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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우리 집 불청객, 바퀴벌레


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사는 곤충인데, 교통수단과 무역의 발달로 전세계에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약 10종류가 있다. 이 중 산바퀴(Blattella nipponica)와 경도바퀴(Asiablatta kyotensis)는 주로 야외에서 산다. 그래서 집 안에서 발견되더라도 먹이를 찾아 우연히 들어온 것이므로, 번식할까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독일바퀴(Blattella germanica)와 일본바퀴(Periplaneta japonica), 미국바퀴(이질바퀴,Periplaneta americana), 먹바퀴(Periplaneta fuliginosa)다. 이 바퀴벌레들은 집 안에 들어왔다가 온도와 습도, 빛, 청결 상태 등 조건이 맞으면 자리를 잡고 알을 낳고 산다. 그래서 어쩌다가 한 마리를 발견했다면 ‘지나가는 바퀴’일 수 있으니 잡으면 되지만, 같은 종이 여러 번 발견될 경우에는 이미 동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내에서 사는 바퀴벌레의 대부분은 독일바퀴다(약 83%).


극혐 of 극혐인 밤의 불청객

쥐의 꼬리처럼 바퀴벌레의 기다란 더듬이는 ‘극혐’의 대명사다. 납작하고 반짝이는 등도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뒤집어져서 온 다리로 하늘을 향해 발길질하는 모습도 영 불쾌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빼앗겨 불평이 많은 것은 오히려 바퀴벌레 쪽이다. 자기들만 보면 소리 지르며 온갖 것을 던져대니, 바퀴벌레 입장에서는 사람만큼 불쾌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바퀴벌레는 사람보다도 훨씬 오래 전, 약 3억 년 전 고생대 때 나타난 생물이다. 당시의 화석과 비교해 봐도 생김새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끔찍한 모습이 바퀴벌레에게는 수억 년간 고수해온 ‘클래식 패션’인 셈이다. 문제는 바퀴벌레의 패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바퀴벌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바퀴벌레가 전파할 수 있는 병원체는 100종류가 넘는다.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뱃속에 있는 것을 토해냄으로써 음식물을 오염시키거나, 여기저기 허물을 벗어 놓는다. 허물이나 사체가 바짝 마르면서 부서져 먼지처럼 날릴 수 있다. 이런 미세입자가 피부에 닿거나 공기를 타고 호흡기관으로 들어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바퀴벌레의 배설물 속에 들어 있는 물질도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정도가 다르다. 특히 천식이나 아토피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사람에게 해롭다(doi:10.1146/annurev.ento.52.110405.091313). 아직까지 바퀴벌레가 어느 수준으로 전염병 전파에 관여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없으므로,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해 바퀴벌레가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SOS! 바퀴벌레 물리치는 법!

바퀴벌레는 사람의 심리를 잘 아는 모양인지, 대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책이든 신문이든 찾는동안 빠르게 달아나 숨기도 하고, 운 좋게 무기를 빨리 찾았다 하더라도 알집이 바깥으로 튀어나올까봐 섣불리 때려잡을 수가 없다. 집 안에 과연 몇 마리나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바퀴벌레를 퇴치하는 법을 국내 해충퇴치 전문업체인 ‘세스코’에 물어봤다.


바퀴벌레를 때려잡으면 정말로 알이 여기저기 퍼질까?
그럴 수 있다. 또 암컷 바퀴벌레는 알집을 복부 끝에달고 다니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이것을 떼어 안전한 곳에 붙여 놓는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뿌리는 살충제로 즉각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공기 중에 흩어지기 때문에 많이 뿌리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

살충제를 집 안 어느 곳에 놔야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을까?
부엌이나 주방의 벽 틈, 찬장 뒤와 서랍 밑면, 히터 뒤, 싱크대 아래 등 바퀴벌레가 살 수 있는 장소와 지나다닐 만한 동선에 놔야 한다. 바퀴벌레는 식탐이 강하다!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이전에 먹었던 것을 토하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 다른 바퀴벌레가 뱉어놓은 토사물이나 다른 바퀴벌레의 사체도 먹는다. 그래서 살충제를 잘 놓는 것만으로도 바퀴벌레 떼를 소탕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만 계속 놓을 경우, 다음 세대 바퀴벌레는 이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 약 140일 주기로 다른 종류의 살충제를 놓아야 효과적이다.

세스코에는 바퀴벌레마다 ‘죽음의 식단’이 있다는데?
살충제를 조제할 때 바퀴벌레가 이 장소에서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식성이나 체질을 고려한다. 집에서는 주로 밥풀을 먹고 살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주요하게 넣는다. 중식당에 사는 것에는 기름기, 정육점에 사는 것에는 살코기, 일식당에 사는 것에는 생선을 넣어 약을 조제한다. 성체는 많은 양을 자주 먹기 때문에 저단백질, 알을 밴 암컷과 유충은 고단백질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고려한다. 한 가지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입맛이 까다롭기 때문에 가루나 시럽, 잼, 젤리 등 다양한 형태로도 놓는다.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음식이나 음식물찌꺼기, 선반에 있는 조미료통 등을 잘 관리해 먹이를 찾을 수 없게 하고, 구석구석 꼼꼼하게 자주 청소해 바퀴벌레의 은신처를 없애야 한다. 미리 소독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바깥에서 들어오는 여러 종류의 짐(세탁물, 여행가방, 택배박스 등)에 붙어서 들어올 수도 있으므로 잘 살펴야 한다. 하수구의 구멍이나 문을 닫았을 때 틈이 너무 크다면 막아두는 것도 좋다.

 

생존부터 로봇까지 매력적인 연구대상

바퀴벌레는 한 번의 교미만으로도 일생동안 알을 낳을 수 있다. 알을 비교적 짧은 주기로 여러 개 낳는데다, 암컷이 알집을 안전한 곳에 숨겨두는 본능을 가졌다. 빙하기가 들이닥치고, 지구에 소행성이 부딪혀도 살아남은 비결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보다 훨씬 놀랍고 소름끼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컷 없이 암컷끼리도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이 한 공간에 암컷 세 마리를 뒀더니 약 열흘 만에 미수정란을 이용해 자손을 번식했다. 바퀴벌레가 단성생식(암수 수정 없이 번식하는 방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그 후 열다섯 마리를 함께 두는 실험을 했더니, 이런 방식으로 3년 동안이나 무리를 유지했다.

이외에도 과학자들은 바퀴벌레가 먹이를 먹거나 공유하는 방식, 분비물에 페로몬을 넣어 동료를 부르
는 방식 등을 연구해 바퀴벌레를 실내에서 효과적으로 내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3억 년 넘게 멸종되지 않았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연구한 뒤 이를 역이용해 퇴치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이와 반대로 다른 곤충에 비해 발이 빠르고, 몸을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는 특성을 연구해 로봇으로 개발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자들에게는 이미 바퀴벌레가 혐오가 아닌 호기심의 대상인 셈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팀은 바퀴벌레를 원격조종할 수 있는 스마트칩을 만들었다. 이 칩을 등에 단 바퀴벌레는 연구팀이 스마트폰 앱으로 조종하는 대로 방향을 바꿔 움직인다. 쉽게 말해 살아 있는 바퀴벌레를 이용한 ‘좀비 로봇’이다.

아예 바퀴벌레의 특기를 흉내 낸 로봇도 있다. 러시아 임마누엘칸트발틱연방대 연구팀은 바퀴벌레의 재빠른 발을 흉내 내 로봇으로 만들었다. 몸길이는 약 10cm이며 1초당 약 30cm씩 움직인다. 내비게이션과 센서가 달려 있어서 길을 찾아가거나 장애물을 피할 수 있으며, 원격조종도 가능하다. 지난해 2월, 미국 UC버클리 폴리페달 생체역학연구실 로버트 풀 교수와 하버드대 로봇공학자 코식 자야람 교수팀이 개발한 로봇은 바퀴벌레가 몸을 원래보다 20% 가량으로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는 특징에 착안했다. 이 로봇은 외골격이 마치 트럼프카드를 여러 장 펼친 듯한 모양이다. 판들이 서로 겹쳐 지면서 몸을 절반가량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연구팀들은 산사태나 지진, 또는 대형 화재처럼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재난 현장에 바퀴벌레 로봇을 들여보내면 생존자가 얼마나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이 정보를 사람을 구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인 바퀴벌레가 인류에게 지구
에 3억 년 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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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바퀴벌레, 기생충 - 동거생물의 이유있는 동거​
Part 1. 우리 집 불청객, 바퀴벌레​
Part 2. 몸 속 생태계의 주인 - 기생충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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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기타

    [​기획·진행] 현수랑 기자, 이정아 기자
  • 일러스트

    송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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