 간 싹(liver buds)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간 싹은 비록 작은 콩알만 한 크기에 불과했지만, 다카베 교수는 이 싹을 동물의 병든 간 주변에 이식하면 혈관이 연결되면서 실제로 간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용 쥐를 이용해 증명했다.

 

‘바이오 프린팅’ 기술도 완벽한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는 후보 기술로 꼽힌다. 3D프린터로 살아있는 세포를 원하는 형태로 찍어 장기 모습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비스연구소(Wyss Institute)는 2016년 3D프린터를 이용해 심장 조직을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의 신준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3D프린팅은 장기의 형태를 지지하는 구조체나 뼈 등 면역거부반응이 거의 없는 조직을 만들 때 유리하다”며 “여기에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첨단 세포 배양기술을 덧붙인다면 수술에 필요한 인공장기를 가까운 시기에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제동물 연구에 사용하는 체세포 복제기술과 오가노이드 기술을 접목하면 처음부터 인체 거부반응을 완전히 없앤 형질전환 돼지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처음부터 돼지 몸속에서 사람의 줄기세포를 키워 돼지의 간이나 폐, 심장 등 모든 장기를 사람과 똑같은 유전자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동일한 두뇌를 가진 돼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때문에 이 기술은 윤리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한국생명공학 연구원에서 관리 중인 형질전환 미니돼지. 국내 언론 중 과학동아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공개했다.

 

 

김장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기술적으로는 인간과 돼지의 혼종(키메라)을 만드는 일인 만큼 논란의 소지가 크다”며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뇌 부분은 제외한다는 등 관련 규정을 철저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인공장기’ 선택과 집중 필요
인공장기 기술은 대표적인 융복합 연구 분야다. 인간과 동물의 유전적 특징을 자세하게 밝혀내는 기초과학 연구에서 시작해 생명공학, 의료공학 등 공학 분야와 두루 협력해야 실현이 가능하다. 대학과 병원, 산업계의 협력이 필수다.

 

인공장기 기술은 향후 사회적으로나 산업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신기술이 국민 생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 매년 진행하는 ‘기술영향평가’의 2017년 주제를 바이오 인공장기로 정하고 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11월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오 인공장기는 5년 내에 일부 기술이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10~15년 뒤에는 췌도, 각막 등 인체의 일부 조직이 인공장기로 대체돼 의료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됐다. 정부는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도를 확충하고, 기술 모니터링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등 인공장기 기술을 국가 혁신 전략의 일환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정상기 KISTEP 미래예측본부장은 “KISTEP 내부 분석 결과 국내 인공장기 분야 기술경쟁력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아직 부족한 수준이어서 국가 연구방향을 설정해 역량을 집결할 필요가 있다”며 “대학, 국책연구기관, 기업이 서로 협력해 성과를 바로 산업화하는 ‘이노밸리(혁신지역)’ 형태의 지원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 기획

    [공동기획]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 기타

    [일러스트] 현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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