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아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함께 선발한 제8기 열대해양체험단이 지난 10월 말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축에 있는 태평양해양과학기지를 찾았다. 낮에는 산호초와 바닷속을 관찰하고 저녁에는 연구원들에게 각종 해양과학교육을 받은 체험단은 8박9일 동안 “단 한 번도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새로운 세계였다. 물 밖에선 한없이 무기력하던 물고기들이 바닷속에 선 사람처럼 움직였다. ‘니모’로 잘 알려진 흰동가리는 산호초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며 내숭을 떨었다. 손을 뻗으면 고개를 돌리고 부끄러운 듯 산호 사이로 숨어버렸다. 중·고교생 7명으로 이뤄진 체험단은 축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기지 근처 얕은 바다에서 매일 스노클링을 하며 열대바다의 산호초를 만끽했다.
산호초는 바다의 밭
남태평양 바다는 따뜻했다. 캠프 기간 동안 수온이 30℃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체험단 교육을 맡았던 최영웅 해양과기원 연구원은 첫날 교육에서 “산호초는 바다의 밭”이라고 강조했다. 땅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밭을 꼽듯, 바다에서 산호초를 빼면 생물다양성을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산호와 공생하는 식물플랑크톤이 내뿜는 산소를 마시러, 그 곁의 동물플랑크톤을 먹으러 온갖 물고기와 해양생물이 산호초 주변으로 몰려든다. 산호를 만난 물고기처럼 가장 신나게 스노클링을 즐겼던 조장현(김포 풍무고 2) 군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잠형으로 바다 밑까지 내려가 맨손으로 해삼을 잡아 올렸다. 그것도 10마리 넘게. 하도 특이해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물어봤다. “부들부들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막상 잡아보니 은근히 딱딱했어요. 그리고 돌에 붙어서 잘 안 떨어지네요. 잡아당기면 ‘타닥’하고 뜯어지는 느낌이 나요.” 조 군은 신기한 점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맨 땅에는 해삼이 하나도 없었어요. 전부 잘피밭이나 산호초 있는 데서 찾은 거예요. 연구계획서에 썼던 산호초 생태계를 눈으로 확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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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숨이 쉬어지잖아요”
체험단은 매일 수영시합과 수중기마전, 수중럭비를 하며 노느라 쉴 틈이 없었다. 기마전이 가장 재미있었다는 서진비(안산 강서고 1) 양은 하루 종일 이어지는 활동에도 크게 피곤해 하지 않았다. 학교 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매일 4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이곳 생활은 양반이었다. 성적이 은근히 공개되고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도 많이 지쳐있었다. “일단 숨이 쉬어지잖아요. 숨통이 트여요.” 강보은(서울 해성여고 2) 양은 면접 당시 연구계획서에 ‘돌고래를 타보고 야자수에도 오르고 싶다’고 적었을 정도로 활달한 성격이다. 좋아하는 TV채널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가장 편한 옷이 체육복인 강 양은 이곳에서 “실컷 운동하고 산책할 수 있어 진짜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강 양이 다니는 학교는 2학년 체육수업이 없다. 축으로 오기 전 체험단 오리엔테이션에서 최영웅 박사는 “축에 참고서 가지고 오면, 다 압수할 겁니다”라고 농담 섞인 위협을 했다. 이 말을 듣고 강 양은 정말 책을 하나도 안 가지고 왔다. “그런 말을 안 해도 안 가지고 왔을 거였지만요.”
해부하는 모습 보면 성격 나온다
해가 빨간 흔적만 남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숙소에서 플랑크톤 관찰, 흑진주 핵 삽입 실험, 물고기 해부 등 실내 교육이 이어졌다. 전부 기지에서 하고 있는 연구와 관련돼 있다. 이대원 연구원은 체험단과 함께 손전등을 들고 기지 앞바다로 향했다. “여러분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주인공이 바다에 불을 비추자 생물들이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장면이 있어요. 실제로 동물 플랑크톤 일부는 빛을 내는 발광 기관이 있죠.”
바다에 불을 비추자 먼지처럼 작은 생물들이 빛을 향해 몰려들었다. 촘촘한 망으로 바닷물을 걸러내 연구실로 가지고 간 이 연구원이 채집한 플랑크톤을 현미경으로 보여주자 여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징그러워요!” 동물 플랑크톤은 바퀴벌레와 비슷하게 생겼다. 반면 식물 플랑크톤은 선이나 원에 가까웠다. 생명공학자가 꿈인 백승헌(광주 과학고 1) 군은 스프링 모양으로 구부러진 스피룰리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피룰리나는 기지에서 연구하고 있는 미세조류였다. 승헌 군은 “학교 한 학기 다니는 것보다 값진 경험을 했다”며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로 과학전람회에 작품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의학과 진학이 목표인 이경문(울진고 2) 군은 물고기 해부 시간에 두각을 드러냈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물고기 뇌와 심장, 간과 내장을 말끔하게 분리해냈다. 최영웅 박사는 “해부하는 모습을 보면 성격이 드러난다”며 “경문이가 완벽주의에 가깝게 침착함과 섬세함을 갖췄다”고 말했다. 경문 군은 해산물에서 약효를 찾는 한의사가 꿈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동의보감을 읽었어요. 우리 약초에 대한 이야기는 상세히 돼 있는데, 해산물에 대한 내용은 없더라고요.”
동물 시체가 쌓여 생긴 섬
체험단이 방문한 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환초(둥그런 산호초 지대)로 둘러싸여 있다. 축환초는 둘레가 무려 224km에 달해 2004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보호가치를 인정했다. 다섯째 날 최영웅 박사는 체험단을 40분 동안 배에 태우고 환초 위로 데리고 갔다. 처음엔 환초인지도 몰랐다. 발밑의 딱딱한 땅은 육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환초는 ‘동물 시체’가 쌓여 생긴 섬이다. 자포동물인 산호가 죽으면 단단한 탄산칼슘만 남아서 마치 석회석과 같은 바위가 된다. 바위 위에 산호가 부서져 생긴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야자수가 자라난다. 망망대해에서 동물 시체 위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환초 바깥에서 스노클링 해보면 안 돼요?”
해맑은 얼굴로 체험단원들이 묻자 최 박사가 손사래를 쳤다. 평균 수심이 30m(최대 80m)밖에 안 되는 환초 안과 달리 바깥은 바로 1000m 이상 깊은 절벽이 펼쳐진다. 색깔부터 달랐다. 안쪽은 연한 에메랄드빛, 바깥쪽은 시커먼 파란빛. 환초가 방파제처럼 파도를 막아주어 그동안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환초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여기는 불행한 아이들이 없어요”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학생들이 하루이틀 지나자 우크렐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별빛 아래 같이 춤을 추며 벽을 허물어갔다. 이재원(서울 목동고 1), 성지미(거제 고현중 3) 양은 체험단의 분위기메이커였다.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엄마 보고 싶다”거나 “집에 가고 싶다”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과학지식 못지않게 축에서 학생들이 보고 느낀 건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특히 마지막 날 방문한 미크로네시아 명문고 세이비어스쿨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마침 전교생 체육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하루 한 시간씩 체육수업을 한다는 이야기에 “부럽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축 사람들의 소득은 우리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섬 주민들은 대부분 친척이다. 먹을 게 떨어지면 이웃집에 가서 얻어먹으면 된다. 문중의 허락만 맡으면 아무 곳에나 집을 지을 수 있다. 아이들은 같이 키우고, 노인은 함께 부양한다. 기지에서 일하며 현지인과 결혼해 정착한 김도헌 과장은 “마을 전체가 다 가족”이라며 “집안 식구가 아프고 배고프면 당연히 돌보고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조장현 군은 여기 와서 자신감을 얻었다. 스스로 “여기 온 친구들 중 가장 성적이 안 좋은 편”이라며 위축된 상태였는데, 최영웅 박사와 윤병진 연구원을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성적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목표를 세워 하나씩 실천하면 된다”는 말이 조 군의 가슴에 싹을 심어줬다.
“제가 원래 생물과 환경을 좋아하고 해양에 대한 관심도 있거든요. 직접 와서 경험해보니 진짜 여기라면 제 목표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아요. 여자친구 사귀기 힘든 것만 빼면 힘든 것도 없고. 아주 걱정이 풀린 건 아니지만, 최 박사님을 멘토 삼아서 노력해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