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는 태어난 직후부터 주위 어른들의 언어 소리에 둘러싸인다. 울기만 하다가 조금씩 웃을 수 있게 되면 슬슬 소리를 내는 단계가 된다. ‘구구’ 하는 소리를 내거나(cooing) 옹알이(babbling)를 하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 1살(만 나이. 한국 나이로는 2~3살)이 되면 처음으로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귀로 들은 소리를 음성으로 내는 과정을 ‘발성학습(vocal learning)’이라고 한다. 발성학습이 가능한 동물은 대단히 적다. 영장류 중에서는 사람뿐이고, 포유류 전체로 확장해도 고래, 박쥐, 코끼리 정도다. 조류 중에는 명금류(참새목), 앵무새목, 벌새목의 세 계통이 있다.
이런 새들은 번식기가 되면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또는 세력권을 지키기 위해 노래한다. 그런데 참새와 휘파람새, 동박새, 관상조인 구관조, 카나리아, 문조 등 친숙한 새들이 포함돼 있는 명금류의 노래에는 사람의 언어와 비슷한 특징이 있다. 학습으로 획득된다는 점, 여러 개의 음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발성된다는 점이다. 혹시 조류가 어떻게, 왜 노래를 하는지를 알게 되면 사람의 언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오카노야 카즈오 도쿄대 교수와 필자 등이 명금류인 십자매를 연구하게 된 계기다.
십자매에게서 언어의 규칙을 발견하다
십자매는 일본에서 탄생한 가금(기르는 새)이다. 에도 시대(1603~1868년)에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던 십자매의 야생 원종(흰허리핀치의 일종)이 수입된 것이 시작이었다. 야생 원종은 십자매보다는 조금 작은 새였는데, 흰 등(보통은 날개 때문에 보이지 않음)을 제외한 나머지 몸이 짙은 갈색을 띠었다. 십자매는 수십~수백 마리가 무리를 이뤄 사이 좋게 생활을 하기 때문에 ‘10자매’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럿을 함께 키워도 잘 싸우지 않고 성질이 온화해 번식이 쉬우며, 새끼도 잘 키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후 250년 동안 일본에서 집에서 기르는 새로 널리 사육돼 왔다. 그 과정에서 인위적인 선택 교배가 이어졌고 흰 새부터 흰색과 갈색이 다양하게 뒤섞인 새가 나왔다. 수컷이 암컷에게 부르는 ‘구애의 노래’도 크게 변했다.
새의 노래는 ‘소리가 없는 구간’과, ‘서로 구분이 되는 개개의 음요소’의 조합이다. 야생 원종은 평균 8개의 조금 떠들썩하게 들리는 음 요소를 ‘ABCDEFGH ABCDEFGH’ 같이 규칙적으로 연결해 노래한다. 반면 사람이 길들인 십자매의 노래는 계층 구조를 띤다. 8개의 음 요소 중에서 2~5개를 적절히 조합해 ‘청크(음 요소의 덩어리)’를 이룬 뒤, 복잡한 규칙에 따라 청크를 배치한다. 예를 들면, ‘ABC ABC DEF GH GH’와 같은 식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뇌 구조 때문으로 추정된다.
새끼 새가 노래를 배우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져 있다. ‘노래를 듣고 기억하는’ 과정과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는’ 과정이다. 노래를 듣고 기억하는 과정은 ‘감각학습기’라고 한다. 새끼 새는 갖가지 외부 소리 속에서 자신의 ‘본보기’가 되는 같은 종의 노래를 선택해서 기억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과정은 ‘감각운동학습기’라고 한다. 이 때 새끼 새는 스스로 노래를 해보고, 귀에 들리는 자신의 발성과 기억에 남아 있는 본보기 새의 노래를 비교해서 발성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본보기로 삼은 노래에 가까워질 수 있다.
십자매의 경우 새끼가 부화해 25일 정도 지나면 둥지 바깥에 나가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본보기가 되는 같은 종의 노래를 기억하는 때다. 열흘쯤 지나면(부화 35일 뒤) 혼자서 먹이를 먹을 수 있는데, 이 때부터는 혼자 노래하기 시작한다. 감각운동학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구츄구츄’ 하는 불명확한 노래를 한다. 이 불명확한 노래를 아직은 완전한 노래가 아니라는 뜻에서 ‘서브송(subsong)’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달 정도 지나면(부화 60일 뒤), 새끼 새는 하루의 절반을 노래를 하며 보낸다. 소리가 명확해지고 꽤 잘 부르게 되지만, 아직은 때때로 순서를 뒤바꾸는 등 불완전한 모습이다. 이런 노래를 ‘플라스틱송(plastic song)’이라고 한다. 이후 새끼는 연습을 계속해서, 부화 120일쯤 지나면 드디어 음과 순서가 안정된 ‘결정화된’ 노래(crystallized song, 또는 풀송 full song)를 부르게 된다. 알에서 깨어난 뒤 장장 4개월에 걸쳐 노래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발성이 서서히 숙달돼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음 요소를 연결시킨 뒤, 이런 연결을 기본 요소로 삼아 조금씩(단계적으로) 노래를 완성한다는 점이다. 금화조라고 하는 작은 새에게 ABCABC라는 노래를 기억시킨 뒤 노래를 ACBACB로 바꿔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금화조는 A도 B도 C도 전부 발성할 수 있는데도, 바뀐 순서로 노래하는 것은 어려워했다. 금화조는 처음에는 계속 원래의 순서대로 AB와 BC와 CA라는 순서로 불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결국 CB라는 연결이 노래의 말미에 나타났는데, 일단 하나가 성공하자 순식간에 BA, AC라는 나머지 새로운 연결이 나타났다. CB, BA, AC라는 연결을 쌓아 드디어 ACBACB라고 새로운 노래를 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향(두 음의 연결을 바탕으로 차츰 노래를 습득하는 것)이 금화조뿐만 아니라, 복잡한 노래를 부르는 십자매에게서도 관찰된다는 점이다. 더욱 놀랍게도 사람에게서도 같은 경향이 보인다. 새와 사람 모두 ‘두 개의 소리의 연결’이 발성 학습의 기본인 것이다.
[십자매(위)와 야생 원종(아래). 십자매는 동남아시아에 살던 야생 원종을 약 250년에 걸쳐 인위적으로 교배시키며 얻은 종이다. 흰색과 갈색이 섞여 몸빛이 다양하고, 야생종보다 복잡한 노래를 부른다.]
태어날 때부터 부를 수 있을까
새의 노래 또는 사람의 언어는 학습의 결과일까, 혹은 타고난 것일까. 이 사실을 알기 위해 실험을 했다. 먼저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를, 같은 종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환경에 뒀다. 예를 들어 방음실 한가운데에서 부화시키자 마자, 노래를 부르는 아빠를 떼어낸 채 엄마 혼자 양육하도록 하는 식이다. 그 결과 새끼는 보통과는 다른 노래를 하게 됐다. 노래할 때마다 음이 변화하고 각각의 음을 분류할 수 없으며 음을 나열하는 규칙성도 불명확해진다. 이것만 보면 새는 아빠 새로부터 노래를 배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흰관참새(white-crowned sparrow)라는 새를 이용한 실험을 보자. 흰관참새의 노래는 휘파람(휘슬)소리로 시작되며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아빠 새를 떼어낸 채 키우는 실험을 해보면, 이 개체의 노래도 (비록 음 자체는 불안정하지만) 세 부분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래를 거꾸로 배열해서 들려주면(휘파람 소리가 가장 마지막에 온다), 본보기로 삼았던 휘파람 음을 가장 마지막으로 노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른 새가 되면 휘파람 소리가 다시 맨 앞으로 돌아와 버린다. 또 아빠 새 없이 키워지던 어린 새에게 같은 종과 다른 종의 노래를 함께 들려줬더니 같은 종의 노래를 하게 됐다. 종합하면, 노래는 전부 학습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새에게는 대략적인 노래의 구조가 태어날 때부터 준비돼 있으며, 같은 종의 노래를 본보기로 고르는 선호도 이미 있다.
그렇다면 십자매와 야생 원종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노래의 차이는 어떨까. 필자의 연구팀은 십자매와 야생 원종의 알을 뒤바꾸는 실험을 했다. 십자매는 야생 원종 부모의 노래를, 야생 원종은 십자매 부모의 노래를 듣고 자라는 실험이다. 실험 결과 십자매는 야생 원종의 노래를, 야생 원종은 십자매의 노래를 부르게 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음이었다. 십자매와 야생 원종은 학습의 정확도가 달랐다. 원래 십자매는 십자매 아빠로부터 노래를 배우지만 전부 정확하게 배우는 것은 아니어서 대략 비슷하게(약 90%) 학습을 한다. 어느 가족에게서 노래의 계승을 추적해 봤는데, 세대마다 조금씩 음이 사라져서 5세대 만에 처음 음이 상당수 줄어든 경우도 있었다. 십자매 새끼는 부모가 바뀌어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서, 부모인 야생 원종과 자식 십자매의 소리 공유율은 90% 정도였다.
하지만 야생 원종은 달랐다. 원래 야생 원종은 아빠의 노래를 거의 100% 정확히 배운다. 그런데 십자매를 부모로 둔 경우는 이상하게 부모의 노래를 겨우 75%만 따라 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야생 원종은 같은 종의 노래 배우기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반면 십자매는 그런 선호가 약해 같은 종의 노래를 고집하지 않으며, 대략적인(90%) 학습을 한다. 필자의 연구팀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같은 종의 노래를 향한 선호가 약하다는 점이 바로 십자매로 하여금 복잡한 노래를 부르게 하는 요인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성도태(성선택)’라는 진화적 개념이 숨어 있다.
새장 속의 새에서 사회 속의 인류까지
일반적으로 암컷은 번식에 쓰는 비용이 크고 번식 횟수도 제한된다. 가능하다면 좋은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편이 최적이다. 성도태는 이런 암컷의 선호가 수컷에 대한 진화적 선택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공작새로 대표되는 수컷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이나 작은 새들의 지저귐은 생존에 이롭지 않다. 이런 비용을 들여도 오히려 훌륭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컷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암컷은 그런 신호에 응해 수컷을 판별하고 선택한다.
노래가 성도태에 의해 진화했다면 두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노래에 관해 암컷이 선호를 보인다는 것과, 노래와 수컷의 성질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러 종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암컷이 좋아하는 노래의 특징은 종에 따라 다른데, 아빠 새나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들은 노래를 선호하기도 하고, 복잡하거나 긴 노래를 선호하기도 한다. 노비츠키 박사 등은 어린 시절 (유조기)의 영양 상태가 그 개체의 장래 체격이나 건강을 좌우하고, 노래가 바로 그 지표가 된다는 ‘발달 영양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충분한 영양이 주어지면 체격이 좋은 건강한 어른 새가 될 뿐 아니라 신경계도 발달해 노래를 잘 부르게 된다. 따라서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노래하는 수컷의 체격이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실제로 멧새과의 일종인 늪노래참새(swamp sparrow)를 보면 새끼 시절 먹이를 충분히 먹지 못한 수컷은 그 후 노래를 잘 학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십자매의 복잡한 노래도 마찬가지일까. 십자매의 수컷 역시 체격이 좋으면 노래를 길게 부른다. 노래가 수컷의 자질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암컷에 대한 실험에서도 증명된다. 암컷에게 복잡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둥지와 정형적인 노래가 흘러나오는 둥지를 주면, 둘
중 복잡한 노래가 나오는 쪽에 접근한다. 또 복잡한 노래를 들은 암컷이 정형적인 노래를 들은 암컷보다 둥지 재료를 더 많이 운반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장에 갇힌 새와 우리 인류사이의 유사성을 본다. 우리는 노래뿐만 아니라, 기르기 쉽고 자식을 잘 기른다는 점 때문에 십자매를 길러왔다. 포식이나 먹이 채집 등 야생의 위험에서 해방시켰다. 잡종 교배의 걱정도 사라졌다. 그 결과 십자매를 둘러싸고 있던 다른 도태압은 사라졌고, 대신 복잡한 노래를 선호하는 암컷의 선호는 이전보다 커졌다. 그 결과 십자매 수컷은 점점 더 복잡한 노래를 부르게 됐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낯익지 않은가. 사람이 정착해서 사회를 구축하는 과정과 대단히 비슷하다. 새장 대신 사회가 됐을 뿐, 포식자의 위험과 채집의 노고, 잡종 교배의 위험에서 해방됐다는 점은 같다. 혹시 사람 역시 사회를 이루면서 더 복잡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성선택이 일어났고, 그 변화가 점점 더 복잡한 인간 언어의 탄생을 촉진하지 않았을까. 아직은 더 연구해 봐야 한다. 십자매는 작은 새지만, 우리 언어의 기원을 밝혀 줄 생물학적 근거를 우리에게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