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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인간의 아바타, 실험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2000년 이상 인간의 ‘아바타’ 역할을 해 온 실험동물. 동물실험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1979년부터 ‘세계실험동물의 날’을 정하고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리고 최근 과학자들은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을 도구로 실험동물의 해방을 꿈꾸고 있다.

1903년 2월 2일.
영국의 저명한 생리학자 윌리엄 베일리스는 런던대 의대에서 수업 도중 살아있는 개를 해부했다. 그는 1년 전 처음으로 호르몬을 발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과학자였다. 하지만 강의실에 있던 두 명의 스웨덴 학생은 베일리스가 제대로 마취하지 않고 해부해 개에게 극심한 고통을 줬다며 국립생체해부반대협회(NAS)에 제보했고, 이는 신문 보도로 이어졌다.

비난이 빗발치자 베일리스 교수는 정상적으로 마취를 했다고 주장하며 NAS의 스티븐 콜러릿지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초유의 법정다툼으로 이어진 ‘갈색 개 사건’은 결국 베일리스 교수의 승리로 끝났지만, 동물실험에 대한 찬반 논란은 영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1906년에는 동물보호단체가 갈색 개 동상을 설치하면서, 동물실험을 옹호하는 측과 반대측이 동상을 둘러싸고 4년 동안 치열한 갈등을 벌였다. 기원전 4세기부터 약 2300년간 별다른 반발 없이 진행돼 온 동물실험이 처음으로 난관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중단하기에는 동물실험이 주는 유익이 너무나 커 보였다. 동물실험은 생명체가 작동하는 원리와 질병의 발생 원리를 밝히고,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한 화학물질의 효과와 독성을 확인하는 데 쓰인다. 미용을 위해 사용하는 화장품 개발 과정에도 동물실험을 하면서, 2014년 미국에서만 연간 1억 마리 이상이 동원됐을 정도로 동물실험이 많아졌다. 2012년 전세계 시장규모만 약 50억 달러(5조7565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동물실험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탈리도마이드는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이 1957년 출시한 임산부 입덧 방지약의 주성분이다. 당시 이 약을 먹은 여성들은 팔, 다리뼈가 없거나 극단적으로 짧아 손발이 몸통에 붙어 있는 기형아를 낳았다. 약을 출시하기 전 쥐와 개,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뒤늦게 인간과 좀 더 유사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기형아를 낳는 결과가 나왔고, 약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이미 1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난 뒤였다. 반대로 백혈병 치료제로 잘 알려진 ‘글리백’은 쥐에게서는 독성을 보였지만 원숭이와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는 효과가 나타났다. 아스피린과 페니실린 등 많은 의약품들이 인간과 다른 동물에게서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현재 학계에서는 동물실험을 통한 독성 확인 방법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세계에서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동물실험에서는 독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임상시험 과정에서 탈락한 비율은 94%에 달했다. 유럽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13년부터는 전면 금지했다. 우리나라 국회도 지난해 12월 31일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올해 2월 3일부터 국내에서 시판되는 모든 화장품은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토끼 대신 사람 세포 배양해 시험

동물실험이 전면 금지된 현재 화장품 독성 평가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만난 장원희 연구원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인정한 대체시험법에 따라 동물실험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OECD는 1980년대부터 회원국에 권고하는 화학물질 독성 시험 기준을 마련하는 등 동물들의 희생과 고통을 경감시키는 방향을 채택해 왔다.

OECD가 인정하는 모든 동물 대체시험의 기준은 ‘3R’로 요약할 수 있다. 1959년 영국의 동물학자 윌리엄 러셀과 미생물학자 렉스 버치가 주장한 3R 개념은 동물 사용을 피하는 방법으로 대체(Replacement)하고, 불가피하다면 사용하는 동물 수를 줄이며(Reduction), 고통을 최대한 완화(Refinement)하는 방법으로 실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3R은 불가피하게 동물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인정하고 있지만, 화장품 개발 과정에 필요한 시험은 동물을 쓰지 않는 방법으로 대부분 대체됐다. 장 연구원은 “자외선차단제나 색소, 보존제처럼 전신으로 퍼지는 독성을 평가해야 하는 물질들은 아직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없다”면서도 “신제품을 개발할 때 새로운 화학물질을 쓰기보다 검증된 기존 물질들을 조합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추가로)동물실험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화장품 분야에서 진행됐던 동물실험은 15가지 이상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들을 대체하는 시험법 역시 다양하지만, 많은 시험법의 공통적인 특징은 인간의 세포와 조직을 적극적으로 쓴다는 점이다. 피부세포와 각막세포, 폐세포 등을 사용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피부와 각막 등의 세포를 배양해 인공 조직을 만들어 실험한다.

예를 들어 눈에 들어가기 쉬운 마스카라와 라이너, 클렌징 워터, 샴푸 등을 개발할 때는 눈에 대한 독성을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에는 흰색 토끼의 눈에 화학물질을 넣고 눈 혈관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각막세포를 배양한 뒤 다양한 농도로 희석한 원료물질에 노출시켜 세포가 죽는 양이나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는 정도를 확인한다. 사이토카인은 면역세포가 활성화될 때 분비되는 물질로, 이것의 분비는 해당 화학물질이 인체에 해롭다는 뜻이다. 장 연구원은 “인간 세포를 이용하는 방식은 동물실험에 비해 인체와 유사하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한 번에 다양한 물질을 적용할 수 있어 시험이 쉽고 효율적일 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을 다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연구자의 감정적인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물고기도 고통을 느낄까

하지만 화장품과 달리 의학, 생물학, 신약개발 분야의 동물실험은 쉽게 대체되지 못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물질을 쓰는 경우도 많고, 독성 여부와 함께 기대하는 효과가 있는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의 동물실험은 되도록 고등동물이 아닌 하등동물을 이용하거나, 연구에 사용하는 동물의 개체수를 줄이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의학 및 생물학 연구 기관인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더 이상 침팬지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지난해 11월 18일 발표했다. 영국과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도 이미 영장류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금지했다.

현재 동물실험에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은 쥐를 비롯한 설치류다. 국내 동물실험의 91.4%(2014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사람과의 유전적인 유사성이 80% 정도로 높은 편이며, 유전자를 조작해 치매, 우울증, 암 등 다양한 질병 모델을 만들어 시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지체계를 갖고 있으며 고통을 느끼는 설치류보다는 더 하등한 척추동물인 어류가 새로운 실험동물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브라피쉬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장기(심장, 간, 췌장, 신장, 흉선)를 가지고 있는데다, 70% 이상의 유전자가 인간과 동일하다. 설치류에서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들던 질병모델을 제브라피쉬에서도 대부분 구현할 수 있다. 게다가 자궁 안에서 자라는 실험쥐는 발생단계를 볼 수 없지만 제브라피쉬는 알이 투명해서 배아가 자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까지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박재학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은 선박 도료에 포함된 주석 성분(Trimethyltin chloride)을 섭취한 제브라피쉬가 낳은 알을 관찰한 결과, 기형 개체가 많다는 것과 신경 발달이 억제돼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신경독성학 및 기형학’ 2015년 12월 10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dx.doi.org/10.1016/j.ntt.2015.12.003). 박 교수는 “어류는 고등동물에 비해 인지기능이나 감각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대체 실험동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제브라피쉬를 이용한 동물실험은 제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침팬지나 설치류뿐 아니라 제브라피쉬를 이용한 동물실험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어류도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김혜란 이사는 “중추신경이 있는 동물은 모두 고통을 느낀다는 과학적 견해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어류가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생물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중추신경이 있기 때문에 자극이 뇌로 전달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처럼 그 자극이 감정적인 고통으로 처리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반사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브라질 상파울루대 의대 카를라 파트리치아 베조 올커스교수팀은 레포리누스(Leporinus macrocephalus )라는 어종으로 실험한 결과 3~5분 동안 가뒀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혈장 농도가 높아졌다고 미국 ‘공공과학도서관회보(PLOS ONE)’ 2013년 7월 30일자에 발표했다. 무지개송어와 대서양 대구 등 다양한 종류의 어류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유해한 자극을 줬을 때 아가미호흡이 빨라지는 등의 반응이 나타났다.

또 영국 리버풀대 통합생물학연구소 린 스네던 박사팀은 어류에게 준 유해 자극(통증을 가정한 것)이 선천적인 두려움 반응을 억제할 정도로 신경을 집중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통증학저널’ 2003년 10월호에 게재하기도 했다(dx.doi.org/10.1067/S1526-5900(03)00717-X).

연구팀은 새로운 물체를 경계하는 습성이 있는 무지개송어에게 산성 물질(유해자극)을 주사했을 때는 물체를 피하고 호흡이 빨라지는 경계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통증을 완화시키는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주사하자 무지개송어는 다시 새로운 물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어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조금 더 우세한 편이지만 반대편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어류가 사람처럼 통증을 느끼기에는 신경섬유 밀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사람의 피부에 있는 신경은 83%가 ‘C그룹 신경섬유’로 채워져 있는데, 선천적으로 통증에 둔감한 사람들의 경우 이 신경섬유 밀도가 24~28%에 불과하다. 미국 와이오밍대 동물학및생리학과 제임스 로즈 명예교수는 상어와 가오리 같은 연골어류의 경우 C그룹 신경세포가 아예 없으며, 잉어나 송어 같은 경골어류도 5%에 불과해 고통을 지각하기 위한 신호전달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학술지‘어류와 어업’ 2012년 12월 20일자에서 주장했다(DOI: 10.1111/faf.12010).

연구팀은 논문에서 어류가 나타내는 반응은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마취를 하면 자극은 있지만 고통은 느끼지 못하며, 아무런 상처가 없어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고통은 자극과는 별개의 경로로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모든 어류가 모든 유해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모르핀의 경우도 어류는 다른 동물의 치사량에 해당하는 양을 투여해야 반응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동물실험과 세포실험을 각각 ‘in vivo(생체 내에서)’와 ‘in vitro(생체 외에서)’라고 부르는데 최근에는 ‘in silico(계산기 내에서)’라고 부르는, 컴퓨터를 이용한 예측기법도 주목 받고 있다.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실험이 동물보다는 사람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세포를 이용한 실험 결과가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의 화학물질DB에 등록된 물질 중에는 독성 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1억5000만 개가 넘는다. 동물이나 세포실험만으로는 어떤 물질이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을지 효과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대의 안전성평가연구소(KIT) 선임연구원은 “약을 만들 때 약효를 내는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들도 들어가는데, 그 물질 중에 발암물질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불순물’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에서 개발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비라셉트(Viracept)’는 불순물에서 1급 발암물질이 나와 퇴출당할 뻔하기도 했다. 박 연구원은 “약에 들어가는 불순물까지 모두 독성 검사를 해야 하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독성예측은 현재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먼저 QSAR라고 부르는 ‘정량적구조활성관계 분석법’은 각종 화학물질들이 가진 분자량과 녹는점, 부피, 독성 등의 고유 정보를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독성을 모르는 화학물질의 독성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또 최근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도킹 시뮬레이션 기법은 해당 화학물질이 인체에서 독성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단백질들과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는지를 계산해서 독성 여부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벤조피렌이라는 화학물질은 유전자에 결합해(위 그림), DNA 중합효소에 의한 유전자 복제에 오류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암을 유발한다.

미국의 경우 로봇 기술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함께 활용하는 독성연구 중장기 프로젝트 ‘Tox21’을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NIH) 륄리 후앙 박사팀은 컴퓨터로 화학물질의 구조를 분석해서 예측한 독성이 동물실험보다 인체 반응에 더욱 가깝다는 연구 성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1월 26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DOI: 10.1038/ncomms10425).

연구팀은 1만 가지 화학물질을 15가지 농도로 나눈 뒤 로봇을 이용해 반복해서 세포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완료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는데, 동물실험을 했다면 몇 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 결과로 나온 데이터만 5000만 개 이상이었다. 연구팀은 세포실험 결과 중 일부를 몇몇 화학물질에 대한 72가지 동물실험 결과와 비교 분석했다. 이를 위해 세포실험 결과를 이용하는 모델, 화학구조를 이용한 컴퓨터 모델, 세포실험과 컴퓨터 구조분석을 혼합한 3가지 모델을 이용해 독성을 예측했다. 이들 72가지 시험은 이미 동물실험 결과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독성에 대한 정보가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예측 결과들을 실제 독성 데이터와 비교한 결과, 컴퓨터를 이용한 예측이 전반적으로 세포실험보다 예측력이 높았다. 또 세포실험 결과와 컴퓨터 예측 결과를 비교했을 때는 90% 안팎의 일치도를 보였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세포실험 결과와 컴퓨터 구조 분석을 함께 적용하면 예측 모델의 정확도가 평균적으로 81~86%로 나타났으며, 이는 동물모델의 77~84%보다 높은 정확도”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최근엔 알파고에 적용된 ‘딥러닝 기법’까지 적용해서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 예측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박 연구원이 속한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장기이식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물이 간과 신장에서 독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밝혀 OECD에 독성발현경로를 제출했다. 국내 연구팀이 밝힌 독성발현경로가 OECD에 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연구원은 “이 같은 연구의 최종 목표는, 컴퓨터 예측과 세포실험 결과 등을 종합해서 동물실험보다 정확하게 인간에게서 나타날 독성을 예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연구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미국과 유럽, 일본, 캐나다, 그리고 한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한국이 세계적인 흐름을 빠르게 뒤쫓아 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정초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생체유사 장기시스템(NOCS)이다.

정 연구원팀은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만든 장과 간, 심장 등의 생체기관(오가노이드) 사이에 배양액이 흐르도록 해주는 장치를 고안했다. 마치 인체에서 각 기관이 혈액을 매개체로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실험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예컨대 유효성과 독성을 확인하려는 화학물질을 주입한 뒤 장관(intestinal tract)이 얼마나 흡수하는지를 알 수 있고, 간에서는 장관에서 흡수한 물질을 얼마나 대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세포 내에서 나타나는 반응만 살피는 실험법보다 거시적으로 물질의 유효성과 독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현재 인간 세포를 이용한 연구는 대부분 세포가 접시에 2차원으로 깔린 상태에서 진행된 것인데, 여기서 나타나는 특성은 실제 3차원인 장기에서와 사뭇 다르다”며 “3차원 조직을 만든 뒤 NOCS에 넣어 실험하면 보다 정확한 인체 반응을 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팀은 지난해 암세포에서 유래한 장관조직과 간조직을 NOCS에 넣었을 때 약물을 흡수하고 대사하는 과정이 동물실험과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현재 연구팀은 인간의 장관조직과 유전적으로 80%가 유사한 조직을 줄기세포로 만든 상태로, 올해 말까지는 간과 심장 조직 등을 추가로 만들어 본격적인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정 연구원은 “지금은 주요 장기 몇 개로 실험을 하는 수준이지만 점차 여러 장기를 더해 복잡성을 높여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환자에게서 떼어낸 체세포로 기관을 만들어 치료제의 효과와 독성을 시험하는 ‘개인 맞춤형 임상시험’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 인체 장기를 전자 칩으로 구현해 각종 실험을 진행하는 ‘올갠온 어 칩(Organ on a chip)’ 기술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가령 폐를 모사한 ‘렁 온 어 칩’은 실제로 칩 위에 혈액과 공기가 흘러가는 동안 폐세포가 물질을 흡수하고 백혈구가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정 연구원은 “올갠 온 어 칩은 (약물 후보 물질) 발굴 시험에 효과적이지만 너무 작아서 칩 안에 든 세포를 꺼내 분석하는 등의 작업을 하기 어렵다”면서 “NOCS는 화학물질이 나타내는 효능과 독성을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완전한 탈(脫) 동물실험, 가능할까

연구자들은 장기적으로는 어류도 동물실험 금지 추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류를 이용한 실험에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유전적으로 사람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더 정확한 대체 실험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줄기세포와 데이터 분석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험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의 장기에서 세포를 떼어내 실험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간세포의 경우 간이식 수술을 하면서 분리한 세포(일차간세포)를 냉동보관했다가 해동시켜 실험에 쓰고 있지만, 심장이나 신경세포 등은 사람의 몸에서 떼어내 실험을 하기 어렵다. 일차간세포를 배양해서 실험할 때도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 주요 효소의 활성이 빠르게 소멸하고 세포 생존 기간이 짧기 때문에 약물대사 및 독성시험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간암조직에서 유래한 간암 세포주는 정상 간세포에 비해 약물대사효소의 발현과 활성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지만 실험실에서 배양하기 쉽고 지속적으로 세포분열을 한다. 그 때문에 현재는 주로 이 세포를 이용해서 실험을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온전한 간세포로 실험하기 위해서는 줄기세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KIT)는 현재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간세포와 심장세포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1994~2006년 사이 퇴출된 의약품의 82%가 간과 심장에서 나타난 독성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학자들은 다른 조직보다 우선적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온전한 간세포와 심장세포를 만들고 있다. 박한진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모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전세계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줄기세포 분화 기술을 이용해 인간 정상 간세포의 약물대사 기능을 온전하게 구현한 사례는 없다”며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만든 간세포가 기능이 떨어지는데, 현재 그 이유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모델연구센터 연구팀은 인간 일차간세포보다 줄기세포로 만든 간세포에서 약물 대사에서 중요한 효소 발현이 적은 이유를 밝혀 미국 ‘공공과학도서관회보(PLOS ONE)’ 2015년 7월 15일자와 ‘사이언티픽 리포트’ 2016년 2월 22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쓰던 약에서 ‘로또’ 찾는다

동물실험을 아예 거치지 않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부터 약 개발을 시작하는 방법도 최근 각광받고 있다. 기존 약품의 농도 등을 변화시켜 다른 질환 치료에 적용해 보는 방식으로, ‘신약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이라고 부른다.

이 방법은 이미 인체 유해성을 검증하고 사용 승인을 받은 약품을 재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많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다.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던 실데나필이라는 물질을 발기부전 치료제(바로 ‘비아그라’다!)로 쓰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팀은 운동보조제로 많이 복용하는 크레아틴이라는 물질이 여성 우울증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 국제학술지 ‘생물학적정신의학’ 2015년 12월 15일자에 발표했다(dx.doi.org/10.1016/j.biopsych.2015.11.027). 연구에 참여한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신약 재창출 방식은 이미 있는 약품 자원을 활용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동물실험에서 자유롭다”며  “허혈성 뇌졸중 치료제를 필로폰 중독 청소년의 뇌손상 치료에 적용해 보는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 컴퓨터과학, 기계공학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동물실험을 뛰어넘어 화학물질을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물과 인간 모두를 위한 일이다.

과연 인간은 동물을 실험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까. 간디는 “한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 최영준 과학동아
이미지 출처 : GIB, Stephencdickson(W), Otis Historical Archives 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F),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NICHD, eLife, Protein Data Bank, 최영준, Wyss Institute

과학동아 2016년 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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