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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는 특허가 아니다”

생명의 존엄성 되찾아 준 세기의 재판

인간 유전자는 과연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13일 유전자 연구와 생명공학계의 미래가 걸린 ‘세기의 재판’이 끝났다. 미국 대법원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DNA는 자연의 산물이며, 단순히 분리됐다는 이유로 특허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인간의 유전자는 더 이상 특허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재판은 2009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공공특허재단이 미국의 생명과학회사 미리어드 지네틱스에 특허 무효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 회사가 보유한 7건의 인간 유전자 특허에 대한 소송이었는데 특히 BRCA1(브라카1), BRCA2(브라카2) 유전자 특허가 주요 쟁점이었다.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DNA를 복구하는 데 문제가 생겨 유방암이나 난소암이 발생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브라카 유전자에 문제가 있을 때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은 약 80%. 보통 여성들이 5%미만의 확률로 유방암에 걸리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확률이다. 세계적인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최근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까닭도 유전자 검사 결과 자신의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과학동아 6월호 ‘안젤리나 졸리는 왜 유방제거수술을 받았나’ 기사 참조).

인간 유전자 40% 특허 등록

문제는 유전자 검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브라카 유전자 검사를 하려면 유전자 특허를 갖고 있는 미리어드 지네틱스에 3340달러(한화 약 377만 원)를 지불해야만 한다. 지난 5월 안젤리나 졸리가 뉴욕타임즈에 쓴 기고문에서도 “값비싼 유전자 검사 비용이 개발도상국, 후진국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회사는 작년 한 해 총 수입 5600억원 중 80%인 4480억 원을 브라카 유전자 검사 상품으로 벌어들였다.

미리어드 지네틱스가 갖고 있는 유전자 특허는 브라카1·브라카2 유전자 자체에 대한 특허다. 이 회사는 1994년에 브라카1, 1995년에 브라카2에 대한 특허를 각각 획득했다. 유전자 자체에 대한 특허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건 이 유전자를 연구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면 미리어드 지네틱스로부터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은 미리어드 지네틱스가 비싼 의료검사를 독점하고 관련 분야의 연구발전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전자 특허 논란은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막바지에 다다른 2000년 6월부터 빨라졌다. 인간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밝혀지는 족족 인터넷에 공개돼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지식(퍼블릭 도메인)이 됐다. 그러나 전체 DNA에서 실제로 어떤 기능을 맡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유전자는 다른 운명에 처했다. 과학자, 기업들이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앞다퉈 신청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전체 인간 유전자 약 2만 1000개 중 2% 이상이 특허로 등록됐다.

무분별한 특허 신청을 막기 위해 미국 특허청은 2001년 그 기능과 용도가 명확하게 밝혀졌으며 실험실에서 정제된 형태로 새롭게 합성하거나 분리할 수 있는 유전자에만 특허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러 개의 유전자, 또는 유전자의 일부도 특허를 받고자 하는 내용과 용도가 구체적이면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유전자 분석기술의 발달로 특허신청이 갈수록 빠르게 늘어나 오늘날에는 인간 유전자의 약 40%가 특허로 등록돼 있다.

1심과 뒤집힌 2심, 그리고 다시 반전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를 특허로 등록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먼저 특허와 발명의 의미를 점검해보자. 특허란 발명한 대상을 일정기간 독점할 수 있게 해주는 지배권이다. 발명의 사전적 의미는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롭게 생각해내 만드는 것’이다. 이미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해서 발명의 산물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2010년 3월 뉴욕남부지방법원은 미리어드 지네틱스의 특허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1심). 인간의 유전자는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존에 있던 ‘자연의 산물’이며, 몸안이 아닌 실험실에 있다 해서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속임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7월 연방순회법원은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2심). 몸안의 유전자와는 달리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만들려면 인공적인 방법을 써야 하기 때문에 발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미리어드 지네틱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13년 6월 13일. 미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연방순회법원의 판결을 다시 한 번 더 뒤집었다(3심 최종심). 클러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DNA는 자연의 산물로 인체에서 분리했다는 이유만으로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미리어드 지네틱스가 이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만들어내지 않은 것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유명한 판례로, 미국 대법원은 1948년 토양의 질소량을 늘려줄 수 있는 여러 종의 뿌리혹박테리아 혼합물에 대한 특허를 불허한 예가 있다. 각각의 뿌리혹박테리아가 자연에 존재하는 만큼 단순히 이를 혼합한 것을 발명이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반대로 1980년 아난다 차크라바티(당시 제네럴 일렉트릭 소속) 미국 일리노이대 약대 교수가 만든 인공 박테리아는 특허로 인정받았다. 차크라바티 교수는 특정 DNA를 박테리아에 주입해 여러 원유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세균(박테리아)을 만들었다. 대법원은 차크라바티 교수가 만든 박테리아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만큼 박테리아를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박테리아 자체도 특허를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6월 13일 판결에서 미리어드 지네틱스도 비록 브라카 유전자 자체에 대한 특허는 잃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브라카 유전자를 분리해내는 이 회사만의 기술과 인위적 조작으로 만든 유전자는 특허권을 받을 수 있는 발명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공유전자도 과연 특허대상일까

이번 재판은 생명과학계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유전자를 연구하던 많은 과학자들은 새로 발견한 유전자에 특허를 받으려 노력했다. 잘만 하면 브라카 유전자처럼 ‘대박’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전자에 특허를 받으려는 시도가 윤리적으로 옳지 않으며 과학 발전에 해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일 이번 재판에서 대법원이 유전자 특허의 손을 들어줬다면 앞으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넥스트’에 묘사된 것처럼 ‘인간 유전자 사냥’이 극단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른다. 또 각종 유전자 검사와 치료, 유전자 맞춤형 약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판결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기업의 무분별한 욕심에 제동을 건 의의가 크다.

유전자 특허가 취소됐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3000달러가 넘던 브라카 유전자 검사 비용이 낮아질 전망이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생명공학업체는 “현재의 3분의 1 가격인 995달러로 검사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로 브라카뿐 아니라 지금까지 미국에 등록된 유전자 특허가 사실상 모두 무효가 됐다. 일부 의료업계와 유전공학 기업은 “특허로 수익보장이 안 된다면 굳이 연구할 필요가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생명공학계 전반은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해 195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도 미리어드 지네틱스의 특허권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원으로 보내 이번 판결을 지지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황승용 한양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는 “유전공학 분야의 후발주자였던 우리나라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라 말했다. 황교수는 “우리나라 연구자나 기업이 가진 유전자 특허가 일부 있지만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 설명했다. 특허가 풀린 유전자를 이용해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거나 또 다른 기능을 찾아내는 기초 연구 등 그동안 특허에 가로막혔던 일에 새로 도전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에 미리어드 지네틱스사가 인공적으로 만든 유전자에 대해선 특허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철구 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인공적으로 만든 유전자라 해도 자연계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며, 설사 지금까지는 없다 해도 미래에 자연발생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인간의 유전자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자산이라는 점을 되새겨 줬다. 유전자뿐만 아니라 단백질, 세포 등 적어도 생명체에서 나온 모든 것은 생명에게 권리가 있다.
글 : 이우상 idol@donga.com
이미지 출처 : istockphoto, AP연합

과학동아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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