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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인류, 예술가가 되다

예술의 탄생 10대작 초대전

인류, 예술가가 되다

1. 300만 년 동안의 고독

예술이란 무엇일까. 손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대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예술의 정의라고 한다면, 자연이 만든 돌멩이인 이 작품은 결코 예술의 범주에 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인류가 ‘미’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그것을 수집했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마카판스가트 지역의 300만 년 전 지층에서 나온 작고 붉은 조약돌은 그런 조건을 만족시킨다.

움푹 들어간 부분이 꼭 부조로 만든 사람의 얼굴 모양을 떠올리는 이 돌은, 그 지역에서는 나지 않는 종류의 돌이다. 고고학자들은 누군가 수km 밖에서 일부러 가져온 돌이라고 보고 있다. 최초의 화가가 등장하기 이전에, 미술품 ‘수집가’가 먼저 등장한 셈이다.
 
배경음악 :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2. 탐색
 

색은 일찍부터 인류를 매혹시켰다. 혹시 색에 대한 집착과 활용이 예술의 기원은 아닐까. 에티오피아 가데드 지역에서는 문지르면 붉은색이 나오는 산화 현무암 조각이 발견됐다. 색을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150만 년전의 지층이었다. 하지만 간접적인 증거일 뿐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좀 더 많은 고고학자들이 인정하는 탐색(耽色)의 흔적은 약 30만 년 전에 나타났는데, 황토 덩어리를 간 흔적이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인류는 현생인류 이전부터 인간성을 표현하기 위해 색소를 이용했을 것”이라며 “몸에 색을 칠하는 보디페인팅이 대표적인 표현 수단으로 등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일부 주민은 진흙을 이용해 몸을 치장한다. 현대미술가 역시 몸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사상을 표현한다. 최초의 예술가도 색과 자신의 몸으로 고유한 개성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높다.

3. '얄읏한' 낙서1
 

이제 비로소 본격적으로 인간이 적극적으로 그린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난해 말, ‘네이처’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43~54만 년 전 낙서 흔적이 발견됐다는 논문이 실렸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조세핀 주덴스 박사팀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발견된 민물홍합 화석 166개의 표면을 확인했다. 그중 일부에서 마치 뾰족한 물체로 뚫은 것 같은 구멍과, 사람이 그린 것 같은 M자 모양의 지그재그 무늬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인류가 그린 낙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는 호모 에렉투스가 동남아시아에 살 때다. 연구팀은 이런 낙서의 기원이 호모 에렉투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이 낙서가 예술로 여겨질 수 있는지는 논란이다. 연구팀 역시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만든 이의 의도를 알 수 없다면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배기동 교수는 “사람이 뚫은 것 같은 조개 껍데기도 알고 보면 불가사리가 뚫은 경우가 있었다”며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 노동의 아름다움
 

인류가 만든 대표적인 공작품인 석기에서 예술의 단서를 발견할 수는 없을까. 스페인에서 발견된 약 40만 년 전의 주먹도끼를 보자. 이 주먹도끼는 화려한 붉은 규암으로 이뤄져 있었고, 인간의 유골과 함께 발견됐다. 미셸 로르블랑셰는 저서 ‘예술의 기원’에서 이것을 “고인에게 바치는 헌납품”이라고 해석한다.

영국에서는 길이가 30cm나 되는 ‘쓸데없는’ 주먹도끼(오른쪽 사진, 런던자연사박물관 소장)도 나왔고, 의도적으로 원이나 곡선 등의 기하학적 요소를 활용해 다듬은 것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예술작품이라는 자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도구’일지언정 예술은 아니다. 배기동 교수는 “호모 에렉투스의 석기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50만 년 전)에서 대칭의 성질은 발견된다”며 “심미적으로 다듬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을 예술로 부를지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간주(프롬나드)1

5. 논란의 비너스

화산암으로 만든 이 작은 석상은 호모 에렉투스의 유적인 아슐리안 유적에서 발견됐다. 묘하게 사람, 특히 여성의 신체를 닮은 모습이 조각의 가능성을 떠오르게 한다. 고고학자들은 돌의 겉에서, 비록 약간이지만 사람이 손을 댄 듯 한 흔적을 발견했다. 사실이라면 누군가 의도를 갖고 사람 형태로 가공한 흔적이라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형태가 매우 모호해 그저 우연히 인간의 형상을 닮은 조약돌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석상이 묘사한 여성의 모습이 한참 후대인 호모 사피엔스가 후기 구석기시대(3만 년 전 이내)에 만든 석상과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예술가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여성의 몸은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일까.

6. '얄읏한' 낙서2
 

논란의 시대를 끝내고, 이제 확실한 현생인류의 시대로 넘어온다. 아프리카 남부로 간 초기 현생인류는 그곳에서 명백히 의도적인 ‘작품’을 남긴다. 여기에는 날카로운 물건(아마도 석기)을 이용해 무늬를 새긴 황토 덩어리가 발견됐다. 평행한 선과 정확히 맞물려 반복된 다이아몬드 형태를 이루는 교차점으로 보건대, 작가는 명백히 장식적인 의도를 갖고 이 그림을 만들었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예술의 본격적인 탄생이다. 이 지역에서는 구멍의 흔적이 일정한 위치에 나 있는 조개껍데기도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당시 인류는 치장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7. 상상력을 상상하다

‘사자인간’이라는 별명이 붙은, 독일에서 발견된 작은 상아 조각은 이제 인류가 예술 활동을 시작했음을 확실히 증명해 준다.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공교로운 공작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현실주의적인 특징(사자와 인간의 결합)도 그런 심증을 더한다. 인류가 ‘상상력’을 이용해 자유로운 창작을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배기동 교수는 “사자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인간을 그대로 묘사한 조각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배 교수는 “상상력은 누적이 돼 있어야 발휘가 가능하다”며 “지금이야 누적된 상상력이 있어 (사자+인간 같은) ‘이미지 도약’이 가능하지만, 당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이 곧 상상력과 연결된다는 생각은 오늘날에만 가질 수 있는 편견일 뿐이다.

8. 안녕, 안녕!
 

최근 예술 고고학계의 가장 강력한 ‘폭탄’이었던 작년 연구를 들여다보자. 원래 동굴 벽화는 인류 예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형우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는 “20세기 고고학계의 대표적인 학자인 고든 차일드가 ‘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인류 문명의 폭발적인 변화의 대표적인 예는 예술, 그 중에서도 동굴벽화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동굴벽화에 새겨진 섬세하고 활달한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대표적인 동굴벽화는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에 흩어져 있었다. 프랑스 쇼베(3만6000년 전), 라스코(1만9000년 전) 등이 유명하다. 2012년에는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엘 카스티요 등의 11개 동굴의 연대를 새롭게 측정한 결과, 손바닥 스텐실(사진) 등 벽화의 연대가 약 3만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사이언스’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 동쪽 술라웨시 섬에 있는 동굴에 있는 벽화의 연대를 측정해본 결과 약 4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술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는 엘 카스티요 동굴에 있는 것과 같은 손 스텐실과, 멧돼지로 보이는 털 난 동물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교수는 “이 지역은 석기의 5단계 중 가장 세련도가 떨어지는 1단계(주먹도끼조차 거의 없는 단계)만 주로 발견되던 곳”이라며 “이곳에서 느닷없이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많은 고고학자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기가 문화의 절대적 단계 기준은 아니며 당시 인류는 지역에 관계없이 석기를 만들 인지능력이 충분히 있었다(배기동 교수)”는 해석도 있다.

특히 유럽과 동남아시아에 공통되게 등장하는 손 모양의 스텐실이 흥미롭다. 이 교수는 “아마 염료를 입에 물고 손을 바위에 댄 뒤 뿜어서 만들었을 것”이라며 “작품 자체보다, ‘부는 행위’를 통해 자신과 바위가 하나가 되는 몰아적 경지를 체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손 모양 스텐실은 그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동굴벽화나 무늬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유물 자체에 집착하느라 선사시대 예술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작품을 만드는 활동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 행위를 영위하는 삶, 또는 살아 있음 자체였을지도. 그래서일까. ‘내셔널지오그래픽’ 2015년 1월호는 엘 카스티요의 3만7000년 전 손 스텐실 사진 아래에 이런 사진 설명을 달았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살아 있으며, 여기 있었습니다.”

9. made by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 외에 예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또다른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무덤을 치장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예술 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 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시각 예술을 시도했다는 논문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됐다. 스페인 후엘바대 지질및고고학과 호아킨 로드리게즈-비달 박사팀은 스페인 지브롤터 부근의 동굴 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체크 무늬를 발견했다. 3만9000년 전의 유적이며 의도적으로 뾰족한 물체로 조심스레 새긴 것이었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이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이를 표현할 능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형우 교수는 “유럽의 후기구석기 문화인 샤텔페로니안 문화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를 모방해 만든 문화인데, 겉모습만 흉내내는 데 그쳤다”며 “현생인류와 달리 대상을 해체해 새롭게 조합하는 능력인 ‘인지적 유동성’ 능력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주(프롬나드)2

10. 예술의 탄생 호모 아티엔스
 

이제 마지막 작품이다. 어느 한 작품을 한정지을 수 없다. 인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이용해 시각 예술을 창조했다. 목걸이나 조각을 만들고, 벽화를 그리고 몸을 치장했다. 이 시기, 인류는 가장 혹독한 빙하기를 체험했다.

북반구의 상당부분이 얼어붙었다. 인류는 환경을 극복해야 했다. 배기동 교수는 “환경 극복에는 이념이 필요하다”며 “사회성을 강화해 집단의 적응 효율을 높이는 데 예술이 구심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에 예술은 비로소 폭발적인 발전을 했다. 긴 고독과 침묵의 시대를 거친 뒤 터져 나온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한 곳에서가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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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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