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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지금까지 피해금액 2억 3000여 만 원. 하나 같이 ‘77246’이란 일련번호가 찍힌 옛 5000원 권 위폐 때문에 발생한 피해 금액이다. 지난 10월 또 한 장의 같은 위폐가 발견돼 지금까지 누적된 77246 위폐의 숫자는 총 4만 5838장이다. 77246 위폐는 과연 완전범죄가 될 것인가.

 


기자는 한국은행 발권정책팀에서 보관중인 ‘77246 위폐’를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었다. 요즘엔 보기 힘든 옛 5000원권이지만 종이 질감하며 색감까지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다. 빛에 비춰보니 위조가 어렵다는 율곡 이이의 숨은 초상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위조’라 찍힌 큼지막한 도장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진짜로 믿을 판이다. 일련번호 중간에 낀 ‘77246’이란 숫자만 없었다면 말이다.

“획수나 폰트 때문에 숫자보다 글자를 바꾸는 게 더 어려워요. 그런데 글자는 바꾸면서도 가운데의 ‘77246’은 그대로 내버려두죠. 진짜 이상한 일입니다.”

김명석 발권정책팀 차장은 ‘77246 위폐’의 기이한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0자리 일련번호를 살펴보면 처음 발견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앞뒤의 글자와 숫자가 다 바뀌어도 가운데의 ‘77246’은 고집스럽게도 그대로다. 김 차장은 “만약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77246의 의미도 영원히 비밀로 묻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77246 위폐 어떻게 만들었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77246 위조지폐’를 모두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범인이 위폐를 만드는 데 쓴 5000원권은 1983년 6월 처음 발행되고 2002년 1월 제작이 중단된 ‘다 오천원권’이다. 2002년 6월부터 발행한 ‘라 오천원권’에 비해 위조방지장치가 허술하다. ‘라 오천원권’에는 홀로그램 문자가 인쇄된 부분노출은선이 있지만 ‘다 오천원권’에는 없다. 부분노출은선은 2000년 이후 가정용 컴퓨터 스캐너와 컬러프린터의 보급률이 급증함에 따라 위조지폐제작이 쉬워지면서 한국은행이 새 지폐에 보강한 위조방지장치다. 홀로그램을 컴퓨터로 스캔해 인쇄하면 새카맣게 나오기 때문에 들통나기 쉽다. 결국 범인은 위조방지장치가 허술했던 ‘다 오천원권’을 희생양으로 노린 것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만든 ‘다 오천원권’이라 해서 위조방지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빛에 비추면 여백에 드러나는 율곡 이이의 숨은 초상이다. 그런데 77246 위폐를 만든 범인은 이를 감쪽같이 만들었다.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먼저 범인은 진짜 지폐와 질감이 비슷한 특수용지에 5000원권 앞뒷면을 각각 복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율곡이이 초상을 따로 복사한 은색 특수 용지를 끼워 넣고 접착제로 붙여 마감했다. 그 결과, 위조지폐라는 걸 알고 본 기자도 구별하기 힘들 만큼 감쪽같은 위조지폐가 탄생했다.




[위쪽이 77246의 일련번호가 있는 위조지폐, 아래쪽이 진짜 지폐다. 진짜 지폐 속의 숨은 초상화는 우측에 보이는 초상화와 다르게 생겼다. 그러나 위조지폐의 숨은 초상화는 모양이 우측 초상화와 같은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진짜 지폐의 숨은 초상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비밀은 잉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숨은 초상은 지폐 종이의 두께 차이에서 만들어진다. 초상의 모양에 따라 종이의 두께가 다르기 때문에 빛에 비추면 숨어있던 그림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흰 종이 뒷면에 다른 종이를 잘라 붙여 놓으면, 앞에서 그냥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빛에 비추면 뒤에 붙인 종이 조각 모양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ATM기까지 속인 위조지폐

지난 5월 위조지폐범이 만든 5만 원권 위조지폐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속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명석 차장은 “ATM기를 속인 위조지폐는 이번 사건이 처음”이라 말했다. 이전까지는 국내의 어떤 위조지폐도 ATM기를 통과한 사례가 없었다. 범인은 진짜 5만 원권을 특수약품을 이용해 앞장 뒷장으로 분리한 뒤 컬러복합기로 복사한 가짜 5만 원권의 앞장과 뒷장을 각각 붙이는 수법을 썼다. 진짜 5만 원권 한 장으로 반쪽짜리 위폐 2장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점점 더 위조 기술이 지능화되는 오늘날 진짜 지폐는 어떤 최신 위조방지기술로 무장하고 있을까.

먼저 홀로그램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국내 위폐의 특징을 김 차장은 “영세하며 조직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서 설명했듯 오늘날 개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복합기로 복사하면 홀로그램 부분이 새카맣게 나타난다. 결국 홀로그램을 복사할 수 없기 때문에 “홀로그램이 있을 자리에 껌 은박지를 잘라 붙이는 조악한 위폐도 종종 있다”고 김 차장은 지적했다. 또 지폐에 들어가는 홀로그램에 대한 특허는 미국과 독일, 일본 3국만이 갖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 홀로그램의 위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지폐에 들어가는 홀로그램은 현재 100%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1000원권을 제외한 모든 지폐에 들어가 있는 ‘숨은은선’ 속의 문자 또한 위조가 힘들다. 새겨져 있는 글자의 크기가 워낙 작아 스캔이 힘들고, 스캔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보통 프린터로는 인쇄할 수 없는 해상도다. 또 색변환잉크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색변환잉크는 1000원 권부터 5만 원권까지 모든 우리나라 지폐에 들어가 있는 위조방지기술이다. 지폐 뒷면에 써있는 금액의 숫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색변환잉크의 특허는 우리나라 조폐공사가 갖고 있다.

국내 지폐 중 가장 고액권인 5만 원권의 입체형 부분노출은선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입체형 부분노출은선은 지폐를 상하로 움직이면 태극무늬가 좌우로 움직이고, 지폐를 좌우로 움직이면 태극무늬가 상하로 움직인다. 그 원리는 잠자리눈처럼 오톨도톨한 수만 개의 렌즈가 시선의 움직임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미국이 특허를 갖고 있는 이 기술은 2013년부터 쓰일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도 포함돼 있다.



77246 위폐 완전범죄로 끝날까

‘77246’이란 일련번호가 처음 발견된 때는 2005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상태다. 한국조폐공사는 위조지폐에 쓰인 잉크와 재질을 분석해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국과수 또한 지폐에 남아있는 땀을 분석해 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감쪽같은 위조수법 덕분에 금융기관에 입금된 이후에야 겨우 위폐로 들통 나는 탓에 그전까지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버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앞으로 시간은 범인의 편이다. 위조에 이용된 지폐는 ‘다 오천원권’은 2002년 1월 이래로 발행이 중지된 지 오래다. 한국은행은 범행에 이용된 ‘다 오천원권’을 비롯해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 모든 구권은 입금되면 폐기하도록 금융업계에 지시하고 있다. 옛 5000원권이 사라져 가는 이때에 범인이 위조지폐를 추가로 만들어 무리하게 유통시키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잡힐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완전범죄 성사의 가능성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 새 지폐를 본뜬 위조지폐에서는 ‘77246’의 일련번호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77246 위폐를 만든 범인은 이제 위조지폐를 만드는 일에서 손을 완전히 뗀 것일까. 또 ‘77246’이란 고정된 일련번호 속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었을까.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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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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