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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회계사가 그런 것처럼 두 명의 철학자 사이에서 논쟁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계산해 보자’고 하면 될 일이다.”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이성이 꽃을 피운 17세기.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는 사상을 전개하는 데 일상에서 쓰는 말보다 수학 같은 추상적인 기호가 더 낫다고 여겼다. 특히 단어를 기호로 바꾸는 수준을 넘어 기호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의 이론적 토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본격적인 인공지능 연구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열었다. 1936년에 튜링은 긴 테이프에 쓰여 있는 여러 기호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바꾸는, 즉 하나의 알고리듬을 수행할 수 있는 가상의 ‘튜링기계’를 구상했다. 계산기를 ‘지능을 가진 기계’로 바꾼 아이디어였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테이프 위에 다양한 알고리듬을 한꺼번에 써 두고 필요할 때 골라 읽는 ‘보편 튜링기계’도 제안했다. 하드디스크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실행하는 지금의 컴퓨터는 바로 보편 튜링기계에서 비롯됐다.


제1의 암흑기…기호로 치환하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건 1955년이다. 그 해 8월 31일, 내로라하는 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서가 발송됐다. 여기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존 매카시(다트머스대), 마빈 민스키(하버드대), 너대니얼 로체스터(IBM), 클로드 섀넌(벨 연구소) 드림. 1956년 여름 뉴 햄프셔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대에서 두 달 동안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연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연구는 학습과 기타 지성의 모든 측면을 자세히 묘사해서 기계로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추측을 기반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언어를 사용하고, 추상과 개념을 만들고, 지금은 인간만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풀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기계를 만들고자 시도할 것입니다. 엄선된 과학자들이 여름 동안 함께 연구하면 이 중 하나 이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트머스대에 모인 학자들은 머지 않아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가령, 허버트 사이먼은 1965년에 “앞으로 20년 안에 기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MIT와 카네기멜론대에 인공지능 연구소가 세워졌고, 20여 년 동안 다양한 성과가 나왔다. 대표적으로, 사이먼과 앨런 뉴웰이 1959년에 만든 범용 문제 해결 알고리듬은 ‘하노이의 탑 퍼즐’을 스스로 풀 수 있었다.

그러나 학자들이 꿈꿨던, 인간처럼 생각하는 지능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는 기호로 치환하기엔 너무 복잡했다. 낙관론이 고개를 숙여갈 때쯤 1971년 스티븐 쿡, 1972년 리처드 카프, 1973년 레오니드 레빈이 각각 결정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주제는 주어진 문제를 컴퓨터로 얼마나 빨리 풀 수 있는지를 다루는 ‘P-NP’ 문제로,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컴퓨터공학 분야의 대표적인 난제다. 이 추론에 따르면, 어떤 문제는 입력 데이터의 크기가 증가할수록 계산에 필요한 시간이 지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영원히 계산을 마칠 수 없다. 요컨대, 인공지능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에서는 정작 인공지능이 무용지물이란 얘기다. 튜링기계로 인간을 빼 닮은 지능을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학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연구비는 끊겼고 우수한 인력들은 떠났다. 마지막 열정의 불씨가 찬물을 맞고 완전히 꺼졌다. 인공지능 연구는 첫 번째 암흑기를 맞았다.


제2의 암흑기…지식 추출의 병목 현상

이후 인공지능 연구는 작은 주제로 쪼개졌다. 인간의 일반적인 지능을 구현하기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초점이 옮겨갔다. 특수하게 잘 정의된 문제를 푸는 능력은 순식간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질렀다. 예컨대 IBM사의 체스 컴퓨터 ‘딥 블루’는 가능한 모든 경우를 조사해 체스를 두는 컴퓨터인데, 훗날(1997년) 세계는 체스‘만’ 둘 줄 알았다. 어쨌든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인공지능 연구에 다시 불이 붙었다.



 

특히 ‘전문가 시스템’이 급부상하면서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전문가 시스템은 인간이 특정분야에 대해 가진 전문적인 지식을 컴퓨터에 이식해, 일반인도 이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인공지능이다. 1960년대 화합물의 구조를 추정하는 ‘덴드럴’ 시스템이 시초다. 잘 알려진 전문가 시스템으로는 1970년대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개발한 백혈병 진단·처방 프로그램인 ‘마이신’이 있다. 먼저 환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 뒤, 의사로부터 이식 받은 의학지식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환자의 병명을 판정한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질문하면 추론을 통해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실제 임상에는 쓰이지 못했지만, 처방의 효과성이나 과잉 처방 방지, 다른 병원균 견제 등의 항목으로 이뤄진 설문 조사에서 인간 의사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외에도 광물을 탐사하는 ‘프로스펙터’, 컴퓨터 시스템을 구성하는 ‘엑스콘’, 기관차의 유지보수를 돕는 ‘델타’ 시스템 등이 있다.



오르막길 끝에는 필히 내리막길이 있는 법일까. 전문가 시스템도 얼마 못 가 한계를 드러냈다. 대표적인 문제가 ‘지식 추출의 병목 현상’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전문가 인터뷰나 전문서적을 토대로 설계됐는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해당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식을 추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도 급격히 늘었다. 개인의 경험 자체가 전문성에 속하는 경우, 그들로부터 어떤 지식을 추출해야 하는지조차 불명확했다.

전문가 시스템의 거품이 꺼졌고, 인공지능 연구는 제2의 암흑기에 들어섰다. 연구는 더 구체적인 목표 아래 세분화됐다. 1950년대 학자들이 꿈꿨던, 인간을 쏙 닮은 순수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인공지능의 하위 분야, 다시 말해 보다 특수하고 좁은 기계학습, 로봇공학, 컴퓨터 시각화 등의 영역으로 옮겨 갔다.




 

제3의 호황기…과연 어떤 인공지능 탄생할까

인공지능은 또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애플의 인공지능 비서 ‘시리’는 초기 어벙했던 모습과 달리, 이제 놀라울 만큼 높은 정확도로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명령을 수행한다. 때로 재치 넘치는 답변을 내놓기도 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다. IBM의 대표 인공지능 ‘왓슨’은 이미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장차 인간 의사를 대신해 환자의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의학문헌에서 관련정보를 단 몇 분만에 찾아내는 등 충실한 의학 조언자로 변모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의 새로운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미 대중과 언론은 터미네이터 같은 초지능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점치고 있다.

 


 

두 번의 암흑기를 겪은 과학자들의 입장은 다소 조심스럽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사람이 인공지능에 비해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은 못하는 게 없다”며 “지금도 이런 특성을 기계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20~30년 내 인간을 뛰어 넘는 초지능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많아졌지만, 어디까지나 기술 발전 속도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현재로서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과도한 기대는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물론 과거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컴퓨터와 기계학습 알고리듬이 6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했고, 특히 빅데이터의 등장으로 판 자체가 바뀌었다(3파트 참조). 이제 약한 인공지능으로도 실생활에서 놀라운 편의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과연 어떤 기술이 돌파구를 마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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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는 없다] INTRO 인공지능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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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딥러닝, 인공지능을 혁신하다
INTERVIEW 글로벌 기업 바짝 추격한다
PART 4 의도는 없다, 그러나 인간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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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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