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촬영 현장에서 생생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영화 배경이 우주공간이거나, 등장인물이나 동물(?)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럴 때 든든한 지원군이 ‘VFX’라 부르는 컴퓨터그래픽(CG)이다. 이젠 컴퓨터그래픽이 사용되지 않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곤 한다. 실제 현실보다 컴퓨터가 더 화려하면서도 오히려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눈에는 빈 공간, 스크린에서는 우주전쟁 중
관객을 스크린 안의 현실로 초대하는 첫 번째 컴퓨터그래픽은 ‘배경’이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도 현실에서 부족한 배경을 채우기 위해 ‘매트 페인팅’이라는 촬영 기법을 이용했다. 유리 매트에 실사와 똑같은 배경을 그린 뒤, 배우가 움직이는 부분만 비워놓고 카메라 렌즈 앞에 세운다. 카메라는 매트에 그려진 배경과 함께 배우를 촬영한다. 일종의 눈속임이지만 1960~8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수 효과였다.
매트 페인팅의 문제는 아무리 극사실적으로 묘사해도 매트와 배우 사이에 괴리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옛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초원에서 차로 달릴 때 자동차는 달리지만 배경이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컴퓨터그래픽은 바로 이 점을 해결했다.
성룡과 이연걸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포비든 킹덤(2008)’을 보자. 이 영화에서는 건축물의 웅장함을 표현하기 위해 배경 일부분만 세트로 만든 뒤, 뒷배경 전체를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보이는 초록색이나 파란색 배경이 바로 컴퓨터그래픽이 들어갈 부분이다. 유리 매트가 디지털 매트가 된 것이다. 디지털 매트 페인팅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나 ‘자명고(2009)’ 같은 대형 사극에서 큰 규모의 옛날 마을이나 성곽이 이런 기법으로 찍은 것이다.
배경이나 캐릭터로 따로 분리하기 어렵지만 컴퓨터그래픽이 중요하게 이용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비행기나 전함, 우주선과 같은 탑승물이다. 백 번 양보해서 비행기는 실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도 전함이나 우주선에서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두 대라면 모형을 만들 수 있지만 대규모 전투신에서는 많은 우주선이나 전투기가 필요하고, 각각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 영화가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2012)’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전투기가 등장하지만 모든 전투기가 실제는 아니다. CG로 만든 전투기도 많이 등장하는데 F-15K, 미그-29, TA-50 등이다. 이런 전투기를 CG로 만들 때 실제 전투기 표면 성질을 그대로 적용해 사실감을 높인다. 이 영화에는 그래픽을 이용해 만든 전투기가 약 1700컷 등장하며 그래픽 작업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상상의 산물이라도 진짜 현실처럼 보여주기 위해서는 소위 ‘리얼’하게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 방법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사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극사실주의 화가들은 컴퓨터 그래픽대신 물감으로도 만든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의 강점은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단단한 상자가 통째로 움직이는 것은 비교적 쉽다. 가장 어려운 것은 물처럼 특정 형태가 없는 물체가 제작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다. 물이나 연기같은 유체가 사람 얼굴 형태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면 관객은 스크린을 넘어 혼란을 느끼게 된다.
현실 물체의 밀도나 부피 등 물리적 특징에 기반해 실제 움직임을 예측하며 영상을 만드는 것을 시뮬레이션이라고 한다. 흔히 털이나 피부처럼 탄성을 가진 물체나 물, 불, 연기 같은 유체를 시뮬레이션으로 만든다.
유체 시뮬레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실제 유체(주로 기체나 액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유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모델이 없다. 공기와 수증기의 움직임을 파악해 날씨를 예측하는 일기 예보가 100% 맞지 않는 것과 같다. 그나마 가장 유사하게 유체의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는 모델은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라는 ‘나비어-스토크 방정식’이다. 실제 식은 아래와 같다.

유체 시뮬레이션이 발달하면서 관객들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움직임을 스크린에서 보게 됐다. 지난해 3D로 다시 만들어졌던 영화 ‘타이타닉(1997)’의 바다는 물 시뮬레이션 영상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운대(2009)’를 통해 거대한 파도 움직임을 만들어낸 바 있다. 물만이 유체는 아니다. 올해 50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인 ‘타워(2012)’의 불꽃 역시 유체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에게 가장 큰 숙제는 유체를 얼마나 실감나게 보여주느냐다.

실제로 파티클 효과를 입히는 방법을 알아보자. 먼저 유체를 만드는 기본 입자를 여러 개 만든 뒤, 힘의 중심에서 중력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한다. 파도의 경우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유체)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가상의 물방울(파티클)을 만들어 뿌린다. 모든 물방울이 동일하게 움직이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속도나 힘의 크기에 조금씩 변화를 가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 결과 관객은 ‘진짜’ 물과 ‘가짜’ 물방울의 움직임을 통해 화려하게 움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 관중을 동원한 영화 ‘괴물’이나 올해 7월에 개봉을 앞둔, 야구를 하는 고릴라가 출연하는 영화 ‘미스터고’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면서 이런 디지털 배우가 스크린 너머에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그래픽을 이용해 디지털 배우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사람이라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체와 옷은 물론 악세사리 같은 아주 작은 요소까지 만들어야 한다. 기본 과정은 찰흙 인형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밑그림을 그리고,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찰흙으로 살을 붙인다. 살을 붙인 뒤에는 옷이나 특징에 맞는 피부와 털을 입힌다.

신체를 만들 때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얼굴과 동작이다. 가장 시선이 많이 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표정을 만들 때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듯 직접 표정이나 동작을 ‘그리거나’ 배우가 직접 연기한 뒤 모션 캡처 기술을 이용해 동작 자료를 수집한다. 배우의 얼굴이나 몸에 표시된 마커를 이용해 각종 표정 자료를 수집한 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근육을 재구성한다. 그 뒤 원하는 표정과 동작을 만든다. 좀더 ‘리얼’한 표정을 원할 경우는 약간의 ‘리터칭’을 하기도 한다. 동작도 비슷하다.
움직임이 결정되면 겉에 뒤집어씌울 피부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사람 피부를 씌울 수도 있고, 털로 뒤덮을 수도 있다. 사람 피부의 경우, 눈으로 보기에는 불투명해보이지만 사실 피부 아래 있는 모세혈관이 살짝 비치는 반투명한 물질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실제 피부 사진을 타일처럼 잘 맞춰 붙이거나, 피부가 빛을 반사하는 정도를 이용해 빛과 그림자로 피부의 투명함을 표현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어떤 질감을 붙이고 어떤 색과 명암을 활용할지는 스튜디오 아티스트와 기술감독만이 갖고 있는 노하우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배우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신체에 달린 옷이나 머리카락, 털과 같은 부속물이다. 예전에는 머리카락이나 털이 컴퓨터 그래픽에서는 무척 표현하기 어려운 부위였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영화는 ‘몬스터주식회사(2001)’였고, 이후 ‘라푼젤(2011)’에서 긴 머리카락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하거나, 의도하는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역시 다양한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먼저 각종 머리카락이나 털, 섬유의 밀도와 휘는 정도, 꺾이거나 끊어지는 한계를 측정해 가상의 털을 만든다. 당연히 길이 조절은 자유자재다. 털의 경우 길이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서 길이 값에 무작위 오차를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최대한 진짜 같은 털을 만드는 작업이다. 때로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오히려 가짜 털, 또는 과장된 털을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스프링 머리카락이다. 먼저 컴퓨터 그래픽으로 스프링을 만든 뒤, 머리카락 질감을 뒤집어씌운다. 겉으로 보기에는 머리카락이지만 실제로는 스프링이다. 이 스프링 머리카락은 실제 머리카락보다 더 탄력있게 움직이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더 리얼한 머리카락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털 시뮬레이션은 지금도 새롭게 개발되고 있다.
중천에 등장한 군중 개개인은 주변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알아서’ 피해간다.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아직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디지털 군중을 이용하기보다는 엑스트라 배우들을 나눠 찍은 후에 다시 합성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앞으로 디지털 군중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것이고, 이를 위해 꾸준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디지털 배우를 포함한 컴퓨터 그래픽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올 여름 개봉 예정인 영화 ‘미스터고’에서는 온몸이 털로 뒤덮이고, 야구를 잘하는 고릴라가 등장한다. 고릴라가 등장하는 컷만 무려 1000컷이다.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관객들은 얼마나 ‘리얼’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열쇠는 컴퓨터 그래픽이 쥐고 있다.

최근 중국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지난해 제작한 영화 ‘서유기’의 중국 내 흥행성적은 제임스 카메룬의 ‘아바타’를 넘어섰다. 중국 영화산업이 예전보다 훨씬 더 커졌으며, 앞으로 투입되는 기술 수준과 제작 인력이 더 강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더 많은 국제 협업을 통해 기술이 발전할 것이다.
기업의 실무자뿐만 아니라 대학, 국책연구기관에서 유체 시뮬레이션 같은 그래픽 기반 기술을 연구하는 수준도 매우 높다. 이런 연구들이 실무에 적용되었을 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 회사의 장점은 직접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어려운 영화를 누구보다 먼저 시도해 봤다는 것이다. 맨 땅에 부딪치는 과정에서 얻게 된 노하우다.
‘중천’에서는 정우성과 똑같은 디지털 배우를 만들어 어려운 액션 영상을 만들었고, 디지털 군중을 이용해 전투장면을 만들었다. 우리가 자랑할 만한 기술로, 디지털 배우 표현, 군중 시뮬레이션과 유체 시뮬레이션, 그리고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렌더링 가속화 기술이다.
작품은 무엇인가?
전체 제작 프로듀서를 맡았던 ‘포비든 킹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랍 민코프 감독은 본래 우리에게 9컷 정도 맡길 예정이었는데 시연 영상을 보고 30컷으로 늘렸다. 당시 회사를 창업한 뒤 전체 직원이 겨우 20명 정도인 상황에서 덜컥 일을 해야 했다. 영화 제작에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