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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인류를 부자로 만들었을까?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풍요로운 추수의 계절이 가고 추운 계절을 맞습니다. 농경 문화에서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때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경은 ‘풍요’를 의미했습니다.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식물을 재배해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행복한’ 생활이 시작됐죠. 하루 내내 먹거리를 찾아 헤매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가 ‘미개인’의 삶이었다면, 농경민의 삶은 쉬엄쉬엄 취미 삼아 일해도 배불리 먹을 만큼 풍족한 삶이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취미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니 모여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여유로우니 병에도 걸리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게 됐습니다. 한가한 생활 속에서 화려한 도시 문명이 꽃을 피웠습니다. 다 농경 덕분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학자들이 수집한 자료는 농경에 대해 품고 있던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농경이 풍요롭다는 착각

인류학자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미개인’들과 몇 년 동안 같이 살면서 연구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윤택했습니다. 하루 종일 놀고 먹기만 해도 될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 수 있는 생활이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도 않고, 영양 실조와 전염병 등 질병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윤택했던 삶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더 윤택해진 걸까요.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농사를 짓기 이전에는 건강했던 사람들이, 농경민이 된 이후에 여러 가지 질병과 영양실조를 겪었다는 사실이 사람 뼈 화석 연구 결과 드러났거든요.

사람의 뼈를 보면 그 사람의 성장과 질병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데, 그게 뼈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깁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에나멜질형성부전(enamel hypoplasia)’이라는 증상입니다. 영구치가 만들어져야 하는 어린 시기에 영양부족으로 치아의 에나멜(법랑)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치아 표면 에나멜에 골이 패이지요. 치아는 한번 만들어지면 평생을 갑니다. 따라서 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에나멜질을 제대로 만들지못한 치아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인류학자들이 조사를 해보니, 농경을 시작한 집단의 치아에서 에나멜질형성부전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몸의 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뼈나 다리뼈의 길이를 재봤더니, 농경을 시작한 집단에서 오히려 더 작았습니다. 몸집이 왜소해진 것입니다. 역시 굶주림과 영양 실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농경은 어떤 면에서 한 회사 주식에 ‘올인’하는 주식투자와 비슷합니다. 대박이 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둬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재해 등으로 농사를 망치면 다음 해 내내 고픈 배를 부여잡고 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농경 이전의 채집생활을 하는 사회에서는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채집하고 사냥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먹거리가 떨어져도 다른 먹거리로 대체할 수 있었죠. 배 터질 정도로 먹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굶주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정착민을 노린 병원균의 ‘영리한’ 진화

반대로 농경 이후 질병은 늘어났습니다. 충치와 풍치를 예로 들어볼까요. 농경사회에서는 주식인 곡물에 물을 부은 뒤 익혀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습니다. 우리가 밥을 짓는 모습을 떠올리면 되죠. 그런데 이런 식생활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보다 충치에 약합니다. 양치질과 치과 치료가 보편화되지 못한 사회에서 충치는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염증이 퍼지면 풍치가 돼 이가 빠지기도 하고, 온몸으로 퍼져치명적인 상태를 만들기도 하지요.

정착생활은 전염병에도 취약했습니다. 우선 땅에 묶인 신세가 돼 병이 돌아도 떠나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한번 병이 돌면 온 마을이 쓰러지고 이웃 마을까지 번졌습니다. 이동 생활을 할 때에는 몇 가족만 희생되면 끝났지만, 이젠 최소 수십 가구가 위험해졌습니다.

게다가 집 건너 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환자가 나타나자 병원체도 더 강하게 진화했습니다. 이전의 병원체는 숙주를 죽이지 않고 오래 같이 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숙주가 죽으면 병원체도 오래 살 수 없으니 독성을 약하게 해 같이 오래 사는 식이지요.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숙주를 죽여도 새로운 숙주가 계속 공급된다는 것을 터득한 것입니다. 병원체는 이제는 거침없이 강력한 병원성을 지니게 됐습니다. 여기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 동물(가축)과 함께 살면서 동물로부터 옮겨온 병까지 가세했습니다. 인간은 강력한 질병의 공세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됐습니다.

인구 증가라는 대반전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죽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수렵시대에는 4~5년마다 한 명씩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가 자라 걷게 될 때쯤에 다시 아기를 낳아야 엄마가 손을 덜 들이고 아기를 키울 수 있거든요. 두 명을 동시에 안고 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곡식을 중심으로 하는 식생활이 자리잡으면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일 수 있게 되자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아기는 엄마 젖 대신에 죽과 미음을 먹으면서 엄마 품에서 떨어지고, 엄마는 곧 동생을 낳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엄마는 2년 터울로 아이를 낳게 됐습니다.

급증하는 인구는 또다른 비극을 낳았습니다.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더 큰 농경지가 필요했습니다. 자연히 점점 큰 땅을 차지하기 위한 대규모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전쟁으로 사망률이 높아지자 전쟁에 내보낼 수 있는 사람도, 땅을 일굴 수 있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많은 아기를 낳아야 했습니다. 여자들은 아이를 업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그 몸으로 밭을 매는 일로 삶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농경 사회는 고도로 복잡하고 세세하게 나뉘어진 계급사회가 됐습니다. 또 도시, 국가 그리고 화려한 문명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의문이 듭니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과 더 가까워진 것일까요. 오히려 거리가 더 멀어진 건 아닐까요. 조지 아멜라고스 미국 에머리대 인류학과 교수가 “농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잘못”이라고 평한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유전학으로 다시 평가 받은 농경 문화

하지만 농경이 인류에게 잘못된 만남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근 유전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농경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바로 유전자의 다양성입니다. 농경 덕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진화의 원동력인 유전자 다양성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다양성의 원동력인 돌연변이는 집단이 클수록 많아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무궁무진한 다양성은 결국 농경 덕분입니다.

농경의 발달과 유전자 다양성은, 사람의 문명이 오히려 인류의 진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 예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면 진화는 멈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명과 문화의 발달, 그리고 인구 증가의 영향으로 인류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오늘날, 인류는 ‘노령 인구의 증가’라는 전에 없던 현상에 직면했습니다. 문화가 인류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면 분명 지금의 노령 사회도 어떤 식으로든 진화를 이끌 것입니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진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새로운 과제에 맞딱뜨린 인류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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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윤신영 | 글 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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