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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차세대 가속기 과학자 키울 겁니다”

일본 KEK의 ATF 가속기 빔라인. 김은산 교수팀이 개발한 빔 모니터 장치가 설치돼 있다.

세종시에 있는 고려대 세종캠퍼스에는 전세계에 하나뿐인 학과가 있다. ‘가속기’라는 거대 장치를 개발하는 연구자 및 기술자를 길러내는 가속기과학과다. 그곳에서 미래의 가속기 전문가들을 키우고 있는 김은산 교수를 만나 봤다.


“대중은
새로운 입자를 발견한 것처럼 화려한 성과에만 주목하지만, 과학계에서는 그 밑바탕이 되는 가속기를 만든 학자들을 노벨상을 수여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자 역시 ‘가속기 과학자’들에 대해 무지했다. 힉스 입자나 새로운 원소 발견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썼지만, 가속기 자체가 연구 대상인 과학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5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가속기콘퍼런스(IPAC 2016)에 전세계에서 13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가속기과학의 위상을 실감했다. 실제 가속기 연구소에는 가속기를 이용해서 특정 연구를 하는 과학자보다, 가속기를 설계하고 운용하며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을 맡은 연구자들이 더 많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속기 연구시설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구성원도 가속기 연구원과 기술자가 인력의 85~90%를 차지할 정도다.

가속기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뚜렷하게 정립돼 있는 것은 아니다. 1929년 미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렌스(1939년 노벨상 수상)가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소형 가속기를 발명한 이후, 물리학자와 전자, 기계공학자 등이 ‘맨땅에 헤딩하듯’ 가속기를 만들어 왔다. 그들이 1세대 가속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만든 초기 가속기의 활용처는 주로 원자핵물리학 분야였다. 양성자 등 전하를 띤 입자를 빠르게 가속시켜 원자핵과 충돌시킨 뒤 거기서 나타나는 반응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 뒤 과학자들은 의학과 산업분야로 활용분야를 넓혔다. 현재 전세계에 약 3만 개의 가속기가 설치돼 있는데, 그중 44%는 의료용 방사선치료에 쓰이며, 약 50%는 재료과학과 산업분야에서 특정 이온을 재료에 주입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에 쓰는 가속기는 오히려 소수에 불과하다.

가속기를 연구하는 또다른 과학자들은 물리학과에 있으며 가속기 자체를 연구한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코넬대, 미시간대 등의 물리학과가 가속기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찾거나 기능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를 가속기에 직접 적용해 보는 식이다.
고려대 가속기과학과는 2014년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됐다. 김 교수는 “가속기 응용과 가속기과학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를 기르는 것이 가속기과학과의 목표”라고 말했다. 차세대 가속기 과학자인 셈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역학과 전자기학, 양자역학 등 물리학의 핵심 과목과 함께 빔역학, 진공, 제어, 고주파, 초전도, 검출기 등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친다.

특히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만들고 있는 중이온가속기의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에 재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기회도 준다. 현재 십여 명의 대학원생이 장치 개발과 시험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 올해 말까지 가속기 실험동을 교내에 구축한 뒤 내년부터 IBS 연구진과 함께 실험할 예정이다.
 
김은산 고려대 가속기과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형 중이온가속기와 국제선형가속기 설계 및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차세대 가속기 과학자 기르는 1세대 베테랑

김은산 교수는 1세대 가속기 과학자다. 국내에서는 교과서로만 가속기를 배울 수 있었던 시절,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석사과정에서 원자핵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KEK)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가속기와 인연을 맺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평생을 줄곧 가속기만 연구해 왔다.

그는 언젠가 모국에 가속기가 도입될 날을 꿈꾸며 연구 경력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일본에서는 전자와 양전자를 충돌시키는 가속기에서 빔의 위치를 측정하고 운동 방향을 분석하고 제어하는 장치 등을 설계했다. 이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로 자리를 옮겨 뮤온가속기와 중성미자가속기를 개발하고 빔 성능을 향상시키는 연구에 참여했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포항가속기연구소의 방사광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중이온가속기 설계 및 개발에 힘을 더했다. 현재 국제 공동으로 건설을 추진 중인 국제선형가속기(ILC) 개발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비교적 생소한 분야인 가속기과학 분야에서 차세대 연구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국내외 연구소와 기업체에 자리 잡도록 돕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국내 가속기 시장만 놓고 봤을 때, 가속기 과학자에 대한 수요가 아주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중이온가속기와 포항방사광가속기, 경주의 양성자가속기, 기장의 중입자가속기, 환자 치료용 가속기 등을 개발하는 업체와 해당 연구소 정도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길은 넓다. 현재 일본과 중국에서 대형 가속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산업용과 의료용 가속기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가속기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가속기를 배운 후배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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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세종 = 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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