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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균 리턴즈



지난 1월, ‘네이처’는 ‘결핵의 복수’라는 제목의 세 쪽짜리 기사에서 결핵을 퇴치하려는 국제 의학계가 새로운 위험에 빠졌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세계의 결핵 감염 숫자는 줄어들었고 사망률도 41% 줄었다. 하지만 다제내성균의 발생 건수가 늘면서 전체적인 결핵 위험을 줄이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펴낸 ‘2012 세계결핵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2012년 새로 감염된 환자의 최고 32%, 재발한 환자의 50% 이상이 다제내성균에 의한 결핵이었다. 전세계적으로는 신규 환자의 3.7%, 재발 환자의 20%가 다제내성 결핵이었다. 의료나 위생 상태가 좋지 않고 인구가 밀집된 가난한 나라에서 결핵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실제 위협은 훨씬 심각하다.

특히 전세계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열 명 중 한 명(9%)은 거의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는 ‘광범위다제내성(XDR)’ 결핵에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원래 결핵은 결핵균(대부분 미코박테리움 튜버큘로시스)에 의해 발생하며 ‘아이나’와 ‘리팜피신’이라는 두 가지 항생제로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약에 내성을 갖는 결핵균이 곧 등장했는데 그게 다제내성 결핵(MDR-TB) 균이다. 이 경우 차선책으로 다른 항생제를 조합해 쓸 수 있지만 치료성공률이 50%밖에 되지 않는다. XDR은 나머지 항생제까지 추가로 내성을 갖는 결핵균이다. XDR 균 중에는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결핵균, 내성으로 무장해 재습격하다
결핵의 발생률은 높지만, 다행히 다제내성균에 의한 결핵 비율은 아직 낮은 편이다. 조은희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연구관은 “우리나라에 신고되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는 한 해 약 1000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1년 전체 결핵 신고 환자수가 3만 9557명이니, 비율로 보면 전체의 2.5%다. 세계 평균인 3.7%보다 낮다. 하지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김희진 대한결핵협회 결핵연구원 박사가 지난해 대한내과학회지에 발표한 ‘한국에서의 결핵현황’ 논문에 따르면, 보건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내성률 조사에서 다제내성균 환자 비율은 1999년의 1.6%에서 2004년 2.7%로 크게 늘었고, 이후 줄곧 2~3% 사이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XDR 비율도 0.1%로 꾸준하다.

오늘날 다제내성 결핵이 문제가 되는 또다른 이유는 의외로 젊은층의 감염률이 높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을 제외하면 결핵에 가장 많이 걸리는 연령대는 25~34세 사이다. 신은주 항생제내성균주은행장(서울여대 교수)는 “식습관(다이어트)과 여럿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특성 때문에 발병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내성균에 오염된 병원
다제내성균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의료관련감염’이다. 의료관련감염은 의료 진단을 받고 약(항생제)을 처방 받은 뒤 약을 먹다가 중도에 멈춰서 발생한다. 병원균은 완전히 죽지 않고 오히려 그 약에 내성을 지닌 채 되살아난다. 불성실한 환자가 득실대는 병원은 이런 내성균이 태어나기에 최적인 인큐베이터요, ‘진원지’다(생각해 보라,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끝까지 꼬박꼬박 다 먹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 ‘병 고치러 병원 갔다가 병 얻어 나온다’는 농담이 있는데, 적어도 다제내성균의 경우에는 맞는 셈이다.

김미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가 2011년 ‘한양 메디컬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황색포도알균은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의료관련감염의 5분의 1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박테리아다. 그런데 그 중 90%가 다제내성균인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알균(MRSA)’이다. 중환자실 외에 병원 전체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찰 중 발견한 황색포도알균이 MRSA일 확률은 1990년대에 이후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역시 병원 안이 다제내성균에 오염돼 있다는 증거다.

다제내성균 중 일부는 치사율도 더 높다. 내성균과 내성이 아닌 황색포도알균에 감염돼 걸린 균혈증(일종의 급성 쇼크)의 사망률은 각각 59%와 32%로 차이가 컸고, 심내막염의 사망률은 50%와 9%까지 벌어졌다.


 



항생제와 내성균의 1, 2, 3차 대전
우리나라에는 모두 여섯 가지 법정의료관련감염병이 있다.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알균(MRSA)은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 계열에 내성을 지닌다. 페니실린은 베타락탐이라는 성분이 박테리아의 효소에 결합해 세포벽을 이루는 물질(펩티도글라이칸)의 합성을 막고, 결국 세포분열을 방해한다.

이에 박테리아는 베타락탐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거나, 베타락탐의 공격을 피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방법 등으로 페니실린을 무력화했다. 그래서 1950년대 말 메티실린이라는 또다른 베타락탐계 항생제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항생제마저 듣지 않는 미생물이 나왔고, 이후 옥사실린 등 다른 페니실린계 항생제가 나왔지만 박테리아는 이마저도 무력화시켰다. 이들이 바로 MRSA다.

MRSA에 대항할 수 있는 항생제로 반코마이신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1990년대 초반에 다제내성을 갖는 ‘반코마이신내성 장알균(VRE)’과 ‘반코마이신내성 황색포도알균(VRSA)’이 발견되면서 위력이 떨어졌다. 반코마이신은 박테리아의 세포 내벽과 외벽이 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항생제다(56쪽 그림). VRE와 VRSA는 반코마이신이 결합하는 아미노산의 종류를 바꿔서 이 과정을 방해한다.

또다른 베타락탐계 항생제 ‘카바페넴’은 여러 종류의 미생물을 막는 만능 항생제였다. 특히 3세대 항생제가 듣지 않는 경우에 유용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마저도 무력해지며 전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카바페넴내성 장내세균속 균종(CRE)’ 중 하나인 NMD-1이 그 주인공으로, 카바페넴을 분해하는 효소(카바페네마아제)를 지니고 있다. 이 내성균은 다른 균종으로 전파가 쉽다는 치명적인 특성도 있다. 이영선 국립보건연구원 약제내성과 과장은 “카바페넴분해효소 유전자는 플라스미드라는 동그란 이동성 유전체에 들어 있어 다른 균종으로 전파가 쉽다”며 “최근 인도에서는 인체가 아닌 주변 환경의 미생물에서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카바페넴은 장내세균 최후의 치료제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피해 줄일 방법은 없을까
다제내성균은 빠르게 진단해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그래야 최근 늘어나고 있는 사람 대 사람 감염을 막기 때문이다. 조은희 연구관은 “결핵의 경우 WHO 권고를 따라, 2시간 안에 확진할 수 있는 ‘진엑스퍼트(GeneXpert)’ 기술을 보건소에 도입해 진단 중”이라고 말했다. 진엑스퍼트 기술은 결핵균의 DNA 중 항생제 리팜피신에 내성을 갖게 하는 변형된 염기서열을 찾아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증폭한 뒤 진단하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배지에 시료(가래 등)를 배양해 진단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새로운 약도 개발 중이다. 동아제약은 VRSA와 VRE에 듣는 새로운 치료약을 개발해 현재 임상실험을 마치고 미국 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약 개발을 위해 기전을 밝히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아직 한계가 많다. 이영선 과장은 “최근 5년 사이 미국 FDA에서 승인 받은 항생제는 단 한 건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핫이슈인 카바페넴 내성균은 아직 신약 개발이 전세계적으로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군비 경쟁은 전쟁 기운만 높이듯, 항생제 개발도 결국 또다른 내성균을 만들 거라는 우려도 있다. 서로 다른 계열의 항생제를 섞거나, 항생제와 다른 약제를 조합해 효능을 늘리는 대안도 연구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관련감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항생제는 꼭 필요한 만큼만 처방하고, 환자는 수칙에 맞게 마지막까지 확실히 써서 몸 안의 박테리아를 박멸한다. 결핵의 경우, 국가적으로는 강제입원 등을 통해 전파를 막거나,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진단해 취약계층을 돌봐야 한다.

지난 해 개봉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후반부에서, 19세기 말로 가버린 주인공은 그곳에 머물고자 하는 여주인공에게 “이곳은 항생제가 없다”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미래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세계는 항생제 한 알이 없어 작은 상처에도 사람이 죽고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역설적으로 21세기에 그런 세계로 가고 있다. 항생제를 지나치게 많이, 쉽게 사용해서 말이다.

글 : 윤신영 ashilla@donga.com
이미지 출처 : istockphoto, 미국 CDC,WHO, Graham Beards, 윤신영

과학동아 2013년 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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