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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50km에 이르는 총알 투구, 펜스를 훌쩍 넘는 홈런과 더위를 잊게 만드는 시원한 함성…. 무더위가 찾아오는 8월이지만 야구장 속 열기는 더위를 잊고 즐기게 만든다. 지켜보고 있는 경기에서 이제까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기록이 나오면 더 신난다. 영화 ‘미스터고’의 주인공, 고릴라 링링의 야구를 보면 속이 시원한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고릴라는 진짜 야구를 할 수 있을까.
육상 선수만큼 빠른 고릴라
링링은 서부 롤랜드 고릴라다. 롤랜드는 저지대(lowland)를 뜻하는데, 현존하는 4개의 아종 고릴라 중 서부 지역 저지대에 사는 고릴라란 의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릴라 역시 서부 롤랜드 고릴라다.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고릴라가 바로 이 종류다. 현존하는 개체수는 약 12만 마리. 마운틴 고릴라가 650여 마리 밖에 안되는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많다. 참고로 전세계 동물원에 서부 롤랜드 고릴라가 약 600여 마리가 사육되면서 고릴라 생태에 대해 많은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미스터고’의 링링은 영화의 주인공인 만큼 특별하다. 털빛깔부터 예사롭지 않다. 등허리부터 하반신 털이 유난히 희다. 5~20마리가 무리를 이뤄 생활하는 고릴라 집단에서 등이 흰 고릴라는 단 한 마리다. ‘실버백(Silver Back)’이라고 부르는데, 집단에서 가장 힘이 센 우두머리다. 수많은 수컷 고릴라의 도전을 이겨낸 만큼 강한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기장 바깥으로 홈런을 빵빵 때려내는 링링의 힘이 결코 우연은 아니란 뜻이다.
고릴라의 덩치는 과연 야구를 하기에 적합할까. 고릴라는 영장류 중 가장 덩치가 크다. 야구 선수는 대개 키가 180cm를 훌쩍 넘는다. 선수의 신장에 따라 달라지는 스트라이크 존의 범위나, 배트를 휘두르는 힘 등을 생각하면 체격이 큰 선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어깨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는 고릴라의 평균 골격높이는 수컷을 기준으로 170cm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처럼 허리를 쭉 편다면 260cm까지 늘어난다. 야생 실버백의 경우 골격높이는 180cm가 넘으며 몸무게는 230kg이 넘게 자란다. 골격 크기만 보면 야구 선수가 되기 충분하다.
달리기 능력은 어떨까.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달리기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야구 타자 중에서도 몸무게가 무거운 타자들은 대부분 달리기를 포기하고 홈런을 노린다. 일본 진출 전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무거웠던 타자 이대호의 100m 기록이 15초. 시속 24km의 속도였다. 그에 비하면 고릴라는 매우 빠르다. 순간 속도가 시속 40km에 달한다. 100m를 11초에 뛰는 정도로, 어지간한 육상 선수의 속도다. 두 팔까지 이용해 네 발(?)로 뛰는 것이지만 도루를 전문으로 하는 야구 선수가 100m를 12초 정도에 뛴다는 것을 볼 때, 고릴라는 도루 주자로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투수와 포수의 눈을 피해 적절한 타이밍에 다음 루로 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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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는 타자 체질
고릴라가 어떤 포지션에 적합할지 찾아보자. 자신의 재능에 알맞은 포지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야만없’이라고,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추신수가 계속 투수를 고집했다거나, 류현진이 타자로 완전히 전향했다면 지금처럼 뛰어난 선수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야구 선수, 특히 타자의 능력을 평가할 때 ‘5툴’ 이라고 부르는 다섯가지 능력을 본다. 타격정확도, 장타력, 수비능력, 송구능력, 주루능력이다.
타격정확도와 장타력은 타석에서 공을 칠 때 능력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순간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계산이 오간다.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미리 예측을 해야한다. 투수와 포수사이의 거리는 18.44m. 공이 타석까지 들어오는 데는 0.4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타자는 투수의 손 모양과 공의 회전, 속도 등을 생각하며 전신 근육을 이용해 배트를 휘두른다. 무게 중심을 이동해 힘을 싣고, 허벅지와 몸통 근육을 이용해 회전력을 높인다. 이 때 걸리는 시간은 약 0.15초. 짧은 시간 안에 배트의 적절한 위치(스윗 스폿·sweet spot)에 공을 맞춰야 한다. 스윙이 조금만 늦어도 공은 파울 선 바깥으로 날아간다.
전신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릴라는 타자, 그것도 타구를 멀리 날릴 수 있는 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프로야구에서 홈런을 많이 날리는 타자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다. 문제는 시력. 고릴라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빨강, 초록, 파랑 빛에 민감한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갖고 있어 유니폼의 색을 구분하거나, 경기장의 잔디와 흙을 구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고릴라는 지독한 근시다. 먹이를 쥐고 먹을 때나 털고르기를 할 때, 사물에 호기심을 보여 관찰할 때 고릴라는 물체를 눈에서 15cm 이내의 거리에 둔 채로 살핀다. 18.44m 떨어진 마운드 위 투수가 던지는 공을 보기 위해서는 고릴라에게 안경을 씌워야 한다.
수비 능력을 살펴보자. 수비수는 상대 타자가 친 공을 빠르게 잡아 각 루에 보내야 한다. 공이 떨어질 위치를 미리 파악하는 것은 물론 날아오는 공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에 비해 발이 빠른 고릴라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점프력도 훌륭하다. 같은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와 보노보는 정지 상태에서 수직으로 뛸 때 80cm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 키와 비교했을 때 사람 보다 두 배나 높이 뛴다. 공까지의 거리를 읽는 것도 사람처럼 두 눈 모두가 정면을 향해 있는 만큼 입체적인 시야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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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판(마운드)에서 홈까지 공이 날아오는 짧은 순간에 타자는 전신힘을 이용해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강속구는 던지지만 변화구는 약점
송구 능력은 원하는 곳에 빠르고 정확하게 공을 던지는 능력이다. 투수가 포수의 미트 안으로 공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투수의 공은 타자를 요리하기 위해 회전수나 속도와 같은 추가 능력이 필요하지만 송구는 딱 두 가지가 중요하다. 글러브에 들어온 공을 빠르게 뽑아 ‘빠르고 정확’하게 던지기만 하면 된다. 야구공의 무게와 속도를 이용해 공을 던지는 데 필요한 힘을 계산하면 약 1.5마력(1마력은 약 0.75kW). 팔 근육만으로는 이 힘을 낼 수 없어 허벅지와 가슴같은 큰 근육에 의지해야 한다.
유인원의 상체 근력은 1924년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했던 실험 결과가 보여준다. 당시 동물원에서는 같은 체중을 가진 인간 남성과 침팬지가 용수철을 잡아당기는 힘을 측정했는데 인간은 80kg, 침팬지는 385kg을 잡아 당겼다. 다른 연구에서도 침팬지는 4~7배, 오랑우탄은 5~8배나 인간보다 힘이더 셌고, 고릴라는 무려 12배나 강했다. 공 던지는 힘만큼은 누구보다 지지않을 성 싶다.
또 한 가지 조건은 ‘긴’ 팔이다. 팔이 길수록 공을 던지기 전에 손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힘이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릴라의 긴 팔은 공을 던지기에 매우 적합하다. 유인원의 팔 길이는 수족비율로 측정한다. 팔과 다리의 길이 비율을 재는 것인데 팔과 다리 길이가 똑같을 경우 100이 된다. 사람은 80으로 다리가 길고, 고릴라는 115로 팔이 훨씬 길다. 대형 유인원 중에서는 주로 나무에서 생활하는 오랑우탄(수족비율 140) 다음으로 길다. 공에 힘을 싣기 적절한 체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투수로서의 가능성도 궁금해진다.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만큼 투수로서는 아주 유리하다.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존은 타자를 기준으로 대략 겨드랑이부터 무릎사이 구간이다. 다리가 짧은 만큼 무릎 위치는 낮고, 덩치가 큰 만큼 겨드랑이는 높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고릴라 투수의 약점은 ‘손가락’이다. 나뭇가지를 단단하게 움켜잡을 수 있도록 손가락이 같은 방향으로 긴 오랑우탄이나, 도구를 쓰는데 유리하게 진화한 침팬지와는 달리 고릴라는 무거운 몸을 지탱하며 바닥을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손가락이 짧고, 손바닥이 넓다. 먹이나 털을 고를 때 이 짧은 손가락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움직이지만 투수의 손으로서는 부족하다.
투수는 기본적으로 엄지와 검지, 중지로 공을 감싸고 약지와 새끼 손가락으로 공을 받친다. 던지는 공의 종류에 따라서 위치와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 그립이 기본이다. 타자의 눈앞에서 옆으로 휘거나 갑자기 뚝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지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이용해 분당 1500회가 넘는 회전을 걸어야 한다. 고릴라의 짧은 손가락은 변화구를 던지기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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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작전 사인, 수행할 수 있을까
7월 5일, 넥센과 LG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만루 상황에서 모든 주자가 동시에 도루를 시도하는 삼중 도루가 나왔다. 덕아웃에서 감독이 내리는 작전 지시를 선수들이 수행한 결과였고, 이 작전 덕분에 넥센은 승리를 따냈다. 잘 치고 잘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른 작전이 야구 경기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고릴라는 과연 얼마나 작전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리 약속된 신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고릴라 계의 아이돌인 ‘코코’는 고릴라의 작전수행 가능성을 보여준다. 코코는 1972년에 태어난 암컷 고릴라로, 미국 캘리포니아 고릴라재단 소속 페니 패터슨 박사에게 수화를 배웠다. 2000여 개의 수화를 배운 코코는 1000여 개의 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했다. 수화를 배운 코코는 ‘이가 아프다’처럼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하기도 하며, ‘새를 보아라’라는 패터슨 박사의 수화에 ‘새’라는 단어를 표현하고 표정으로 의문을 지어 대화가 가능함을 보이기도 했다.
코코만이 아니라 고릴라를 비롯한 유인원에게 의사소통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다. 자세와 표정을 이용하고, 고릴라 만의 발성을 이용해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상대의 감정을 읽는다. 야구 규칙을 잘 모르더라도, 충분한 훈련이 있다면 덕아웃에서 보내는 신호로 야구 경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링링에게 지시하는 웨이웨이처럼 말이다.
야생에서 어린 고릴라는 나무 열매를 이용해 야구나 럭비, 축구와 유사한 놀이를 한다. 열매를 던진 뒤 쳐서 멀리 보내기도 하고, 발로 차면서 인간처럼 논다는 의미다. 가깝고도 먼 친척인 고릴라. 영화 미스터고에 등장하는 링링은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언젠가는 정말 고릴라가 인기 스포츠에 등장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실제 프로야구 경기 규정집에 선수가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항목이 없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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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그마북스, 퍼스트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