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이병규(이하 이병규, 등번호 7번)는 같은 팀에서 뛰는 큰 이병규(등번호 9번)와 구분하기 위해 팬들 사이에서 부르는 애칭이다. 이병규는 올해 팀의 4번 타자로 주로 출장하고 있지만 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득점권(주자가 한 명이라도 2루 이상에 있을 때)에서 주자를 불러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먼저 득점권과 득점권이 아닐 때 이병규의 성적을 비교해보자.


타자가 투수보다 강한 리그에서 이병규의 올해 성적은 4번 타자라고 하기엔 아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병규가 특히 득점권에서 약한 것은 아니다. 평상시와 득점권에서 OPS는 큰 차이가 없고 심지어 출루율은 더 뛰어나다. 게다가 이병규는 원래 타율보다 출루율이 훨씬 높은 전형적인 OPS 타자다. 이병규는 득점권에서도 본인이 원래 하던 대로 안타보다는 볼넷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볼넷을 많이 얻는 타자는 당장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투수의 투구 수를 늘려 체력을 소모시킨다. 이병규의 올해 타석당 투구수는 4.26개로 리그에서 손꼽히게 투수를 괴롭히는 타자다.

실제로 그의 입장이 돼 득점권 타석에 들어서보자. 팀의 4번 타자로서 점수를 내기 위해 타석에 들어섰는데, 4번 타자를 경계하는 상대 투수가 좋은 공을 주지 않는다. 나쁜 공이 오는데 무리해서 범타를 만드느니 조금 기다려 걸어 나가는 것이 팀을 위해 좋은 일이다. 이것은 이병규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올해 KBO 리그에서 7월 16일까지 총 715번의 0-3(0스트라이크 3볼) 상황이 있었는데, 그 중 95%에 가까운 676번이 볼넷으로 끝났다(상단 표 참조). 1-3 상황에서 볼넷 비율이 60% 정도인데 0-3와 차이가 꽤 크다. 이것은 타자들이 볼카운트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마음가짐을 바꿔 걸어 나가려고 한다는 증거다.
딜레마에 빠진 4번 타자
하지만 득점을 위해 아웃카운트를 소모하지 않는 게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4번 타자라면 멋지게 해결할 줄도 알아야 한다. 1998년 5월 28일 샌프란시스코와 애리조나의 메이저리그 경기가 그 예다. 샌프란시스코가 2점을 뒤진 9회말 2사 만루에서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타자인 배리 본즈가 타석에 들어섰다. 승부를 피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 애리조나의 마무리 그렉 올슨은 숨을 크게 마시고 힘껏 공을 던졌다. 그런데 공이 향한 곳은 홈플레이트가 아니라 타자 반대편에 멀찍이 서 있는 포수의 글러브였다. 배리 본즈는 고의사구로 걸어 나갔고 샌프란시스코는 밀어내기로 일점을 얻었지만, 다음 타자 브렌트 메인이 범타로 물러나 나가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볼넷이 득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세이버 매트릭스 커뮤니티 ‘팬그래프’의 칼럼니스트 줄리언 애슐린은 볼넷과 경기당 득점의 상관관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4년 메이저리그 팀들의 볼넷의 총합과 경기당 득점의 상관계수는 -0.0486이었다. 상관계수란 두 값이 얼마나 상관이 있느냐를 알려주는 통계로 -1이나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크고, 0에 가까울수록 관련이 없다. OPS 같은 기록이 득점과 0.9가 넘는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국내는 어떨까. 팀 수가 1/3가량 적은 국내는 표본이 적어 연도별로 차이가 크지만 지난해 KBO 리그의 볼넷과 경기당 득점의 상관계수는 0.098이었다. 타석당 투구수도 득점과 상관관계가 없었다. 지난해 경기당 득점과 볼넷의 상관관계는 -0.0486이었다.
세이버 매트릭스는 끊임없이 변한다. 한때는 아웃카운트를 낭비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지만, 반론이 나온 지금은 새로운 방향으로 의견이 옮겨 가고 있다. 이것은 100년째 제자리 걸음인 전통적 야구관과 세이버 매트릭스가 가장 대비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