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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무선으로 충전하는 ‘와이파워 시대’


“왜 하필 그때였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그때 핸드폰 배터리가 끊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좀 다른 미래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中)” ‘연애의 발견’ 주인공 한여름(정유미 분)은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헤어졌던 옛 남자친구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런 불상사(?) 때문에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쟁취했지만, 이런 꿈 같은 일은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안에 들어가면 저절로 휴대전화가 충전되는 ‘와이파워존’ 연구가 급 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7월, 와이파워존의 서막을 여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와이파워는 전선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와이파이를 빗댄 표현으로,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을 말한다. 무선충전기술의 또 다른 표현이다. 7월 7일, 임춘택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팀은 송신기로부터 50cm 이내에서는 충전기 없이도 자유롭게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작은 ‘와이파워존’을 만든 것이다. 같은 달 29일, 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다이폴코일 공진방식’으로 평면 수신기 만들어

임 교수의 연구실 중앙엔 도서관 책상만한 크기의 코일이 놓여있었다. 그다지 복잡해 보이진 않았다. 자석같이 생긴 철심에 전선이 둘둘 말려있는 솔레노이드 코일이 십(+)자 형태로 놓여 있는 구조였다. 두 개의 막대를 이용한 방식이라고 해서 ‘다이폴코일 공진방식’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무선충전되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임 교수가 코일 위로 검고 평평한 뚜껑을 씌웠다. 무선충전테이블이 만들어진 셈이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연구원 2명이 테이블 위로 휴대전화를 올리자 화면에 충전 중을 의미하는 번개가 바로 나타났다(134쪽 사진 참고). 휴대전화를 돌리고 뒤집고 흔들어도 휴대전화 화면의 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임 교수는 “기존에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충전 가능한 제품은 개발돼 있었지만, 기존 코일(루프 코일)은 구 모양이라 휴대전화에 적용시키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반면 다이폴 코일을 이용하면 두께가 3mm 정도의 평평한 전기 수신기를 만들 수 있다. 실용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좋은 해결법이 있는데 왜 이제서야 개발된 걸까. “루프코일이 성능이 좋으니까요. 지금까지 쭉 루프코일을 써왔으니까 다른 코일을 사용할 생각을 다들 못했죠.”

다이폴코일 공진방식이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전통적인 무선충전 방식들의 장점만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선충전은 무선전력전송기술을 기반으로 하는데, 전통적으로 무선전력전송은 크게 자기유도방식과 자기공명방식으로 나눈다. 자기유도방식은 송,수신 코일 간의 전자기유도 방식을 이용한다. 송신코일 속 전류가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이 자기장이 수신코일에 전류를 일으키는 원리다. 이 방식은 전력 손실이 적어 전송효율이 90%(이론적)에 이르는 반면, 전송거리가 1cm 내외로 매우 짧다는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을 극복한 것이 자기공명방식이다. 자기공명방식은 2007년 미국 MIT 마린 솔랴사치 교수팀이 고안한 것으로 송, 수신부에 추가적인 공진코일(입력코일, 부하코일 등)을 사용해 먼 거리까지 전력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 송신부 코일에서 공진 주파수로 진동하는 자기장을 만들어내면, 동일한 공진 주파수를 가진 수신부 코일에 집중적으로 전기가 전달되는 원리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수 m 내외까지 무선으로 전력을 보낼 수 있지만, 민감도가 높아져 온도변화와 같은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효율이 크게 달라진다.

다이폴코일 공진방식은 추가적인 공진코일 없이 수 m까지 무선전력전송이 가능하다. 즉, 환경에 덜 취약하면서도 멀리까지 전력을 보낼 수 있다. 임 교수팀은 이 방식으로 2014년 3월, 7m 떨어진 수신기에 10W의 전력을 전송하는 실험에 처음 성공했고, 지금은 실제 휴대전화까지 충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기술 규격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국제 규격들은 모두 루프코일을 이용한 기존 방식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무선충전 시장을 장악할 국제 연합은?

현재 무선충전 시장에는 크게 세 개의 국제 규격 연합이 있다. 무선전력위원회(WPC)와 파워매터스얼라이언스(PMA), 그리고 무선충전연합(A4WP)이다. 세 연합은 무선충전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표준화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중 WPC와 PMA는 자기유도방식을, A4WP는 자기공명방식을 이용해 무선충전 기술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무선충전기기만 보면 선발주자인 WPC의 기술표준이 가장 널리 보급돼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스타벅스가 PMA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200여 개 매장에 PMA 무선충전패드를 장착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에 뒤질세라 WPC는 맥도날드 매장에 무선충전패드를 설치하는 협력을 체결했다. 현재의 상황만 보자면 WPC나 PMA, 둘 중 하나가 무선충전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유영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산업정보분석실 연구원은 “자기유도방식은 충전거리 문제로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는 A4WP의 자기공명방식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2014년 12월 특허청에서 발표한 무선충전기술의 국내특허출원 동향만 봐도 자기유도방식은 2009년 102건에서 2013년 54건으로 줄어든 반면, 자기공명방식은 2009년 48건에서 2013년 87건으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를 빠르게 읽은 PMA는 지난 6월, 마치 정치권의 후보 단일화처럼 A4WP와의 공식 합병을 선언했다. 이로써 무선충전기술을 공동 연구하는 삼성전자, 인텔, 퀄컴, AT&T, 스타벅스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이 한 진영에 속하게 됐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이은수 KAIST 연구원은 “아직까지는 무선충전시장이 초기단계”라며 “여러 국제 규격의 전송거리는 수 cm 수준이기 때문에 아직 ‘대세’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 “다이폴코일 무선전력 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면 수십 cm 급 장거리 전력전송과 관련된 새로운 무선전력 규격이 제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 시장까지
 
무선충전이 필요한 건 휴대전화 시장만이 아니다. 차세대 자동차로 손꼽히는 전기자동차 시장에서도 무선충전은 반드시 개발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는 2013년 경북 구미에 세계 최초의 무선충전도로를 설치해 전기버스를 시험 운행했다. 이 버스는 12km 구간을 운행했는데, 도로 아래 설치돼 있는 송신기와 버스 차량 하부에 있는 수신기 간의 자기공명으로 ‘주행 중 충전’을 했다. KAIST 셔틀버스 역시 무선충전전기버스다. 주행 거리는 3.6km로 비교적 짧지만 벌써 3년째 운행하고 있다.

무선충전기술은 조만간 일반 전기차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5월 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전기차용 무선충전시스템 개발 사업 담당자로 그린파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그린파워 소시엄은 그린파워와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 자동차부품연구원, 그리고 임춘택 교수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린파워 컨소시엄은 2018년까지 전송효율이 90% 이상인 6.6kW급 무선전력충전 시스템을 개발해 전기차에 적용할 계획이다.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이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무선충전 시장의 성장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각 산업 분야에서 무선충전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로 인식될지, 또 어떤 기술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지는 올해가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글 : 대전 =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이미지 출처 : powermat

과학동아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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