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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최초의 섹스, 판피어의 은밀한 사생활

최초의 섹스, 판피어의 은밀한 사생활

한국의 과학동아 독자 여러분은 혹시 ‘판피어(placoderm)’라는 물고기를 아시나요? 약 4억 3000만~3억6000만 년 전 고생대 데본기에 번성했던 원시 물고기입니다. 최초로 턱에 뼈가 생겨난 물고기 (유악류)로, 지금은 멸종해 화석으로만 만날 수 있지요. 머리와 몸통은 마치 갑옷처럼 생긴, 뼈로 된 판에 둘러싸여 있어 갑주어로도 불리지요. 게딱지를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두껍고 단단한 석회질 판이지요. 판피어 중에는 7m까지 자라는 거대한 포식자 던클레오 스테우스(Dunkleosteus)도 있지만, 대부분은 1m가 채안 되는 아주 작은 물고기입니다. 왜 느닷없이 판피어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교미(생식을 위해 동물의 암컷과 수컷이 성(性)적인 관계를 맺는 일. 이 기사에서는 주로 수컷의 성기를 암컷의 몸 안에 넣는 ‘삽입 교미’를 이른다.)'라는 친밀하고 은밀한 행위가 이 물고기에서 처음 진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탈린공대가 수집한 이 작은 뼈 화석이 바로 판피어 동갑목의 교미 방식을 보여준 첫 번째 증거다. 끝 부분에 구부러진 뼈가 바로 암컷에 정자를 전달하는 성기였다
[탈린공대가 수집한 이 작은 뼈 화석이 바로 판피어 동갑목의 교미 방식을 보여준 첫 번째 증거다. 끝 부분에 구부러진 뼈가 바로 암컷에 정자를 전달하는 성기였다.]
 
삽입교미라는 복잡한 형태의 유성생식이, 척추동물이 이제 막 턱뼈와 뒷다리 등을 갖추기 시작한 진화 초기에 나타났다. 암컷과 수컷의 외모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된 3억8500만 년 된 판피어(Microbrachius dicki) 화석
“맙소사, 수컷 성기잖아!”

2013년 말, 저와 제 동료들은 에스토니아 탈린 공대에서 스코틀랜드와 에스토니아, 그리고 중국 남부에 있는 고대 호수와 강 등지에서 발견한 판피어 동갑목(antiarchs) 화석을 연구했어요. 어느 날 동료인 엘가 마크쿠릭 박사가 제게 밀봉된 박스 하나를 건넸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져온 뼈 화석 한 점이었어요. 저는 그걸 들여다 보다가 2cm가 채 안 되는 작은 뼈를 발견했습니다(119쪽 사진).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지만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본 끝에, 결국 알아냈습니다. 원시 척추동물의 수컷 성기(clasper · 기각)라는 것을요! 저는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턱뼈를 가진 척추동물의 섹스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이 발견으로 우리는 판피어가 암컷의 몸 안에 정자를 넣기 위해 수컷 성기를 직접 삽입하는 ‘교미’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이 물고기들이 어떻게 짝짓기를 하고 후손을 남겼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저 현존하는 연어나 송어처럼 물에 직접 산란한다고 가정해 왔지요. 더 중요한 건, 판피어가 지금까지 알려진 턱뼈가 있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원시적인 물고기라는 점이에요. 삽입교미라는 복잡한 형태의 유성생식이 척추동물이 이제 막 턱뼈와 뒷다리 등을 갖추기 시작한 진화 초기에 나타났다는 얘기지요. 또한,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상 암컷과 수컷의 외모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제게 무수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더 많은 증거를 찾기 위해 유럽과 호주, 그리고 미국에 있는 박물관을 뒤지기 시작했죠. 마침내 영국과 네덜란드의 개인 수집가들이 소장품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놀라 우리만치 완벽하게 보존된 판피어 화석 표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갑목에 속하는 ‘마이크로브라키우스 디키(Microbrachius dicki )’라는 종이었죠(‘디키’는 이 물고기 화석을 처음 발견한 스코틀랜드의 화석수집가 로버트 딕(1811~1866년)의 이름을 땄다). 판피어에 속하는 물고기로, 약 3억8500만 년 전에 살았습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우리는 판피어가 큰 뼈로 된 L자 모양의 성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지요. 이를 배설과 생식 기능을 겸하는 암컷의 구멍(총배설강) 속으로 삽입해 정자를 넣었던 겁니다. 현존하는 상어와 가오리 수컷도 비슷한 모양의 성기를 갖고 있지만, 이는 배지느러미의 안쪽 가장자리가 변형돼 만들어진 연골입니다. L자로 구부러진 커다란 뼈를 애초에 수컷 성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이지요.

첫 섹스는 3억8500만 년 전 나타났다

판피어 암컷의 생식기를 덮고 있는 판은 치즈나 양파를 가는 강판처럼 표면이 아주 거칩니다. 수컷 성기가 잘 들러붙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일단 수컷 성기가 암컷 생식기 입구에 도달하면, 오로지 끝 부분만 암컷의 생식기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작은 물고기들은 반드시 수컷과 암컷이 나란히 선 상태에서 교미했을 겁니다. L자 모양으로 생긴 수컷의 성기를 암컷의 생식기 속으로 삽입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이기 때문이죠. 판피어는 가슴 부위 양쪽에 작은 뼈가 달려 있는데(우리는 이걸 ‘팔’이라고 부릅니다), 교미하는 동안 서로 맞닿은 팔을 뒤얽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서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는 것이죠.

이로써 수 세기 동안 묵은 미스터리가 풀렸습니다. 뼈와 관절로 이뤄진 이 작은 팔을 판피어가 어디에 쓰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거든요. 오죽하면 판피어 동갑목의 학명(Microbrachius)이 ‘아주 작은 팔’이라는 뜻이겠어요. 서로 맞잡지 않는 바깥쪽 팔은 수컷의 성기가 암컷 생식기 입구에 제대로 도달하도록 자세를 잡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수중발레에서 고난도 자세를 할 때 팔다리를 쉬지 않고 휘젓는 것처럼요. 판피어의 짝짓기 장면이 상상이 되시나요? 음, 제 생각에는 파트너와 어깨를 부딪치며 흥겹게 발을 구르는 미국의 전통 춤 같아요.

짝짓기 방식이 참 어색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중국, 그리고 에스토니아 등지에서 발견되는 판피어는 굉장히 성공한 물고기였습니다. 판피어 동갑목에 속하는 모든 종들은 이런 방식으로 번식해 올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성기 구조를 가진 또 다른 종인 ‘보트리올레피스(Bothriolepis)’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죠. 보트리올레피스는 데본기에 살았던 가장 흔한 판피어로, 지금까지 남극을 포함한 모든 대륙에서 총 150종이 발견됐습니다. 지구에 이토록 광범위하게 퍼져 살았던 건 척추동물 중 보트리올레피스가 최초일겁니다. 저는 교미 자세를 잡기 위해 쓰는 두 팔이 판피어가 전 대륙으로 이동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경골어류의 알 사진.
새끼 출산했던 ‘아텐보로의 엄마 물고기’

이번 연구결과는 가장 오래된 척추동물이 어떻게 번식했는지 알려주는 최신 연구 성과들도 뒷받침합니다. 2008년, 우리 연구팀은 서호주 북부의 고고(Gogo) 지역에서 ‘출산’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를 담고 있는 판피어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물고기니까 ‘산란’ 아니냐고요? 놀라지 마세요. 판피어는 특이하게도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종입니다.

원래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판피어 화석들은 골격뿐만 아니라 근육 같은 부드러운 조직도 완벽하게 보존돼 있기로 유명한데, 그걸 알고 있는 우리도 그 특별한 암컷 판피어 화석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탯줄에 연결된 배아가 입체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었거든요. 네, 물고기가 ‘임신’한 상태였던 거예요. 우리는 그 화석에 ‘아텐보로의 엄마 물고기’라는 이름(Maaterpiscis attenboroughi )을 붙였습니다. 1979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지구 위 생명’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4편에서 고고 지역의 판피어를 다룬 데이비드 아텐보로 경의 이름을 딴 겁니다.

저와 동료들은 2009년 또 다른 판피어(arthrodires · 절경목)에서도 배아를 발견했습니다. 특히 이 종은 판피어 가운데 가장 크고 다양한 데다 박물관에 수천 개의 화석 표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껏 생식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세계의 고생물학자들이 열광했습니다. 두 연구성과는 모두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렸어요.

2014년 초 우리는 판피어의 성기가 상어처럼 지느러미 일부로 발달한 게 아니라, 여분의 팔다리처럼 진화했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성기가 판피어 몸을 둘러싸고 있는 뼈 판 위에 견고하게 고정돼 있었습니다. 흔히 떠오르는 것처럼 발기하거나 구부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미를 하려면 몸 전체를 성기에 맞게 움직여야 했지요. 그러나 더 진화한 판피어(Incisoscutum )에서는 더 유연한 성기가 등장했습니다. 이 물고기는 연골로 된 성기를 가진 현존 상어나 가오리처럼 교미 시에 성기가 발기했지요.

서호주 북부의 고고(Gogo) 지역에서 발견한 ‘보트리올레피스 (Bothriolepis )’ 화석.

수컷 성기의 진화사

그 후 수컷 성기는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했다

자, 사실상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멸종한 고대 물고기가 삽입교미를 했으며 알이 아닌 새끼를 출산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여러분은 학교에 다닐 때 현존하는 물고기들은 암컷이 물에 산란하면 수컷이 정자를 뿌리는 체외수정을 한다고 배우지 않았나요? 바로 그게 이상한 점입니다. 고대 물고기는 교미를 통한 체내수정을 했는데 후손들은 다시 체외수정으로 돌아갔다는 의미거든요. 체외수정은 칠성장어처럼 턱뼈 없는 물고기(무악류)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쓰던 생식방법입니다. 지금껏 과학자들은 더 진화한 형태의 체내수정에서 원시적인 체외수정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겼어요. 판피어에서 그 후손인 경골어류(뼈가 굳고 단단한 물고기 군. 상어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어류가 여기에 속한다)가 진화했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건데, 원시 경골어류 화석에서 체내수정의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거든요.

더 의아한 건, 그 이후에 다시 체내수정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현존하는 원시 경골어류인 실러캔스(주로 마다가스카르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는 대형 어류. 1938년 발견되기 전까지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다)는 암컷 몸에 넣는 성기 없이도 체내수정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지 그들이 어떻게 교미하는지 모를 뿐이죠. 워낙 깊은 물에 사는 데다 정체를 거의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기 없이 체내수정을 하는 다른 물고기 사례를 한번 볼까요. 좀 더 진화한 경골어류 중 하나인 ‘구피(guppies)’는 암컷에게 정자를 전달하는 데 변형된 뒷지느러미를 이용합니다.

제각각으로 발달하다

어쨌든 가장 원시적인 유악류는 틀림없이 수컷 성기를 암컷의 몸에 삽입하는 체내수정을 진화시켰다가, 그 후에 어떤 이유에선지 체외수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구피 상어 도마뱀 악어 뱀원시조류 그리고 척추동물 등에서 교미를 통한 체내 수정이 다시 나타났지요. 새들에서는 이후에 성기가 사라진 사례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기 형태가 지금과 같이 다양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뱀과 일부 도마뱀들은 성기가 양쪽에 한 쌍이 있지만, 악어 거북이 포유동물 그리고 몇몇 새들은 오직 한 개지요. 크기도 제 각각입니다. 아르헨티나 호수 오리는 현존하는 척추동물 중 몸 길이 대비 가장 긴 성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토록 독특하고 복잡한 생식 방법을 지구에서 처음으로 발명한 판피어가 이제 좀 달라 보이지 않나요? 결국 우리는 최소 3억8500만 년 전 물고기가 처음으로 진화시킨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짝짓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척추동물은 판피어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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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기타

    [에디터, 번역] 우아영 기자
  • 존 롱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
  • 사진

    존 롱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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