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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서 품은 희망 네팔 지진 현장을 가다



지난 4월과 5월, 네팔에서 규모 7.8과 7.3의 강력한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두 번의 지진은 9075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80만 채 이상의 가옥을 무너뜨렸다. 지진이 나자 전세계가 구호팀을 파견하는 등 네팔에 도움의 손길을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은 점차 사그라졌다. 6개월 뒤,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는 상처 입은 네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와 재난심리지원 전문가, 사회복지 전문가, 전국 대학생 및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월드프렌즈 청년봉사단 네팔’을 조직했다. 10월 5일부터 19일까지 지진피해 현장에 머문 봉사단은 네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은 상흔을 보듬는 시간을 보냈다. 기자도 일부 활동에 동참했다.

0비행기 창문 너머, 양탄자처럼 펼쳐진 흰 구름을 뚫고 거대한 설산(雪山)이 솟아올랐다. 히말라야였다. 마치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이방인에게 경고라도 하는 듯 당당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다다른 비행기가 점차 고도를 낮추자 카트만두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공항은 주거지역에 인접해 있었는데 상공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모습은 불과 몇 달 전에 대지진을 겪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봉사단을 인솔한 국제개발구호단체 더프라미스의 김동훈 국제사업국장은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무너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카트만두 지역에서는 무너진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히말라야산맥의 모습(위)과 지진으로 파손된 궁전 건물(아래).]

 
랜드마크에 집중된 카트만두 지진피해

카트만두 지역의 건물 붕괴가 적었던 이유는 지진 당시 발생한 지진파의 특징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지질학및행성과학과 장-필립 아부아 교수팀이 ‘사이언스’ 8월 7일자에 발표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네팔 지진 당시에는 높은 건물에 영향을 미치는 저진동수 지진파가 주로 발생했다.

4월 25일 처음 발생한 규모 7.8의 대지진은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약 81km 떨어진 지점에서 일어났다. 연구팀은 이 지진을 일으킨 히말라야 단층지대 바로 위에 설치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인공위성에서 측정한 자료를 토대로 지진이 일어난 70초 동안의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단층이 비교적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진동수가 적은 지진파를 만들어 대부분 저층 건물인 카트만두의 주거지역 붕괴 피해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진동수가 적은 지진파는 고층 건물에 피해를 많이 입히는 반면 저층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다(반대로 고진동수 지진파는 저층 건물을 붕괴시킨다).
 
카트만두의 랜드마크이면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다라하라 타워가 무너진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높이 62m로 카트만두에서 흔치 않은 고층 건축물인 다라하라 타워는 저진동수 지진파에 속절없이 무너져 18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현장에서 목격한 다라하라 타워는 가장 아랫부분만 남은 채로 비닐에 덮인 처참한 모습이었다(왼쪽 사진).
 
다라하라 타워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하누만도카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궁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11세기에 건축된 뒤 약 1000년의 세월 동안 네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 궁전도 곳곳이 무너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재난
봉사단의 목적지는 카트만두보다 지진의 진앙에 더 가까운 다딩 지역이었다. 시골 산간도로에서나 볼 수 있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3시간 동안 달리면서 기자는 평소엔 잘 하지 않던 멀미를 했다. 하지만 멀미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국으로 치면 ‘읍내’라고 할 수 있는 다딩 중심지역에서 해발 1500m 산간마을인 카툰제와 셈종으로 이동하는 길은 비포장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험난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위-아래’로 흔들리기를 3~4시간 반복하자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몽롱한 와중에도 ‘정신줄’을 놓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산길에서 만난 폐허들이었다. 해발 8163m, 세계 8번째 고봉인 마나슬루 산이 멀리 보이는 산길에는 카트만두에서와 달리 무너진 집들이 즐비했다. 시골집들은 대부분 단층이었지만 철근과 시멘트를 쓰지 않고 돌덩이를 쌓고 사이에 진흙을 발라서 만들었기 때문에 지진파의 특성과 관계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동안 큰 지진을 경험하지 못했던 산간지역 주민들은 내진설계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튼튼하게 집을 지을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네팔 지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층 가혹했다. 집을 잃은 산간지역 주민들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임시 거주지에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 복구를 위한 물자 수급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네팔 현지 비정부기구(NGO)인 생태보호포럼(Ecological Protection Forum·EPF Nepal) 소속으로 이번 방문의 통역을 맡은 마누 구룽 씨는 “네팔은 대부분의 물자를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최근 제정한 네팔의 새 헌법을 둘러싸고 인도와 갈등을 빚고 있어 물자 수급이 어렵다”고 말했다.

폐허 속에서 웃음 짓는 아이들

온몸이 먼지로 뒤덮일 때쯤 도착한 카툰제와 셈종 마을의 쿤달라 고등학교와 초우따라 고등학교 역시 폐허였다. 봉사단은 두 팀으로 나뉘어 쿤달라와 초우따라 고등학교를 맡았다. 특히 쿤달라 고등학교는 교무실로 쓰는 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붕괴됐고, 폭삭 내려앉은 잔해 일부는 치우지도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진 건물 앞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이 줄지어 봉사단을 환영하고 있었다.

한국 봉사단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쿤달라 고등학교 교장인 암릿 만 크레스사 씨는 “한국에서 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희망을 줬다”며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EPF Nepal의 라케스 다말라 대표도 “쿤달라 가족 모두가 한국 봉사단이 와준 것과 새로 학교 건물을 지어 주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며 “한국 봉사단원들도 재난을 딛고 살아가고자 하는 네팔 사람들의 의지를 느끼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쿤달라와 초우따라 고등학교는 한국과 달리 유치원생부터 초, 중, 고등학생까지 한 학교에 다니는 곳이다. 아침과 저녁이면 8000m가 넘는 안나프루나와 마나슬루 산이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드는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발붙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 학교 9학년에 재학 중인 독시나 갈레 양은 “지진이 났을 때는 정말이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꼈지만 다행히 집이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아 살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양철로 만든 임시 주택에 살고 있지만 슬프거나 힘들지는 않다”고 말했다.

영어 교사인 묵티 나스 카날 씨도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은 학생들이 다섯 명인데 당시에는 많이 슬퍼했지만 지금은 좋아졌다”고 말했다.
 

미소 뒤에 숨겨진 상처

쿤달라 고등학교 심리지원팀을 맡은 정한용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밝은 모습만을 보고 낙관적으로 평가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지만, 몸과 달리 마음의 상처는 원래 잘 보이지 않는다”며 “한 달 전에 45명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조사를 했을 때는 많은 학생들이 불안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아름 순천향대 부천병원 임상심리전문가는 “이번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불안과 우울 증상이 얼마나 나타나는지 확인할 것”이라며 “그 결과를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과 공유하고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근육이완법과 호흡법 등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이끄는 쿤달라 팀은 심리지원 외에도 레크리에이션과 미술, 음악, 체육대회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최태산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초우따라 팀은 미술과 음악, 동작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쿤달라 팀에서 총 205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외상후스트레스증상(Post Traumatic Stress Symptoms)과 우울증 설문조사 결과, 많은 학생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었다. 가족 또는 이웃이 벽이나 바위에 깔린 끔찍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학생이 135명에 달했고, 부모나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부상당했다고 답한 경우도 94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재난 상황이 자주 생각난다고 응답한 경우는 51명이었고, 불면증을 호소하는 학생도 24명이 있었다.

이아름 임상심리전문가는 “다들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진단내릴 아이들은 없어보인다”면서도 “다만 외상후스트레스증상과 우울증상을 같이 보이는 아이가 두 명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향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마스떼 : 당신을 존중합니다

봉사자들은 마을에 머무는 동안 현지 교사, NGO 활동가, 마을 주민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아이들을 위한 최선’을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한겸 교수는 “현지 교사들을 가르치는 태도가 아니라 그들을 존중하면서 돕는 태도가 봉사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봉사단이 진행한 프로그램은 함께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는 것 등이었다. 겉보기엔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봉사단원들의 진심이 담긴 고민과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 결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학생들에게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최태산 교수는 “현지 교사들에 따르면, 이전에는 이곳 아이들이 이렇게 함께 춤추고 여럿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초우따라 팀 봉사단원인 노은지 씨(가톨릭대 4학년)도 “한 번도 춤을 춰 본 적 없는 아이가 용기를 내서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감탄했다 .

일주일 안팎의 짧은 기간 동안 심리치료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 봉사단이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보여준 ‘진심’은 그 어떤 치료 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이었다. 정한용 교수는 “6주 뒤에 한 번 더 검사를 실시해서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기자는 네팔에 오기 전까지 학생들을 현지로 보내는 방식의 봉사활동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 비용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도, 한국 봉사단원들에게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간은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위로와 성찰의 계기가 됐다. 네팔을 떠나기 전, 한국에 12년 동안 살았던 라케스 다말라 대표는 한국 봉사단 학생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우린 비록 힘들고 어렵게 살지만 누구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난하다고 자살하지 않지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배우는 것처럼, 여러분도 우리 문화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글 : 최영준 과학동아
이미지 출처 : 네팔 다딩=최영준 기자

과학동아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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