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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강철이 연료가 되는 세상



금속 연료라니, 생소하다. 석탄이든 휘발유든, 난방을 하거나 전기를 만들려면 일단 연료를 불에 태워야 한다. 그런데, 금속을 태울 수 있다고? 건물에 불이 나 홀랑 다 타버려도 결국 끝에 남는 건 단단한 철골 뼈대 아니던가. 꼬리에 꼬리를 잡고 수많은 의문들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그러나 윤웅섭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금속을 연료로 이용한 건 이미 오래됐다”고 말했다. “공중에서 금속 분말을 태워 폭발시키는 불꽃놀이가 시초입니다. 그 열과 빛, 폭발력을 이제 자동차나 발전소에 써보자는 거죠.”

써도 써도 닳지 않는 금속 연료

금속을 연료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반응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재 널리 쓰이는 기체나 액체 연료와 비교해 같은 부피 당 2~3배 가량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1L에 저장된 에너지가 LNG는 22.2MJ(메가 줄)인 데 비해 철은 40.68MJ, 알루미늄은 83.8MJ에 이른다. 금속을 연료로 이용하려면 지름 5~100μm 정도로 곱게 가루를 내야 한다. 굵은 장작보다 가느다란 잔가지가 활활 타듯, 금속의 표면적을 넓혀 쉽게 연소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금속 연료는 국방이나 무기 등 특정 분야에서 널리 쓰여 왔다. 대표적인 예가 고체 로켓 추진제다. 고체 로켓 추진제는 분말 상태의 산화제와 연료를 혼합해 만드는데, 여기에 10% 가량의 금속 분말을 첨가한다. 세계대전 이후 로켓의 추진력을 키우기 위해 금속 분말을 섞기 시작했다. 성홍계 한국항공대 항공우주및기계공학부 교수는 “로켓이 생성하는 에너지가 커질수록 화염이 불안정해지는데, 금속 분말이 이를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며 “주 연료나 산화제보다 금속 분말이 무겁기 때문에, 화염의 관성력이 커지면서 화염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속 연료는 무기에도 응용되고 있다. 차세대 무기로 꼽히는 열압력탄(오른쪽 위 사진)을 보자. 포탄이 하늘에서 한 번 터진다. 그 충격으로 회색 가루가 넓게 퍼진다(➋). 바로 알루미늄 분말이다. 한 번 더 점화된다(➌). 미세한 알루미늄 분말에 불이 붙어 폭발하면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발생한다(➍). 이 충격파가 동굴이나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기계를 망가뜨리거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 금속 파편을 날리는 수류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이다.

금속 분말을 민간에서 연료로 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금속 분말에 직접 불을 붙여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키는 방법이 있다(4Al+3O2→2Al2O3). 이 때 발생하는 뜨거운 열로 엔진을 가동시킨다. 금속 가루를 물과 반응시키는 방법도 있다. 순수한 알루미늄은 반응성이 몹시 커서 물을 붓기만 해도 수산화이온과 반응하면서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2Al+6H2O→2Al(OH)3+3H2). 이 과정에서 수소 가스와 열이 나온다. 수소 가스를 연료전지에 넣어 전기를 만들거나, 뜨거운 수소 가스를 이용해 연소 엔진이나 가스 터빈을 가동시킬 수도 있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두 방법 모두 반응식 어디에도 탄소(C)가 없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공해 물질도 거의 없다. 금속 연료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속 연료는 다시 재생해서 쓸 수 있다. 나무나 석탄을 태우면 재가 남고 이산화탄소 등 기타 생성물은 기체로 날아가는 데 비해, 금속 분말을 태우고 나면 고체 상태의 산화금속이 남는다(예를 들어, 알루미늄을 연소하면 흔히 ‘알루미나’라고 부르는 산화알루미늄(Al2O3)이 떨어진다). 별도 공정을 통해 산소를 다시 분리해 내면, 처음 넣은 것과 동일한 양의 금속을 얻을 수 있다. 닳지 않는 연료인 셈이다. 캐나다 맥길대 기계공학과 제프리 베르그토르손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데 비해 금속연료는 언제든 쓸 수 있다”며 “대규모 송전망을 설치할 필요 없이 화물선에 실어 수출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금속 ‘잘’ 태우기 위한 묘안들

하지만 금속 연료를 엔진이나 발전소에 쓰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첫 관문은 높은 점화 온도. 금속 분말은 웬만한 온도에서는 불이 붙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속의 반응성이 크다는 게 불이 잘 붙지 않는 이유다.

대부분의 순수한 금속을 공기 중에 두면, 금세 대기 중 산소와 반응해 표면에 산화피막이 생긴다. 철이 녹스는 현상을 생각하면 된다. 산화피막은 구조가 치밀해 피막 내부의 알루미늄이 산소 등 산화제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한다. 게다가 산화피막은 보통 녹는점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 산화피막의 녹는점은 약 2100℃다. 물론 불가능한 온도는 아니다. 그러나 로켓이나 무기와 달리 민간 분야에서는 안정성과 경제성 때문에 온도를 이 정도까지 올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순수한 금속 분말의 표면을 점화 온도가 낮은 물질로 코팅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니켈이다. 니켈은 알루미늄보다 점화 온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금속 간 반응 때문에 열이 발생하면서 알루미늄을 더 빨리 연소시킨다. 금속 간 반응이란, 이온화 경향이 다른 금속이 접촉해 있을 때 전자가 이동하면서 일어나는 산화-환원 반응이다. 윤 교수는 “코팅 기술을 이용하면 금속 연료의 점화 온도와 연소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폭발 위험도 줄일 수 있다”며 “현재 이 분야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원하는 만큼 큰 화력을 ‘안전하게’ 내는 조건을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이다. 성 교수는 “금속 분말의 알갱이가 너무 작으면 쉽게 타지만 나오는 에너지가 너무 적거나 오히려 폭발할 위험이 있고, 알갱이가 너무 크면 잘 타지 않는다”며 “안전하게 큰 화력을 내기 위한 적정한 입자 크기와 혼합 비율, 양을 찾아내는 게 기술적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로 다른 크기의 금속 분말을 섞어서 알맞은 화력과 연소 시간 등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금속 연료를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할 기술이 없다는 것도 상용화를 막는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할 때 언제든 시동을 켜고 끌 수 있고 원하는 속력을 낼 수 있는 건, 연료를 딱 적당량만큼 엔진 안에 분사해줄 수 있는 기술 덕분이다. 기체 연료는 밸브로, 액체 연료는 스프레이를 이용해 양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금속 연료는 분말 특유의 응집 현상 때문에 양 조절이 쉽지 않다. 마치 밀가루나 설탕 가루를 오래 두면 뭉치는 것과 비슷하다.

2005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철로 달리는 자동차’ 개발 계획은 이런 도전과 실패의 상징이다. 당시 연구소는 휘발유 대신 나노 크기로 만든 철가루를 엔진에 넣어 폭발시키겠다며 금속 연료용 엔진의 개념도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연구는 실패했고 후속 연구도 모두 사라졌다. 접촉을 시도해 봤지만 현재는 연구 책임자마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성 교수는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원하는 출력을 지속적으로 얻지 못하거나 경제성과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말했다.


철 vs 알루미늄, 누가 왕 자리를 차지할까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금속 연료의 기본적인 연소 특성에 대한 기초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캐나다 맥길대 기계공학과 새뮤얼 고로신 교수와 제프리 베르그토르손 교수 공동연구팀은 전세계 금속 연료 연구 그룹 중 선두 주자다. 연구팀은 최근 연구에서, 직접 개발한 금속 연료용 열엔진으로 기존의 화석연료용 엔진과 유사한 수준의 동력을 내는 데 성공했다(doi:10.1016/j.apenergy.2015.09.037). 연구팀은 “이런 목적으로 쓸 수 있는 1차 후보는 강철”이라며 “전세계 제철이나 화학, 전자 산업에서 생산되는 강철 분말 수백만 t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로신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직접 연소 방식에는 철이 적당하고 물과 반응시키는 방법에는 알루미늄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알루미늄을 직접 연소하면 나노 크기의 산화물이 남는데, 이건 다시 모아서 재활용하기 어려워요. 반면 산화철은 자성이 있어 수집하기 편리한 데다 철을 분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른 금속보다 저렴하죠. 다만 철은 물과는 잘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물과 반응시켜 에너지를 얻는 방식에는 알루미늄을 써야 합니다.”

과연 언제쯤, 어디에서 금속 연료를 만나게 될까. 베르그토르손 교수는 “독일에서 최근 발전소용 연료로 리튬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금속은 아직 다른 연료보다 비싸기 때문에 모든 연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현재 가장 흔히 쓰이는 산화제인 산소가 없는 상황, 즉 물 속이나 지구 밖에서 전기를 만들어야 할 때 유용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배나 잠수함을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무기인 ‘초공동 수중 비행체’는 금속 분말을 물과 반응시켜 추진력을 얻는다. 이를 켜고 끌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금속 분말과 바닷물을 반응시켜 추진력을 얻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박용 엔진도 개발할 수 있다.
 

글 : 우아영 과학동아
이미지 출처 : GIB, 미국과학자연맹(FAS), Applied Energy

과학동아 2016년 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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